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포사를 하니 연관되어 할 일이 더 있었다. 엽사들이 겨울 사냥철에 사냥해 오는 것 중에 조류의 껍질은 다른 용도가 생겼다. 마치 그 조류가 살아있는 것처럼 똑같은 모양을 살려 박제를 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조류박제 제작 업무를 추가하기 시작했다. 작업의 첫 단계는 조류의 배를 가르고 육질을 들어내는 작업이다. 여기서 정작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은 조류의 껍질이다. 육질은 버리지만 껍질은 그대로 완벽한 복원이 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벗겨진 껍질 부분과 일부 남은 골격 부분에도 방부작업을 한다. 방부작업은 박제된 조류를 오랫동안 원형이 부패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포름알데히드나 시안화 계열의 화학물질을 바르는데 시안화물은 강독성이 있어서 조심을 요하는 물질이다. 근래에는 사용이 중지된 물성이다. 몸통 부분은 조금 굵은 철사로 기본 틀을 만든 후 솜이나 짚 등을 노끈으로 엮어 몸통과 유사한 형태로 미리 만들어 놓는다. 흔히 더미(dummy)라고도 한다. 크기가 큰 박제에는 사전에 나무나 굵은 철사로 가상체를 만들기도 한다.
다음은 날개와 머리 부분을 더미 몸통과 철사로 상호 고정하여 결합을 하는 작업이 따른다. 그리고 실로 배부분을 바느질하여 털로 빗어주면 산 상태의 형상이 되며 손으로 주물러 비슷한 형태를 만들어 낸다. 박제품의 모피와 털이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가 돼야 함으로 브러싱, 스타일링 과정이 필요하다. 이 단계가 가장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나는 부분일 것이다. 약간의 털이 빠지거나 부족한 경우에는 일부에 색을 입히기도 한다. 피가 묻어 엉켜 붙은 털은 알코올로 묻혀 씻고 드라잉을 해주면 원래 모습이 된다.
눈 부분은 사전에 만들어진 아크릴 또는 유리로 된 의안을 끼워 넣는다. 조류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의안이 준비되어 있다. 부엉이 같은 조류의 의안은 상당히 초롱초롱하게 뚜렷하게 되어있다. 조류가 생시에 보여준 눈을 그대로 카피하여 만든 것이다.
한 번은 한쪽 다리가 없는 외다리 상태의 꿩이 사냥되었다. 아마도 오래전에 총에 맞아서 한쪽 다리가 망실된 것 같았다. 그런 상태로 오래 굳어져서 절단 부위가 아주 단단해져 있었다. 이를 본 박제 전문가가 그 상태 그대로 박제를 마운팅 하여 세웠다. 그냥 흥미로 해본 것이다. 캡션을 ‘외다리 꿩’이라 하면 어떨까 하며 웃었다.
만들어진 조류 박제품은 여러 종류인데 그중에서도 꿩이 가장 많았다. 부엉이, 독수리, 기러기, 황새, 백조, 올빼미, 청둥오리 등도 있었다. 겨울 한철에 만들어진 꿩의 박제품 수량은 수백 개에 달했다. 만들어진 박제품은 전량 일본으로 수출되어 나갔다. 현재는 대부분의 조류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따라서 이를 이용하여 박제를 만든 것이 불법이지만 당시로서는 불법이라는 개념이 정립되지 않을 때였다. 이렇게 일부 대형 조류들은 박제되어 여러 박물관 등에 공급하기도 했지만 주된 수요처는 전부 일본이었다. 수출 중개인을 통해서였다. 왜 그 많은 박제품이 모두 일본으로 나갔는지는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겨울철에 박제 사업을 하기 위하여 일류 박제 전문가를 모셨다. 당시 서울 종로 7-8가 쫌에 박제하는 영업집이 많이 번성하여 군집되고 있었다. 그중에서 한 분이 겨울철 내내 아예 지방 우리 집에 오셔서 기거를 하셨다. 이 분의 업무는 작업장에서 하루 종일 박제를 만드시는 것이다. 제작된 조류 박제품은 내부 공간 천정에 횟대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만든 박제품을 걸어 놓고 일정기간 건조하는 작업이 따랐다. 문제는 아직 일부 잔존하는 육질과 동물 외피에서 나는 냄새는 어쩔 수 없었다. 거기에 부패를 방지하기 위하여 내부에 바르는 방부제의 냄새까지 더해졌다.
