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van shim Oct 26. 2023

제2의 칭기즈칸, 아미르 티무르(2)

(카리스마의 소멸)

(part 2)


칭기즈칸과 티무르의 승리에는 상호 유사한 방식이 많았다.


그들은 스스로 원정을 행했고 항상 최일선에서 전쟁을 지휘했다. 티무르는 적장과 일대일의 전투도 마다하지 않았다. 티무르는 상대보다 항상 수적으로 열세의 조건에서도 항상 연전 연승했다. 그는 부족한 병력을 탁월한 지위능력과 카리스마, 병사들의 사기로 커버하게 된다.


군사전략 면에서도 티무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앞섰다. 칭기즈칸 이후에 기마군은 이제 누구나 다 갖춘 전술이라 더 앞선 군사조직 체계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추가적으로 포병. 보병. 공병 그리고 코끼리 부대도 창설했다. 현대전으로 치면 장갑차나 탱크와 같은 특수 병기이다. 이들 모두는 전투 시 상호 연합작전이 가능하고 특히 기동성을 극대화한 것이다.


적에게 심리전을 이용하기도 했다. 항복하면 모두 살려주고 대항하면 다 죽는다는 심리전술을 폈다. 이 심리전술은 잘 작용했다. 이 본보기를 지켰고 실제로 대부분의 함락이 싸우지 않고 공포에 의해 항복을 받은 것이다.


그들은 승리 후에 전시에서 획득한 노획물 대부분 부하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래서 병사들은 전쟁을 더 희망했다. 이 지도자를 따르면 철저한 승리의 보상을 받는 것이다. 성과에 따라 최고의 인센티브를 주었다.


티무르도 칭기즈칸처럼 기술자와 장인, 지식인을 끌고 와서 그들을 이용하였다. 전쟁이 끝나면 기술과 특기를 가진 사람들을 사마르칸트로 데려와서 국가 인프라를 만드는데 이들이 가진 기술을 이용하였다.


몽골처럼 티무르의 사마르칸트는 여성들이 남성과 똑 같이 차별 없는 국가였다. 이슬람 세계인데도 여성은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고 남성처럼 말도 타고 다녔다. 칭기즈칸 시대와 너무 흡사하게 여성들이 대접을 받았다.






source : 나무위키


말에서 정복은 쉬우나 말위에서 통치는 어려운 법이다. 그리고 국가의 지속 가능성은 더한층 어렵다. 통상 정주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외부에서 들이닥친 유목민들의 침공이다. 반대로 유목민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외부에 있지 않았다. 그들 내부에 있었다. 바로 내부 분열이다.


흉노가 한나라에 패배를 당했다. 직시할 것은 한나라가 강해서가 아니고 흉노의 내분 때문이다. 돌궐도 당나라에 의해 힘을 빼앗기고 물러났다. 이것도 그들 내분에 의한 것이다. 칭기즈칸 대제국이 왜 그리 단기간에 사라졌을까. 물론 수백 년 유지했지만. 그들 내부의 분열에 의해서이다. 티무르제국도 동일하다. 유라시아를 통합한 대제국은 그가 죽자 제국은 사실상 구심점이 없어진다. 외부에서 누가 그들을 패퇴시키지도 않았다. 그들 내부 에너지는 티무르가 죽자 더 이상 끓어오르지 않았다.


유목제국은 수세기에 한 번씩 세상을 뒤흔들 영웅이 태어난다. 흉노의 묵돌, 훈의 아틸라, 몽골의 칭기즈칸, 티무르제국의 티무르 등이 세계 역사상 가장 거대제국을 만든 영웅들이다. 그들은 생존 기간에 순식간에 세상을 지배한다. 그러나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가 없어지면 이후 거대 제국을 이어받을 대안이 없다. 후계승계의 혼란과 같은 내부 분열로 바로 소멸의 길로 이어진다. 외부세력들은 이때를 최대한 이용한다. 손쉽게 그들을 패퇴시킨다.


유목국가는 시스템에 의한 통치가 아니고 통치자 카리스마에 의해 통치된다고 보아도 틀림없다. 일부는 법령을 제정하여 통치 거버넌스 시스템을 도입되기도 했지만 유목문화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티무르가 가는 곳은 언제나 승리뿐이라는 신화는 계속 지켜졌다. 그러나 그가 죽고 나서 그 제국 후계자 중 어느 누구도 사마르칸트를 떠나 대외 원정을 나서지 않았다.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던 실크로드는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후 티무르의 궤적은 역사 속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후세의 정치지형에 따라 의도적으로 그를 안 보이게 덮어버렸다. 이제 다시 세상은 그를 제대로 평가해야 할 때이다.


티무르 흉상 (source : 나무위키)


PS. 티무르의 관에는 무시무시한 경고가 있었다. “누구든지 내 관을 열면 전쟁이 그 나라에 터질 것이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소련 스탈린의 명령으로 그 관을 열라고 했을 때 그날에 독일의 히틀러가 침공했다. 티무르의 경고를 두려워한 스탈린은 즉시 그 관을 다시 납으로 봉함하라 했다. 그 결과는 스탈린그라드에서 다시 소련군이 승리했다. 그 이후에는 영원히 누구도 그 관을 열려는 시도를 다 접었다. 소위 티무르의 저주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2의 칭기즈칸, 아미르 티무르(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