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지도하는 계층이라고?

by evan shim

자신을 고귀하다고 생각하는 자는 먼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역사적 실행사례는 서양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반면, 동양에서는 눈을 크게 떠야 찾을수 있다. 서양에서는 의례 국난이 발생하면 고귀한 자들의 전시대응 솔선수범이 우선 행해진다. 과거에서 본 역사적 사례도 많다. 통상 서구의 귀족들은 전쟁이 발발하면 그의 가산을 정리하고 그 자신과 전쟁 참여자를 구하고 무기와 전비도 전부 그가 장만한다. 그들이라고 죽음이 두렵지 않을 리 없지만 전쟁에 참가하여 적과 싸우다 죽는 것이 최고의 명예로 받아들인 것이다. 알렉산더, 시저도 그랬고 나폴레옹도 전장에서 직접 병사들과 함께 고락을 함께 했다. 영화 '300'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극화로 다룬 그런 영화이다. 십자군 전쟁 때에도 많은 귀족들이 직접 말 타고 전투에 참여했다.


아주 최근 영국이 포크랜드에서 전쟁이 벌어졌을 때 윌리엄 왕자가 제1착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영국의 명문대학에는 전시에 국가를 위해 죽은 동문들의 수가 수천 명으로 다른 조직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부러운 통계가 있다. 미국은 한국동란시 전사한 140여 명이 모두 군장성의 아들들이라 한다. 왜 그리 가진 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목숨을 버려가며 참전하는 것일까. 고귀한 자들의 사회적 명예는 그들의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하는 궁극적인 보루였다. 그것이 그의 아들과 후손들에게 지켜야 할 가문의 유지에 큰 기여를 하기 때문이다.


귀족으로서의 명예로운 전통은 전전 할아버지에서 손손자까지 계속 지켜야 할 가문유지의 필수 규범이 되는데 그깟 한 목숨이 대수냐는 인식을 갖는다. 그래서 일반 서민들은 국가를 위해 자신을 불사른 그들을 존경하고 그의 후손들까지 그 영예가 이어지게 된다. 중세시기에 독자적인 장원 영향력을 가진 제후와 귀족들은 실제적으로 작은 국가와 같은 자신의 영지를 운영하게 된다. 흔히 말하는 공국은 공작이 다스리는 작은 국가였다.


이러한 노블레스 오블레주의 솔선수범 없이 확실한 존경을 얻기 어려운 점도 많이 작용한 것이다. 이것은 서양이 동양보다 앞선 대의 명예규범 중 하나로 평가받는 이유이다. 비단 전쟁 때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국가의 위난이나 어려움이 발생하면 노블레스 그룹은 지금도 가진 재산을 털어 국가와 사회를 위해 자신을 던진다. 누군가는 서구에서 가장 부러운 것 중 하나가 바로 가진 자들의 헌신이라 했고 이것이 서구사회를 지금껏 유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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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행했던 지도자들이 있기는 했지만 서양에 비해 미약한 정도였다. 동양에서의 황제나 제왕들은 전쟁이 발발하면 장수들을 파견하지 스스로 친정체재로 원정을 나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부 고대 황제의 경우는 친정을 하기도 했다. 얼듯 떠오르는 인물이 항우와 칭기즈칸 정도인데 북방 유목계 군왕이나 원대의 대칸들은 직접 선두에서 전투를 지휘하기도 했다. 특히 몽골제국은 지도자의 전쟁참여가 서양처럼 엄격히 지켜진 국가였다. 오리엔트 페르시아의 많은 군왕들도 전투에 직접 참여를 했다. 정복군주인 다리우스 1세도 그중 유명한 친정을 행한 제왕이다. 아마 당시에는 시대적 분위기가 그러했고 제왕으로서 전투수행 능력은 카리스마 확보 차원이라 여겨진다.



우리나라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사례를 알아보자. 많이 부끄러운 현실로 고대시기는 일부 있었지만 그 이후는 군주가 직접 전투에 참여하는 사례는 아예 없었다고 보인다. 고려시대 대몽항쟁기라 알려진 때에 왕은 백성을 내 팽개치고 강화도로 도망을 간다. 몽골군은 항복기한을 정해놓고 그 기한까지 항복을 하지 않으면 주민 수천 명을 처단하겠다 했지만 왕은 속수무책이다.


또 한국동란 때 수도를 팽개치고 부산으로 국민들보다 더 빨리 도망간 대통령도 있었다. 백성들을 팽개치고 아예 적진에 남겨두고 알리지도 않고 그들이 가장 먼저 피난한 것이다. 백성들은 전란 속에서 신음하고 죽어가는 상황이다. 적어도 전면에서 적과 직접 대항하고 싸우는 것은 바라지도 않지만 그들은 국토와 백성이 적군에게 떼로 죽어나가도 무대책인 상태였다. 노블레스의 의무란 한 톨도 찾을 수 없는 해도 해도 너무한 지도자들이다.


변명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장기판을 보라고. 궁단속이 가장 우선 아니냐고. 일견 옳은 말 같지만 가장 궁색한 엉터리 변명이다. 하하. 백성들도 절대군주 시절 종묘사직을 보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모르지 않는다. 국민들은 다 죽은 후에 보존한 사직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한국전란 때 대통령은 먼저 도망가며 다른 사람들은 피난 못 가게 한강 다리를 끊기도 했다. 수도 사수를 외친 지 몇 시간도 안된 시점이었다. 남에게 말하기 심히 부끄럽다. 그리고 그들은 이후 현상이 안정되면 다시 돌아와서 변명을 하기도 하고 또 상황회복에 대해 그가 한 것처럼 생색을 내며 다시 군림한다


이들의 행위는 일반 백성이 하더라도 남의 손가락질 감인데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국정을 맡아서 업무를 처리한다.


부끄러운 현상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왜 현재도 한국에서 가진 자들은 그리 군대도 안 가고 세금도 안 내려하고 해외은행에 비밀 예금하고 그럴까. 학폭을 해 놓고도 시답잖은 변명만 한다. 그들을 언론에서 사회지도층이라 부른다고? 어궁, 이건 견공 짖는 소리이다. 서양의 노블레스와 달리 그들은 자식들에게 물려줄 명예도 없는 돈만 많이 가진 사람들인가 보다. 윗물이 계속 그리하면 100% 3류 국가가 된다에 500원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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