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하는 1박 2일 일정이다. 먼저 동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문경에 도착한 후 거기부터 자전거로 여주 1박, 이포보 거쳐 서울로 오는 코스이다. 2년 전 코스와는 정반대이다. 한번 갔던 코스도 이리 방향을 거꾸로 해보니 아주 새로운 느낌이 든다.
새벽 0450분 집을 출발했다. 동호회원과 함께하는 3명 그룹이다. 동서을 터미널까지 흐린 날씨 속을 달리니 금세 여명이 밝아진다. 여전히 텅 빈 자전거길로 가끔씩 만나는 반대방향 라이더가 보인다. 약 28km 거리이다. 터미널 도착하여 여느 때처럼 국수로 아침을 때운다. 이런 식사는 아마 4번째 일 듯하다. 부처님 오신 3 연일 연휴로 고속버스에 빈 좌석이 없다.
자전거를 화물칸에 넣으려 하는데 한 분이 자기 자전거를 한편 미리 넣고 문을 닫아 놓았다. 그리고는 그 켠에 우리 자전거 넣지 말라고 한다. 은근히 화가 나서 쳐다보았다. 자전거 복장을 했고 제법 나이가 든 노년 라이더였다. 나도 지지 않고 항변했다. 자전거 바퀴를 빼고 차곡차곡 실으면 4대까지 올릴 수 있다고 하며 함께 가야지 어떡하느냐고 거칠게 큰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제가 해 드릴게요”라고 했다. 그분 자전거의 앞바퀴를 빼고 우리 모두 그러했더니 3대가 겹쳐 올려졌다. 다 처리하고 난 후 나를 쳐다보던 그분이 버스를 타기 직전 기분이 안 좋았던지 말을 했다. 자기 나이가 73세라고 하며 왜 거칠게 말을 하느냐고 항의를 했다. 나는 그제야 조금 정신이 들어 계속 죄송하다 말을 하고 다른 주제로 말을 돌렸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미안한 생각이 들어 각성했다. 문제는 나의 욱하는 성질 탓이다.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기도 한 단골 메뉴이다. 문경 도착 후 그분 자전거를 제일 먼저 재조립하고 작동상태까지 확인하고 인계를 했다. 그분은 타이어 빼는 작업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즐거운 안전한 라이딩 하시라고 서로 웃으면서 작별을 했다. 좋은 마무리가 되어서 기뻤다.
3일 연휴라 고속도로 사정은 가는 내내 길이 끔찍하게 막혔다. 뻥 뚫린 기억이 잘 안 날 정도이다. 3시간 이상 걸려 문경터미널에 도착했다. 1시간 이상 지연 도착한 것이다. 문경 터미널에서 이화령고개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지난번 여름에 더위에 너무 힘이 들어 자전거를 끌고 간 것이 생각났는데 이상하게 이번에는 정상까지 다들 힘들게 타고 갔다. 그때는 염천의 날씨였고 지금은 오히려 선선한 온도의 차이라 본다. 정상까지 비가 오기 직전의 선선한 날씨이고 혼자보다 단체로 가니 에너지가 더 생성되었나 했다. 이 구간은 차량과 자전거 공동의 도로이다. 다행히 오가는 차량은 별로 없어서 주행은 안전했다.
금계화 군락을 이룸
조령산 이화령은 국토종주 시에 가장 긴 경사로 구간이다. 이화령 정상 고도는 540M이다. 정상에 휴게소가 있어서 여기서 모두 휴식을 하는 쉼터로 여겨진다. 자전거로 오르는데 8-9km 속도로 아주 느린 정도이다. 편의점 음료를 먹으며 첫 휴식을 했다. 다른 자전거 라이더들도 많이 보였다.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는 이곳이 2번째지만 동행 2분은 초행길이다. 이제 거꾸로 내려가는 길을 가야 했다. 내려가는 길은 자전거는 즐겁지만 더 큰 위험도 발생할 수 있다. 동행에게 조심을 이야기하며 안전하고 천천히 가자고 했다. 만일을 대비해서 브레이크 작동불능 시 자전거에서 떨어지는 방법(분리 탈출)을 알려주기도 하였다.
브레이크 파열 시 자전거 탈출은 뒤로 뛰어내리는 방법이 있지만 속도 탄력이 붙으면 이 또한 어느 정도 위험을 담보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달리며 한쪽 페달에 한 발로 바닥을 긁으며 감속하다 자전거에서 떨어져 나가는 방법이다. 즉 왼발은 페달 위에 두고 바른 발로 바닥에 접촉하여 감속하는 내가 개발한(?) 자전거 분리 방식이다. 이 방법은 내가 여러 차례 시도했는데 제법 효과가 있었다. 단 신발은 흠집이 많이 나겠지.
