1849년 금광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간 사람들이 있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거기는 지천에 금이 깔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가족이 집 팔고 땅 팔아서 서부로 갔다. 그리고 서부에서 쎄빠지게 고생하다 목화 따는 농장의 하루살이로 진전된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 나오는 비참한 가족처럼. 캘리포니아의 금은 사람을 가려서 행운을 주었다. 소문은 소문일 따름이다. 성공자는 오직 그에게만 해당되는 케이스이다. 서부를 가로지른 49er는 그리 소멸되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성공자가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추앙했다. 후세들 중 제2의 그가 되려고 그 길을 무턱대고 따라 간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똑같은 두 번의 기적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나 따라 해서 에디슨이 되고 비틀스가 되겠는가. BTS를 따라 한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누군가가 달성한 사업적 성공도 실패도 천차만별하다. 같은 제품도 사람에 따라 시기에 따라 시장에 따라 성공도 되고 실패도 된다. 성공한 즉 똑같은 방법으로 따라가도 성공은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 캘리포니아 금광도 텍사스 석유도 오직 한 줌의 그들 만이 성공한 것이다. 따라 한다고 간 사람들 다 쪽박을 찰 수밖에 없었다. 성공한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당신만의 길만이 떠오른다. 당신의 성공 본능을 믿는 수밖에 없다.
근래에 신사업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 실리콘밸리이다. 전 세계에서 이를 카피하여 무슨 무슨 벨리가 만들어졌다. 한국도 모티브로 삼은 곳이 여러 군데 있다. 과거 실리콘밸리의 황금기에 성공을 거둔 천재는 같은 방식으로 절대 두 번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또한 참이다. 따라가는 팔로워에게 그건 큰 낙담이지만 이것도 참이다. 진리를 말하면 어떤 성공의 직통 길이 없다는 것도 또한 참이다. 심지어 전혀 다르게 도전하면 혹시 거기서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마지막 축복이다.
애플사의 본사 사옥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을 찾는가? 실리콘 벨리라 한다. 그곳에서 간 큰 도전은 평범함이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실리콘밸리의 성공요인은 새로운 아이디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그게 아니란 다.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거 란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실리콘 동네는 실패를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본다. 거쳐야 하는 과정의 한 디딤돌로 여긴다. 사업을 하다 실패한 것에 대해 꽤 너그럽다. 오히려 한번 실패한 친구들은 그들이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고 다른 사업의 기회를 주려고 한다. 누군가의 사업상 실패 이야기를 들으면 "좀 안됐네. 그런데 그건 성공을 향해 달릴 때 한번 가야 하는 코스잖아" 정도로 인식한다. 통 크게 퉁치는 것이다.
쉬지 않고 변화하는 사업 생태계에서 사람들이 세상의 흐름을 원하는 대로 이끌 수는 없다. 어쩔 수 없는 실패는 피할 수 없는 대세라고 보는 것이다. 최근에 어느 국내 기사에서 본 것이 떠오른다. 한국의 젊은 신세대들은 사업을 이끄는 도전과 용기 측면에서 타국의 사업가들보다 상당히 용감한 성향을 보인다고 기사에서 밝히고 있었다. 그처럼 변화에 담대한 도전의식을 갖고 있다면 미래세대에 잘 적응될 수 있다고 본다.
내가 관심이 많은 칭기즈칸의 일화가 떠오른다. 그들이 난생처음 서역 원정을 하며 산맥을 넘고 강을 건널 때 그들에게 그 이후에 어떤 환경이 마주 칠지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기록된 지리 정보가 전무했을 시절이었다. 산맥의 등성이를 넘을 때 용맹한 그의 장군들조차 미지의 세계에 대해 큰 두려움을 가졌다. 그럴 때마다 칭기즈칸은 산맥을 넘고 거기에 도달해서 그때 대책을 하면 된다고 두려움에 떠는 그의 장군들을 격려했다. 마치 바다가 평평해서 나아가는 끝은 낭떠러지라고 할 때 이를 믿지 않고 바다 끝으로 나간 용기에 비견된다. 다음 봉우리를 넘어봐야 그 환경이 보인다고. 두려움을 극복한 그들은 서역에서 새로 마주친 환경에서 다시 전략을 짜고 원정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한 번도 닥치지 않은 변화의 환경이 미지의 세계처럼 닦아온다. 계속 두려움에 떨다 가는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 위험 부담은 거기에 도달하고 주위 여건을 보고 판단해야 가장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800년 전의 도전처럼 일단 현장에 도달한 후에 다음의 수를 찾아야 되는 것이다. 도달하고 그때 시각으로 봐야 다음 전략이 나온다. 섣부른 예측은 안개 같은 불확실성만 불러온다. 사업 시작도 전에 만들어진 완벽한 성공 시나리오는 그 자체가 허구이다. 영민한 점쟁이들도 미래는 알 수 없다.
“두려워 마라". 최근 우리 동네 신부님이 강론에서 말했고 성경에서 많이 들어본 구절이다. 그리고 성경은 겁내지 말고 실행하라고 강조한다. 어디에도 하지 말라고 절대 하지 않는다.
PS. 창조주는 우리를 창조했다. 우리도 무엇을 만들면 우리 것의 창조주가 될 수 있다. 우리 스스로의 길을 창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