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이 아니면 소멸 시대네
전화기의 다른 용도 -
심심할 때 나도 개인 장난감을 사용한다. 바로 스마트폰이다. 대중교통수단을 타도, 사람들 모임을 가도, 학생들 모이는 학교를 봐도, 그들 모두 나처럼 개인용 장난감을 툭툭하며 놀고 있다.
스마트폰이 전화기의 기능만을 넘어섰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현재는 거의 만능 기계의 역할을 한다. 어떤 사람은 작곡을 하기도 하고 영상물을 만든다. 이건 기본이고 못하는 게 없다. 여행 중이거나 산속에 있으면서 그가 하는 업무를 다 본다. 자료가 그와 함께 있으니 업무 공간이 마치 그와 함께 이동하듯 한다.
스마트폰이 담당하는 작업이 너무 다양하다. 지금껏 스마트폰 가격이 비싸다고 속으로 불평했다. 대당 가격이 제법 비싼 스마트폰이지만 여러 가지 기능을 하는 측면에서 본다면 하나도 비싼 기기가 아니다. 아니 세상에서 가장 가성비가 갑인 물건이다. 바로 생각만 해봐도 기능이 줄줄 쏟아진다. 컴퓨터, 카메라, 팩스, 녹음기, 시계, 라디오, 사전, 게임기, 번역기, 손전등, 책, 돋보기, 각도기, 악기, 내비게이션, 지도, ATM, 영화관, 학습 교본 등등 너무나 많은 기기를 그 안에 다 포함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기능까지 올린다면 수십 배 이상일 듯하다.
나는 최근에 영어 대화톡 강의를 받고 있다. 20분씩 주 3회 원어민과 대화를 한다. 한 2주 정도 하고 있는데 수업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비싼 돈 들여서 해외로 어학연수를 갈 필요성이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든 것이다. 돈도 돈이지만 필요한 시간에 학업과 일을 병행하며 할 수 있으니 그 얼마나 시간을 버는 건지 모르겠다. 해외로 어학연수 가서 제대로 확실한 효과를 얻는 연수를 하려면 적어도 1년 이상이 걸렸다. 그 시간을 zero 시간으로 할 수가 있다. 영어 대화도 다양한 국적 사람들과 번갈아 가면서 한다면 월드 잉글리시를 다 배울 수 있는 기회이다. 이제 영어는 세계 기축 언어이다. 미국 영어, 영국 영어, 중동 영어, 아세안 영어 등 지역에 따른 작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다들 큰 무리 없이 소통이 가능하다. 영어라는 한 언어로 세계인들과 소통하기 위해 기본 환경이 다 갖추어진 것이다.
과거에 미국식 영어를 주로 배웠던 나는 처음에 영국에 가서 그들과 대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예를 들어 train이나 day는 미국식으로 발음하면 '트레인'과 '데이'인데 영국인들을 '트라인'과 '다이'라 발음하여 조금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한두 번 듣다 보면 바로 적응이 되었다. 공통적 차이가 있다는 것을 쉽게 알게 되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다음번에는 다양한 지역의 영어권 원어민들과 대화수업을 한다면 이 또한 쉽게 해결될 것이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스마트폰 앱은 어학사전 앱이다. 주로 영어사전을 자주 찾는데 가끔은 다른 외국어 사전도 사용한다. 수십년 전에는 두꺼운 영어 사전을 항상 끼고 살았다. 학창 시절 공부할 때이다. 그 두꺼운 사전을 휴대하고 다니니 책가방이 너무 불룩하게 되었다. 책으로 된 사전은 이제 구시대 유물이다. 책사전은 단지 모르는 뜻을 해석하는 기능 위주였다. 이제 스마트폰 사전은 단어의 뜻은 기본이고 원어민들의 발음까지 덤으로 들려준다. 미국과 영국 그리고 다른 나라의 원주민들의 발음까지 비교하여 들려준다. 발음을 국적별로 상호 비교하니 아주 이해가 빠르다.
특히 영어가 아닌 타 외래어의 발음을 상호 비교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 집에는 아직도 약 5개 권역의 외국어 사전이 꽂혀 있다. 영어, 한자, 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사전이다. 당시 해외에서 구입한 제일 두꺼운 어학 사전들이다. 이제는 사용할 일이 없어서 먼지를 둘러썼는데 근래 한 번도 열어 볼 일이 없다. 이유는 더 쉽게 아무데서나 두드리면 바로 뚝딱 해결이 되는 스마트폰 사전이 있기 때문이다. 무거운 사전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 아마 사전도 너무 오래되면 시대적 언어의 의미도 변해서 책사전은 이제 정확하지 않을 수가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그래 저래 모든 물건이 아날로그 체재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을 보여주고 있다. 아날로그 제품은 소멸되거나 박물관으로 가야겠다.
언제가 보니 우리가 애용하는 스마트폰의 하루 사용시간을 보여주고 있었다. 너무 과의존이 아닌가 할 정도로 3시간 이상을 끼고 애용한다고 나왔다. 낮동안 사무실에서도 가끔은 PC에서도 스마트폰을 보니 이것까지 추가하면 더 많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이다.
핸드폰이 나오기 전 20세기 말의 세상을 나는 많이 보아왔다. 그때 세상의 대중교통 속에서 본 사람들이 기억난다. 소련 사람들은 값싼 페이퍼북으로 된 책을 기차 여행하며 많이 보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도 있었다. 그래서 러시아 대하 문학이 꽃피운 환경이 되나 보다 생각했었다. 일본도 버스나 기차를 타면 많은 사람들이 소형 문고본 책을 꺼내 들고 보고 있었다. 이 두나라가 그야말로 문화강국이구나 인식되었다. 문고본은 이후에 한국에서도 많이 애용되는 책이 되기도 했다. 미국도 공항이나 고속버스터미널에 출발을 기다리며 있을 때 주로 사람들이 책을 보고 있었다. 사실 그때는 여행객들이 어디를 다녀올 때는 적어도 책 한 권을 가방에 넣어두는 것이 기본 준비였었다.
환경이 바뀌었다. 이제 여행자의 그 익숙한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 간다. 최근에 해외를 가보면 과거에 손에 든 책이 모두 스마트폰으로 바뀌었다. 너무 이상하게 전 세계가 하루아침에 다 바뀌었다. 급변하는 현상이 무섭게 느껴진다. 그들만 바뀐 게 아니라 나도 그 무리의 하나가 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책 한 권은 들고 가는 마지막 투어리스트가 되고 싶다.
문화는 시대의 산물이다. 어떤 시대라도 모두가 한곳에 집중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끝물이 닥치면 또 다른 것으로 시야가 돌아간다. 그것을 냄비근성이라고 한 때 비아냥 거렸다. 우리를 보고 스스로를 그리 부르기도 했다. 그런 논조가 실린 기사를 제법 많이 봐 왔다. 그런데 보니까 우리만 그리 쉽게 모두가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전 지구적으로 사람들이 함께 한 방향으로 돌아 눕는다.
이건 좋은 일일까, 비극일까, 희극일까.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