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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시대에서 화약의 시대로

언제 보습을 만들꼬?

by evan shim


화약. 총포가 세상을 바꾸었다 –



동양과 서양은 13세기 이전에는 거의 소통자체가 없었다. 거의 없다는 이야기는 극히 일부의 상단이 접경을 넘어 상대국가와 낮은 단계의 교역을 하는 수준이었다. 고대와 중세 시기는 양대 지역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구태여 인식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었다. 대부분 먹고살기 바쁜 보통 민초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 이외에는 거의 알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세상을 뒤집어 놓은 동양의 정복자가 등장해서야 서양이 동양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바로 몽골제국의 칭기즈칸이다 정확히는 칭기즈칸의 아들 우구데이 칸과 손자 쿠빌라이 칸 시절이다. 그때 몽골병사들이 서역 원정을 하며 끌고 가던 이상한 신병기가 하나 있었다. 서양인들은 처음 보는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나는 공포의 무기였다. 보도 듣지도 못한 무기였다. 바로 화포 즉 지금 용어로 하면 대포였다. 공격을 당한 서역인들은 혼이 나갈 정도로 깜짝 놀랐다. 화포가 보조적 전쟁 수단이었지만 전투의 승패는 해보나 마나였다.




세월이 흐른 후 난생처음 대포가 탑재된 미국 페리제독의 검은 배 구로후네를 보고 화들짝 놀란 19세기 일본인과 같았다. 화약이라는 원료물질과 최초의 대포로 무장한 그들이 세상을 휘잡고 19세기 영국처럼 세계제국이 될 줄 알았지만 웬일인지 더 이상의 대포 발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핵폭탄을 만드는 원료물질 우라늄광을 가졌다 해서 핵강국이 아닌 이치와 마찬가지이다. 대포에 관해 다른 나라들이 더 큰 관심을 보인 것이다. 중국의 4대 발명품 중 하나인 화약이 더 크게 꽃을 피운 곳은 대포를 집중 연구하고 크게 개량한 유럽이었다.


화포 연구개발의 바통은 동양에서 서양으로 무대가 이전된 것이다. 동양 그중에서도 중국은 나라가 넓고 또 구태여 위험을 조장하는 신무기 개발에 관심이 없었다. 이해 못 할 유사한 사례가 또 있다. 정작 중국은 신항해 시대를 가장 먼저 열어 놓고도 정작 자체 해금령을 발하여 원거리 해상 교역을 중지한 것이다. 당시 중국은 농업생산이 풍부하여 안락한 생활에 익숙해진 문화의 영향이기도 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하는 명언이 들어맞는 상황이 유럽 내에서 이루어졌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은 서로가 서로를 침략하고 정벌하는 전쟁의 연속이 된 시절이었기 때문에 전쟁의 최대 승패요인은 언제나 신병기의 확보였다. 신병기의 최대 승부는 화약을 이용한 대포 외에는 다른 것이 존재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유럽 내 모든 국가는 원료인 철광석과 원료 물질을 수입하고 자체의 병기공장에서 신무기 개발에 온 힘을 경주했다.


이 무기는 기존에 전혀 없던 신물질이라 기술자가 있을 수가 없었다. 자체적으로 신 기술을 축적하여 많은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었다. 대포를 제조하여 발사 테스트를 하는 와중에 너무 많은 폭약을 넣어서 기술자들이 죽고 다친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기술이 있다고 인정되면 다른 나라에서 큰돈을 주고 그 기술자를 모셔 가기도 했다.


대포에 의해 느끼는 공포는 오히려 각 나라가 더 많은 관심을 야기한다. 자체 생산이 어려운 나라들은 큰돈을 주고라도 신병기를 손에 넣으려고 까지 하는 단계였다. 국왕과 영주들은 승리하여 전승국이 되면 그 자체가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비즈니스 기회로 생각한 것이다. 이리하여 생산된 대포는 육상 무기로도 많이 사용되었지만 곧바로 함선에 장착되었다. 심지어 상업 교역을 하는 유럽 선박에도 몇 문의 대포를 기본적으로 장착하여 자기 방어를 하게 되었다. 마치 요즘에도 원거리 운송을 하는 상업 선박 들에도 기본적인 무기의 적재가 일반화된 환경과 흡사했다.





이후 대포로 군사력을 갖춘 유럽은 쇄국을 하며 안심하고 있던 동양을 침탈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일방적이고 굴욕적인 개항과 조약을 받아들이고 굴욕의 세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것이 근대 대부분 동양이 굴욕의 개항을 오픈하는 계기였다. 중국, 일본, 한국도 동일한 문호개방과 개항 코스를 받아들였다. 대부분의 동양은 무에 대한 하시와 문화적인 자부심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신병기의 개발은 우선순위에 들지 않았다. 특히 중국은 통일 왕조가 형성된 근대 이후에 평화시기가 도래한 것이 오히려 나라의 방위가 약해졌지만 그들은 위기가 닥치기 전에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대가는 실로 컸다. 영국과의 아편전쟁 이후 벌어진 갭은 원상회복 하는데 거의 200년의 세월이 흘렀다.


화약과 대포의 시대를 처음으로 연 중국은 오히려 나중에 유럽 나라들에게 대포로 침탈당하게 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새로운 발명을 먼저 만든 일등이 성공하는 게 아니고 발명품을 원래보다 더 개발하고 문명의 꽃을 개화시킨 이등이 더 성공하는 것이 역사가 증명하였다. 유사한 사례도 많다. 철도도 유럽에서 발원되었지만 늦게 받아들인 미국에서 더 크게 성장의 축이 일어났다. 철도 왕국은 넓은 대륙을 기반으로 하는 미국에서 활짝 꽃을 피웠다.


1950년대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미국은 이후 왕성하게 일어난 전자제국 일본에 반도체 부분에서 추월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후 다시 반도체 대국이 되었지만 일부 핵심 메모리 부분은 동아시아권이 주축 생산국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첨단기술의 중심이 되는 반도체 헤게모니를 찾기 위해 여러 나라가 상호 각축하는 과학 신병기 중 하나가 되었다.


칼과 활의 무력이 시대를 주름잡던 시대도 있었다. 이후에 화약시대가 도래하여 전쟁의 양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제는 핵 무력이 새로운 패권이 되는 시대이다. 그래서 군소 국가들도 소망하는 국가병기 제1번이 핵이 되는 세상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무기를 내려놓는 것이 더 소중한 지구평화이다. 칼과 창으로 보습을 만드는 평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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