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비가 그쳤으면 소망했지만 그건 우리 소관이 아니다. 눈뜨자 창을 열고 비가 오나 확인했다. 비가 부슬부슬 온다. 끈질기다. 또 가려면 먹어야지. 터미널 근처에서 조식되는 김밥집을 발견하고 거기로 갔다. 모두 탕류로 조식을 때웠다. 근처 편의점에서 커피도 한잔하고 기다렸지만 비는 우리 사정을 모르는지 계속 왔다. 비가 온다고 서울까지 다시 버스로 갈 수는 없는 법이다. 이 이야기는 서울 도착 후 집사람과 상호 이견이 생긴 부분이다. 와이프는 기상이 아주 안 좋으면 포기하고 버스로 오지 그랬냐고 하지만 나는 여러 차례 우중 주행을 한 경험이 많았다. 솔직히 나는 우중 라이딩을 은근히 좋아하는 성향도 있다.
특히 여름철에는 해가 강렬한 상태에서는 땀도 많이 흘리고 따라서 느끼는 피로도도 비례해서 커진다. 하계절 빗속 라이딩은 오히려 피로도가 덜한 것이다. 기온도 좋고 어떨 때는 좀 으스스할 때도 있다. 또 하나 좋은 점은 반대편에서 오는 자전거 통행이 거의 제로가 된다. 이번 토. 일요일 모두 우중이라 반대편 주행로가 뻥 뚫려 있다. 우리끼리 가면서 농담을 한다. 이 넓은 자전거길을 우리가 모두 전세 내고 독점적으로 사용한다고 하면서 웃는다. 오늘도 거의 2-3시간에 한번 정도 반대방향에서 오는 라이더를 본다. 어제오늘 이상하게 서양인들 2 커플을 조우했다. 가끔 이리 서로 만나니 반가웠다. 서로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를 주고받는다.
아침에 이포보를 일차 목표로 정하고 강변을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이질적 그룹이 나타났다. 바로 여주에서 시작한 마라톤 시합이 있었다. 나중에 보니 여주세종대왕마라톤이다. 아니 세종대왕님도 마라톤 하셨나 보네 하고 이상한 생각도 들었다. 문제는 그들이 달리는 코스가 하필 우리가 가는 코스와 겹쳤다. 비가 오니 마라톤 기록이 더 좋을 수도 있다는 잡념도 들었다. 전방에 행사차량이 촬영하며 달리고 바로 최선두 2명 그룹이 달리고 있었다. 한 선수는 아프리카 출신이고 한 선수는 한국인으로 보였다. 하체를 보니 받쳐주는 튼튼한 기둥이 있었다. 마라톤 국제행사라 여겨 한쪽으로 빠져 그들에게 길 양보를 했다.
그들 뒤를 조금 여유를 두고 계속 따라갔다. 특히 주체 측에서 코스에서 빠지라고 시비는 하지는 않았다. 아마 자전거니까 매연배출도 없고 해서 그대로 봐준 것 같다. 당시 속도계를 보니 그들도 우리도 거의 20km 정도였다. 이런 상태로 42.195km를 함께 갈 수는 곤란하다. 눈치를 보다가 조금 도로 폭이 넓은 구간에서 그들을 추월했다. 통상 최고 기록이 2시간대로 알고 있으니 대충 계산하면 평속이 거의 21km 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래서 그들보다 더 빨리 가려고 속도를 내었다.
아마 마라톤 하는 사람도 우중이라 갈증이나 더위를 덜 느낀 것 같다. 1km 간격마다 선수를 위한 음료를 많이 준비했는데 오늘은 별로 팔리지 않을 텐데 하는 쓸데없는 상상도 했다. 도중에 10km 이후에는 더 이상 음료수대가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 보니 5km, 10km, 하프마라톤 대회라는 것을 알았다. 많은 운동이 있지만 마라톤 운동이 가장 인체의 한계점을 느끼는 운동이 아닐까 한다.
이포보 물결 패턴
양평은 오고 갈 때마다 느끼는 점은 자전거 전용로를 찾기 힘들게 만들었다. 남한강 강변을 따라가게 된 길인데 일부 시내구간에서 안내표지가 흐지부지하게 되어 있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길을 헤맨 일이 있었다. 이번에 역시 그러했다. 양평에서 두물머리 방향으로 길을 찾는데 진입로를 잘 찾지 못했다. 몇 차례 되돌아가기를 한 후에 길은 찾았는데 이번에는 도로가 엉망진창 상태였다.
