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약에 대한 이야기를 수집하고 발표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화약과 관련된 스토리도 있었다. 집에서 총을 다루는 업(총포사, gunsmith)을 하여서 화약과는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바로 화약을 재료로 하여 엽총 실탄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엽총 재생탄을 만드는 작업이다. 왜 재생탄을 만드느냐면 새것은 미국에서 직접 수입을 해와야 하던지 혹은 미 8군에서 쓰는 엽총탄을 구하는 것 외에는 대안은 없었다. 당시만 해도 이런 총기류 물품의 직접 수입은 엄두가 안 날 시기였다. 지금도 한국사회는 총기에 가장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당시 1960년 대에는 규제가 훨씬 더할 정도였다. 수입탄을 흔히 PX탄이라 불렀다. 오직 미군부대 PX 샵에서 구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구입 가격도 아주 높았다.
대안은 한번 사용한 엽총탄을 재생하여 재사용화는 것이다. 재생탄의 가격이 PX탄보다 상당히 저렴했다. 또한 제조에 필요한 장탄 재료는 국산화가 되어 있었다. 화약과 뇌관 송탄막 그리고 다양한 산탄을 준비하고 직접 제조하여 판매하는 것이다. 재생탄에서 가장 큰 문제는 불발탄이다. 엽사들의 불만이 가장 많이 야기되는 것 중에 하나이다. 결정적 발사 찬스를 맞이했는데 덜컥 불발이 되면 그동안 짐승의 발을 잡아 추적해 온 것이 무위가 된다. 다시 짐승을 쫓아 가야 하는데 같은 기회가 또 온다는 보장이 없어진다.
어떤 분은 엄청 화를 내며 손해를 보상하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불발탄은 무조건 다시 반품을 해 주지만 사실 굉장히 죄송한 것이야 어쩔 수 없다. 초기에 많이 생기던 불발탄도 계속 개량품이 나와서 나중에는 거의 불발탄이 생기지 않았다. 지금은 거의 미제 수입품과 차이점이 없을 정도이다. 단, 높은 수준의 정밀을 요하는 국제 사격 경기장에서는 재생탄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판정시비를 차단하는 것이다.
달리 불발탄이 생기는 원인은 총기의 발사 핀의 도달 거리(stroke)가 닳거나 뇌관과의 유격 때문인 경우도 있다. 드물게는 수평쌍대 엽총 유계두(격발해머가 닭머리처럼 생겼다 해서 생긴 명칭)의 판 스프링이 약해져서 뇌관을 때리는 해머작용이 부실해질 수도 있다. 이 때는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화약이 없이 뇌관만 장착된 탄을 여러 발 격침해 봐야 판정이 된다. 이걸 엽사에게 알려주면 화를 내던 분도 머쓱해지는 경우도 있다.
다음날 판매할 분량의 탄환을 미리 만드는 것이 몇 직원과 나에게 맡겨진 고정작업이다. 특히 직원 1명은 우리 집에서 아예 숙식을 하는 여건이어서 저녁을 먹고 조금 쉰 다음 밤중에 수백 개의 재생탄을 만드는 작업을 한겨울 사냥철 내내 하게 된다. 대부분 11시까지 이 작업은 계속되는데 작업이 끝날 때쯤 되면 어머니가 간식을 준비해서 야식을 주곤 하였다. 엽총탄을 만드는 장탄기를 여러 대 사용하여 일관작업처럼 나누어 각 공정을 했던 작업이다. 장탄의 순서는 먼저 탄피의 뇌관을 빼고 새 뇌관을 교체하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다음에 화약을 넣고 송탄막을 넣는다.
절대주의해야 할 부분이 여기인데 혹시 실수로 화약을 2번 넣는다면 아주 중대한 위험요소가 된다. 극히 주의해서 이런 일이 거의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를 기해야 한다. 송탄막을 넣으면 아래의 화약 부분이 다져져야 하므로 적합한 프레스 과정이 따른다. 그리고 다음은 종류별로 산탄을 넣어야 한다. 처음에 제조할 때 각각의 정해진 수량목록에 의해 산탄을 넣는 작업이다. 가장 많이 제작되는 종류는 노루와 고란이용 산탄인데 SG 탄으로 불리는 납산탄인데 약 28 개 정도가 들어간다. 그리고 BB 탄 혹은 4 호탄으로 불리는 탄환은 주로 오리나 꿩사냥에 쓰인다. 작은 탄환으로 된 7-8호 산탄은 작은 조류인 비둘기나 까마귀등을 사용할 때 이용된다.