내려가면 연풍면으로 가는 방향이다. 우리가 타는 도로는 말하자면 옛날 국도로 차량 주행이 그리 많지 않은 도로이다. 물론 자전거 전용도로는 아니지만. 여기서부터 비는 제법 굵어지기 시작한다. 비옷을 입었다.
비를 맞으며 과거 어머님이 하신 말씀 생각났다. 너는 용띠라서 어딜 가면 비를 자주 만난다고 하셨다. 용은 비구름을 타고 오르니까 그런가 하고 쓸데없는 공상을 해보았다. 나는 한번 약속한 일정을 비가 온다 해서 바꾼 기억이 별로 없다. 쉽게 말해 ‘비는 비고 나는 나다’라는 식으로 일정을 계속했다. 이번에 같이 동행하는 친구들은 지난해 국토종주 마지막 구간인 창녕에서 을숙도까지 함께 갔었다. 그때도 끈질긴 빗길을 함께 간 친구들이다. 2년 전에는 제법 큰 태풍이 왔을 때도 자전거 주행을 포기하지 않았었다. 그럴 때는 빗길을 조심해서 갔고 고생은 심했지만 오래도록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그렇다고 군사적 전투 마냥 무모하게 나아가지는 않았고 언제나 대안을 생각하며 고민하고 진행했다.
중간에 충주를 향해가는 작은 도로변에서 순두부찌개백반으로 점심을 했다. 시장해서 인지 아주 꿀맛이었다. 운동을 하고 시장기를 느끼는 시점에서 식사는 최고의 순간이다. 이 맛에 라이딩을 포함한 모든 활동이 아주 즐거울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데도 비는 꾸준히 온다. 차와 자전거 공용도로가 제법 많아 주행안전에 신경을 써야 했다. 핸드폰 내비 등이 물 젖을 까봐 비닐을 씌웠다. 맑은 날씨보다 특히 비올 때는 때때로 전자적 작동이 안 될 경우가 많았다. 길을 한 두 번 잃어서 헤매기도 하였다. 2년 전 한번 반대 방향으로 왔었지만 기억이 완벽히 나지는 않는다. 하나 시골길을 지날 때 노란 야생화 꽃이 여기저기 군집해서 매우 보기가 좋았다. 도중에 비가 좀 우선할 때 한 두 번 내려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저녁에 남한강 강변에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아침에 논산 창고 갈 때 평택부근에서 자주 보는 물안개였다. 물안개는 아침에만 피는 줄 알았었는데 그게 아니란 걸 처음 알았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몽환적 아름다음처럼 보기가 좋다. 물가로 내려가서 좀 자세히 보았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이제 빗속에서 완전히 젖은 신발은 페달을 저을 때마다 찌걱찌걱하는 소리가 난다.
도중 비로 인해 경미한 사고도 일어났다. 우중에 노면이 미끄러웠는데 한 친구가 내려가는 경사지에서 브레이크가 제대로 안 잡혀 넘어졌다. 반바지를 입었는데 콘크리트 바닥에 무릎을 부딪혀 피가 났다. 다행히 뼈나 근육 등에는 이상이 없어 천만다행이었다. 한번 가슴을 쓸어내릴 뻔했다. 내 신념은 함께 떠나온 사람을 구겨지지 않게 하여 집에 온전히 데려가는 것이다.
예약해 놓은 여주모텔 도착 시까지 거의 쉼 없이 억수로 비가 온다. 저녁 무렵 여주 남한강변 캠핑장을 지나치니 거의 빈 공간 없이 텐트촌이 콱 차 있었다. 시간대가 저녁을 준비하는 때라 다들 불을 피우고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렇게 비가 오는데도 밖에 나와서 여가를 즐기는 모습이 참 평화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우리에게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했다. 비로 인해 내비와 핸드폰, 보조 배터리 등 몽땅 비로 방전되어 전혀 작동이 안 되는 것이다, 모텔을 찾아갈 전자 에너지가 모두 불능으로 애가 탔다.
이때는 옛날식으로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방향을 잡아야 했다. 여주 터미널 근처라고 하여 그곳을 찾아갔다. 물어 물어 모텔에 도착을 했다. 여주는 작은 도시라 위치 찾기가 그래도 좋았다. 숙소에 도착하여 바로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바로 길 하나 건너 많은 식당이 있다. 단백질 보충도 해야 하니 돼지갈비로 에너지 보충했다, 토요일 여주까지 117km 와 서울지역 28km 합치니 주행거리가 140km 넘었다. 일 단계 주행을 마치고 샤워 후 꿀 잠을 잘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