도로포장을 새로 입히는 과정에다 엄청 쏟아지는 비속에 바닥은 완전 뻘바닥이 되어 있었다. 이 상태가 거의 몇 킬로 쭉 이어졌다. 안내판이라도 자세히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 뻘속을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기분은 아주 불쾌했다. 얼마나 더 불편지역을 통과하는 지를 모르는 것도 이용자를 짜증 나게 하는 것이다.
거의 3-4 km 불편을 넘어서자 다시 옛날 보던 정상 도로가 나왔다. 주민 한 분이 사전에 도로공사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설마 하면서 거침없이 진행했었던 것이다. 공지가 안되니 그냥 직행해서 간 것이다. 뻘 밭을 타고 온 우리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은 춘천으로 갈라지는 두물머리 방향에 사람이 몰리는 국숫집이 있다. 비가 억수로 오는데도 모든 테이블이 꽉 점유되고 있었다. 시간이 오후 1시경이라 점식 식사를 하로 온 사람들로 자리를 기다려야 했다. 자전거를 타고 온 우리를 모두 처다 보았다. 그들은 모두 차로 그곳에 온 사람들이었다. 비가 오는데 그 억센 비를 맞고 오는 라이더는 없어서였다.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곳으로 과거 소싯적에 기차를 타고 다니던 추억이 있다. 지금의 자전거길을 기차로 타고 온 것이다. 청평 물이 흐르는 지금의 자전거길 안쪽으로 새 철도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지금의 자전거길을 가다 보면 오래된 당시의 기차 역사도 몇 군데 보존하여 향수를 자아내게 한다. 남한강 자전거길은 명소처럼 되어있다. 철길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자전거 도로는 일단 높낮이가 거의 없는 평평한 도로가 되어 많은 자전거 라이더들을 유혹한다. 게다가 도처에 먹을 것 천지이다. 아예 식도락을 즐기기에 좋을 정도까지 되었다.
남한강 강변을 따라 난 자전거 전용도로는 여러 면에서 가장 잘 되어있다. 과거시대의 유물로 된 철도를 새로 건설하면서 그 경의선 철길을 전용해서 만든 도로이다. 당시에 사용되던 철교는 이제 멋진 자전거 도로로 되었다. 양평에서 하남까지 오는 길에 보면 터널도 거의 9개 정도를 통과한다. 터널은 하계절에 최고의 안락함을 제공하는데 긴 내부 터널을 통과할 때면 어떨 때는 제법 으스스할 정도로 기온이 내려간다. 물론 동계절에는 훈훈한 몸 녹임 효과도 보장된다.
자전거에도 부착된 전자기기가 제법 많다.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전조등, 후미등 등이다. 보조배터리도 필수품이다. 특히 내비를 켜면 너무나 배터리가 쉽게 소모되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비가 안 올 때는 아주 잘 작동된다. 그런데 비가 오면 내부 전기회로에서 비로 인해 합선효과가 생긴다. 그래서 대부분 작동불능 상태가 되고 만다. 바로 전날 3명의 핸드폰이 모두 제대로 작동이 안 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한번 어려움을 겪어서인지 이번에는 내비와 핸드폰, 라이트 등의 전자기기를 자전거에서 모두 탈거했다. 서울까지는 일정한 궤적을 벗어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길을 잃을 이유가 없다. 일직선의 방향만 따라가면 된다.
팔당댐 근처에 왔다. 비가 많이 왔는데 댐하부에는 물이 많지 않다. 아마 홍수조절을 위해 수문을 닫은 것처럼 보인다. 서울 시내에 오니 물이 엄청 불어 있었다. 아 그래서 물을 흘리지 않은 거구나 확신하게 되었다.
우중 라이딩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었다. 날씨가 좋을 때보다 더 열심히 페달링 된다는 사실이다. 빨리 서울에 가서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하고 쉴 수 있다는 생각에 다들 주위의 경치도 보지 않고 더 열심히 페달을 돌리고 있었다. 날씨가 좋을 때는 부근에 명소도 보고 관심을 돌리는 것이 많은데 우중에서는 그게 다 생략될 수 있다. 온전히 달리는 목표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덤도 있다. 하이델베르그의 철학자가 걸으며 사유하듯이 자전거도 우중에서는 더 많은 사유가 일어난다.
함께 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즐거운 여행이 된 것 같다. 고마움을 느낀다. 가까운 시절에 유사한 라이딩이 또 생기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