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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an shim Nov 01. 2023

포터들이 도중에 멈춘 이유는..

(히말라야 탐험가는 못 본 것)

 


관록과 신기술, 무엇이 세상을 이롭게 하나 


오래전부터 미국 프로 스포츠계를 보면 언뜻 이해 안 가는 것이 있었다. American football 감독들이 대부분 백전노장 급인데 그러니 다들 고령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한평생 그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최고 능력자임에는 틀림없다. 미국의 구단주들이 신선하고 젊은 에너지를 가진 젊은 스포츠 감독을 선임하지 않고 경험 많은 나이 든 감독을 선호하는 데는 나름대로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젊은 에너지보다 노장의 관록을 더 중시한다는 것이다. 노장의 경험과 리더십, 그들의 안정성이다.  


스포츠계를 제외하고 다른 분야는 반대의 사례도 많다. 특히 신기술을 중시하는 분야에서는 많은 젊은이들이 활동하고 있다. 관록을 중시하는 분야에는 경험이 많은 백전노장을 주로 쓰고, 새로운 기술이 필요한 분야는 젊은 사람들을 쓰는 것이다. 적요 적소에 합당한 사람을 쓰는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여겨진다. 


며칠 전 치과에 갔다. 특별히 치과적 이슈가 있어 서가 아니고 예방차원의 점검과 스케일링을 위해서였다. 이 치과는 수십 년 전부터 같은 동네에서 영업을 하고 있어서 나와 의사선생도 잘 아는 사이이다. 그러니 아주 고령의 의사였다. 지금껏 나의 치과적 치료와 검사는 모두 이분이 맡아서 처리를 해 주신 것이다. 심각한 치과 분야에서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던 이유는 아마도 건치를 타고 나서인 듯하다. 주위에 나이 든 사람들이 대부분 임플란트 시술을 하는데도 나와는 무관한 이야기로 넘겼었다. 


한 번은 우연히 아들과 치과적 진료 이야기를 한 일이 있다. 그는 만일 내가 임플란트 시술을 한다면 젊고 능력 있는 신세대 의사를 찾으라고 말을 했다. 그들은 최고의 신 기술로 무장한 의사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익히고 돌아와서 믿을 만하다는 이유였다. 물론 “그때 닥쳐서 보자”라고 하며 나는 웃고 말았지만, 과연 누가 옳은 지 잘 모르겠다. 한평생 외골수로 그 분야에서 자기 길을 판 사람과 연륜은 짧지만 새로운 시대 기술을 터득한 사람 중 누가 더 나은지는 글쎄 잘 판단이 안 서는 것이다.



오래전 이야기이다. 연로한 어머니께서 오래 의치(틀니)를 하셨다. 하도 오래 사용하다 보니 새로 해야 했다. 그래서 내가 좋은 대학병원에서 틀니를 하자고 했다. 어머님은 반대를 하셨다. 오히려 더 불편하니 그가 아는 무면허 치과 의사에게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분은 정식의사가 아니다. 소위 야매로 틀니를 하시는 분이다. 그 기술을 일제강점기 일본인 의사에게서 전수받은 분이다. 어머님 말씀이 그전에 좋은 대학병원에서 틀니를 맞추었는데 계속 불편하고 통증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그분에게 의뢰를 했다. 나이가 한창 되신 그분은 처음에는 사양을 했는데 계속 어머님이 졸라대니 어쩔 수 없이 틀니를 만들어 주셨다. 결과는 대 만족이었다. 아주 잘 맞고 아프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리 만족히 오래 잘 쓰시고 계셨다. 이 경우는 최고의 관록이 세상을 이롭게 한 것으로 보인다. 젊은 혁신적 신기술 의사보다 고객에게 더 필요한 분이었다. 


각자의 용도가 있다. 세상을 두루 익힌 공자님은 난세의 세상살이에 필요한 지혜를 주고 갔다. 그가 뿌린 사상은 지금 시절이 한없이 갔는데도 여전히 그의 존재가치는 흔들리지 않는다. 동양철학의 본류로 인정받는다. 누가 감히 그를 두고 꼰대 같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이라는 선상의 대척점에 선 약관의 알렉산더도 있다. 그는 젊음과 에너지로 말위에서 세상을 정복했다. 


만일 두 사람이 서로의 역할이 바뀌었으면 어떠했을까. 만일 공자님에게 복잡하게 꼬인 난세의 세상을 알렉산더처럼 정복해 보라고 했으면 “오냐” 하고 말을 들었을까. 알렉산더에게 세계 평화를 위한 치국원리를 자문했으면 쉽게 지혜를 알려 주었을까. 묻지 않아도 답을 알 것이다. 나무 위에서 물고기를 찾는 것과 다름이 없다. 


source : unsplash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급변하는 세상이다. 특히 인터넷과 연결되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로 이제 IT 는 모든 것들(IOT)로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근세에 모든 세상이 디지털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젊은 이들은 금세 세상의 변화 흐름을 알고 주류를 터득한다. 어려움은 나이 든 사람들 몫이다. 햄버거 샵에서는 이제 디지털 키오스크에서 음식 주문을 하는 세상이다. 사람을 통한 음식주문 시대는 없어졌다. 이것을 잘 모르는 노인들의 낭패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뒤에서 기다리다 지친 젊은 이들이 자꾸만 쳐다보니 그만 도중에 포기하고 다른 음식을 찾아 나가야 한다. 


은행에 가도 마찬가지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세상에 언제까지 은행 순번을 한없이 기다려도 기다림은 접점 더 밀릴 수밖에 없다. 이런 세상이 되어가는 것은 나이 드신 분들이 처음 겪는 세상이다. 억지로라도 스마트 폰을 익히고 정보세계에서 사는 방법을 찾지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디지털 기본 소양이 없는 노세대는 배움이 제대로 될 수가 없다. 잘 익은 술이 맛있는 법인데도 다른 맛으로 시대적 입맛이 변한 것일까. 빠른 세상만이 항상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진득하게 기다리는 세상도 또한 필요함을 이해해야 한다.



PS. 초기 히말라야 탐험가들이 겪은 일이다. 짐을 지고 산길을 가던 네팔의 포터들이 갑자기 서서 움직이지 않았단다. 왜 안 가느냐고 이유를 묻는 탐험가들에게 그들이 말했다. “우리의 육신이 너무 빨리 가서 마음이 함께 하지 못했다. 잠시동안 마음이 우리를 찾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야 한다”라고 말했단다. 몸과 마음이 함께 이동을 해야 되는데 급히 서두르면 혼이 나간다고 말하는 것과 진배없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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