그리 완성된 탄환은 표식 마킹을 하고 케이스에 담아야 다음날 판매가 된다. 탄피의 재질은 종이와 플라스틱 2종류인데 특별히 공정이 다르지 않는데 마지막으로 윗부분을 봉인하는 작업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종이 탄피는 끝부분을 안쪽으로 둥그랗게 마는 작업을 하는데 반해 플라스틱은 6각으로 마무리를 하는 차이이다. 이리 작업이 완료되면 비로소 취침을 하게 된다. 지금 같으면 야간작업이 가혹한 노동조건 측에 들어가지만 그때는 그런 개념이 없을 때여서 가능했으리라 여겨진다. 총포사는 동계절 사냥철 바쁜 시기가 있는가 하면 하계절은 거의 사냥이 한정되어 비수기로 들어간다. 여름철에는 뜸부기 등의 사냥 정도만 가능한 계절이다.
엽사대회 컷 (부친은 전방 좌에서 3번째)
아는 엽사분이 농사를 지으시는데 겨울 되면 사냥을 한다. 나이도 그리 많지 않으셔서 사냥으로 겨울철에 벌어들이는 수입이 농사보다 더 크다고 했다. 그는 사냥을 아주 잘하는 고수 엽사로 기억이 난다. ‘별량 황포’하면 다른 사람이 “아, 그 사람” 할 정도였다. 그리고 다른 친구 한 분과 2인조로 팀플레이를 하는데 이들은 노루 목과 발을 잡는데 전문가적 수준이었다. 한 분은 동물이 다니는 목을 잘 보고 그곳을 잘 지키고 있고 다른 한 분은 노루등을 추적하여 몰고 가는데 목이란 짐승이 가는 길이다. 노루의 똥이나 오줌 또는 나무에 묻은 동물의 털까지 알아보는데 척 보고 “아, 30분 전에 지나갔네” 하는 정도로 정통하였다. 항상 합력하여 사냥을 하는 이들을 두고 사람들은 마치 쌍고라니 같다고 표현을 하였다.
그럼 이렇게 사냥한 획득물은 누가 구입하는 것일까. 수요가 뒷받침되니 사냥이 신나는 것일 수도 있다. 노루는 사냥이 되면 노루피가 건강에 좋다 하여 응고되지 않은 생피를 먹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이 두 분은 항상 그들을 뒤따르는 고객을 동반하여 노루나 고라니 사냥이 되면 바로 배를 가르고 생피를 먹게 한다. 나는 “에이”하고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는데 옛날부터 건강 유지비법으로 인식이 되어 왔다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 고기 부분은 산고기만을 전문적으로 요리하는 식당에 판매를 하거나 개인에게 팔린다. 산돼지는 아주 고가로 판매가 된다. 그래서 최고의 엽사들은 지리산에 몇 달간 산돼지를 잡으로 산속에서 기거하며 사냥을 한다. 그들이 쓰는 탄환은 가장 큰 탄환을 주로 쓰는데 어떨 때는 단 한 개의 탄두로 된 매그넘급의 탄환도 준비해 간다.
나온 김에 화약에 관해 또렷이 기억나는 이야기가 있다. 엽총탄을 제조하는 화약을 어디선가 구해 오셨다. 그런데 이번에 온 화약은 상당히 알갱이가 큰 것이다. 아버님은 이것을 그대로 쓰면 곤란하니 이것을 조금 분쇄하여 분말로 써야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한 군데 방앗간을 물색하셨고 거기서 화약을 갈려고 하였다. 처음 그 주인분은 위험하다고 거절을 했지만 소화기 등을 비축하여 안전 대책을 구비한 것으로 최종 승낙을 했다. 화약을 그대로 갈기에는 폭발 위험이 있어 물을 축였고, 분쇄속도도 최대한 저속으로 분쇄를 하기로 한 것이다.
분쇄작업 위험을 몇 차례 말씀하셔서 나 또한 신경이 곤두섰었다. 만일 화약을 갈다가 돌연 폭발이 생기면 집 한 채가 날아갈 수도 있는 엄청 큰일이라는 것이 어린 나이에도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혹시 무슨 나쁜 일이 안 생기기를 바라며 마음 졸였다. 다행히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그리 분쇄된 화약은 옥상 지붕에 널어 두고 햇빛에 말렸다. 바싹 말린 화약은 나중에 발사 테스트를 거쳐 정량을 정하는 작업이 뒤따른 후에 엽총 화약으로 잘 사용되었다.
업을 오래 하다 보니 나중에는 재생탄을 만드는 장탄기 (reloading press)를 국산화하여 생산했는데 몇 번의 업그레이드를 거쳐 좋은 제품의 생산이 가능했다. 이렇게 생산된 장탄 기와 기타 생산 부품은 국내에 있는 다른 총포사에 팔 수가 있었다. 혹은 재생탄 구입보다 개인적으로 직접 제조를 원하는 엽사들도 있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실탄 재생과 관련된 추가 제품도 생산하였다. 나는 제품의 목재 손잡이 깎는 제작을 주로 맡아서 했는데 로꾸로라는 회전 작업 목공기계를 만들어 작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