내가 하는 역할은 이 분이 작업을 하는데 필요한 용품의 조달과 작은 심부름 정도를 했었다. 그런데 젊은 내가 관심을 보이고 자주 관찰을 하자 이분께서 나에게 박제를 하는 것을 조금씩 가르쳐 주었다. 가장 기초가 되는 부분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목부분과 날개 부분에 철사를 연결하고 다리에 구멍을 내어 나무판에 세우는 마운팅 작업도 하나씩 배우기 시작했다. 그런 초보업무를 하나씩 익히기 시작했다. 이런 수행을 여러 해 하다 보니 제법 준 도제가 되었다. 수년째 이분이 겨울철마다 만나면 그 일을 함께 하기도 하였다. 박제작업은 수렵철이 끝나면 종료되는 것이라 오직 겨울에만 우리 집에서 이 분이 기거하신 것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한 엽사분이 사냥을 하다 발견된 독수리 알이 있었다. 그것을 가지고 계란 부화장에서 부화를 시키는 작업을 했고 드디어 새끼 독수리가 알에서 부화되었다. 우리 집 일부에 별도 공간을 할애하여 이것을 키웠다. 먹이는 생선등을 먹이기도 했고 여름철에는 개구리를 잡아서 먹였다. 개천이나 논에 나가서 개구리를 잡는 역할은 동생들과 내가 했다. 이 독수리에 음식을 먹이는 역할을 오랫동안 맡아서 잘 한 덕분에 독수리는 무럭무럭 잘 컸다. 독수리가 커 가면서 날개가 펄럭거리는데 지장이 없도록 우리 공간도 확장해야 했다.
다른 또 하나의 문제는 1년 정도 지나자 깃털이 까맣게 되고 날개의 털도 성장하여 골격이 거의 완성되었다. 이제 날아서 훨훨 도망을 간다면 이것이 걱정되어 우리의 천정에도 큰 그물망을 만들어 쳤다. 가끔 이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한 주요 일간지 기자분이 이것을 신문에 기사화하였다. 사진을 찍고 그리고 기사를 덧 붙였다. 아이들이 먹이로 개구리를 잡아다 주면 고맙다고 꼬리를 흔들어 댄다고 하는 이야기까지 덧붙였다. 이 이야기는 전혀 사실이 아니었는데 그 기사를 보고 우리 가족은 모두 박장대소했다.
독수리 사육은 약 2년 정도 지나고 더 이상 성장이 멈추었고 잘 크지 않았다. 눈에는 이물질이 끼고 야생조류가 제대로 발육이 더 이상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연의 상태에 있어야 할 거대 조류가 좁은 울안에 있는 것이 성장을 억제하게 된 것이다. 결국 독수리는 죽었고 이를 가지고 박제하시는 분이 특기를 발휘하셨다. 웅대하고 멋진 박제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독수리 박제품은 커다란 유리상자에 넣어서 보존하였다. 총포사에 오시는 많은 분들이 꿩 같은 작은 조류 박제만 보다가 거대한 독수리로 만들어진 모습을 보고는 “야, 멋지다”라고 한 마디씩 했다.
이 박제작업은 국내에서 시행된 금렵조치로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세월이 흘러갔고 우연히 이분을 TV에서 보게 되었다. 독도의 조류 생태계를 설명하는 프로에 이 분이 등장하셨다. 아는 분이 출연하여 깜짝 놀랐다. 그분이 누군지 나타내는 캡션은 모대학의 생물학과 교수님 직함을 달고 있었다. 우리와 헤어진 후 그분은 또 다른 경력을 하고 계셨던 것이다.
근래에 해외 박물관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특히 미국이나 영국을 방문할 때 자연사 박물관등을 볼 기회가 있어 여러 가지의 다양한 박제된 동물과 조류 등을 볼 기회가 있었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완벽을 기한 모습이었다. 이제 박제술은 단순 기능을 넘어 고도의 예술적 경지에 이르렀다. 지금은 국가에서 공인된 기능명인의 자격도 부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