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아이러니, 사랑과 아이러니, 인생은 아이러니.

by 세균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나랑 같은 학교를 다니며 같은 중학교 친구였던 애를 만났다.


사실 난 그 친구를 어릴때는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흔히 말해 어릴적 찐따같았기 떄문이다. 사실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문제가 있는 애는 아니였다. 다만 그친구와 같이 노는 아이들이 멋있어보이지 않았기에 난 어린 마음에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고등학교까지도 티는 내지 않았지만 조금은 기피했었다.

참 어리고 내가 혐오하는 인간 유형중 하나인 인간이 나 자체였다.


사실 나란 사람도 진실을 원하고 항상 진심이고 뭐고 이런 소리를 하지만, 나 자체의 가면도 두껍고, 모순되며, 남을 속이고 살아가는 인간중 하나이다. 다만 내 본심은 서로가 가면은 벗어던지고 진실로 가까운 사이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존재할뿐이다.


아무튼, 전철에서 그 친구를 만났지만 얼굴에 우울함과 불안함, 피곤함이 가득차 보였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나에게 위로가 됐다. 나만 우울한게 아니구나, 나만 인생이 좆같은게 아니구나...!

그리고 그 친구에게 물었다. 점점더 깊이 물어나갔다. 사실 목적에는 그 친구를 위로하고 해결해주고싶은 마음이 주가 아니였다. 그저 그 친구의 걱정과 우울이 나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고, 그 과정에 내 생각과 내 깊음을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었을수도 있다.


그 친구의 우울은 내가 전부 알지는 못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친구는 현재 그리고 최근 1년동안 본인에게 너무 많은 과업과 집, 그리고 부담감이 차 있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그리고 의미를 알수없는 버림받음으로 내 인생 가치와 목적과 의미, 나란 인간의 정체성,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고민, 사랑에 대한 깊은 고찰, 이 세상과 사회의 현실이 주였다. 반면 그 친구는 실질적인 본인의 인생에서 처한 사회적 위치와 그에 따른 부담감과, 업무강도, 그 사이에 껴있는 대인과의 관계와 피곤함이 주였다.


그냥, 한마디로 그는 자신이 수용할 정도를 넘어선 짐과 부담이 많았다. 그는 우울함도 참 많다고 했다. (사실 그 점은 난 어렴풋이 고등학교때 느꼈다.) 나는 속으로 반가웠다. 그리고 그 우울함이 반가워 나도 내 깊은 이야기와 우울함을 전했다. 누군가와 이리 깊은 이야기를 할수있음에 너무나 만족했다.


그와 대화 내용중 유난히 기억나는 것은 그가 이리 힘든 상황때 종교가 큰 힘이 된다고 이야기 했다. 그치만 사실 그가 이리 힘든 이유는 그가 종교적 목적과 신앙심, 그리고 그 종교동아리에서의 입장과 위치로 인한 스트레스였다.


참 아이러니 했다. 종교 관련 이유로 힘들면서 종교로 그나마 치유가 된다? 난 솔직히 마음에 안들었다. 그치만 종교는 개인의 자유이기에 내가 감히... 아니 감히보다는 굳이 참견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난 그저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할 뿐이다.


나도 한때는 그와 다른 종교여도 내 인생이 풍요롭고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정말 하루하루 기도했지만, 끝내 재때 이루어지지 못한 (가능성은 아직 있음에도 시기는 늦어버린) 경험이 존재한다. 그리고 내 인생이 무너졌을때도 오히려 그 종교때문에 더 인생이 밉고 버림받은 감정이 든 경험이 있었다. 내 인생은 무너지고 힘든데, 난 정말 몇년간 하루하루 빠짐없이 빌고, 기도하고 행복하길 바랬는데 이정도로 무너진다고? 오히려 배로 무너지고 내 안에는 증오로 가득찼었다.


내가 행복하길 바라는 그 바램이 오히려 날 불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정말 무너진후 난 오히려 종교에 대한 기대와 꾸준함을 버렸다. 그리고 이번에 그와 이야기 하면서 나도 모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오히려 종교를 동경하고, 존경한다면, 그 종교와 나를 위해서는 내려놓는게 필요한거는 아닐까?"

그 이유는 명확하다. 정말 내가 좋아서 그 누구도 억지로 강요한게 아닌 개인의 자유의 영역안에 존재하는 종교인데, 그리고 솔직히 실질적 존재하는지, 그 주체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보면 환상속 이상적인 대상들인데, 그러한 대상에게 집착하고 왜곡해 버린다면 결국 행복해야할 수단이 불행으로 바뀌는거 만큼 아이러니하고 어이가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 발생할수가 있다.


종교생활은 내가 원해서 하는거지 의무감으로 이어가는게 아니다. 난 그 사실을 몰랐기에 집착하고 믿고, 과도하게 의지했기에 무너졌다.

기도를 개인적 만족감 내에서, 허용범위 내에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하는거지, 내가 부담스럽고 귀찮다는 생각이 드는 수준까지 간다면, 그건 기도가 아니다. 그저 희망고문에 미쳐서 주체성없이 의미도 없이 시간 낭비를 하는거다. 정말 위험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종교를 버렸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저 내려놓았을뿐이다. 종교가 나에게 스트레스와 부담으로 오지 않았으면 할 뿐이다.


그리고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고 원한다면 오히려 내려놓아야 하는건 아닐까?


종교뿐만이 아닌 사랑도 똑같다. 내가 무너진건 내 사랑의 감정에 기대서, 사랑의 대상에 의존하고 기댔기 때문에 그 상대의 변덕으로 난 죽었다.

무엇이든지 꼭 붙들고 붙잡으면 결국은 무너지고 만다. 난 이 사실을 몰랐고, 지금도 실행하기 어렵고, 더나아가 실행하지 못하지만, 그 사실을 알았다. 내가 앞으로 또 사랑을한다면 그 불확실하고 기만적인 감정에 속아 또 기대고 의존할 확률이 높다. 이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제는 알았기에 그러지 않기위해 노력할 기회가 생겼을 뿐이다. 하지만 동시에 난 너무나도 이러한 사실이 슬프고 짜증이 난다. 난 서로 기대고 의존하는 사랑을 하고 싶다. 그렇지만 함부로 그러기에는 위험하다. 상대는 믿을수 없는 타인과 타인이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위험한 인간이고, 반대로 나 또한 상대방과 타인은 위험한 경계 대상이다.


내가 혐오하는 인간 행동임에도 가면 둘러쓰고 가짜로 상대방을 대하고, 속으로 어릴적 처럼, 그친구에게 대했던거 처럼 깔보고, 혼자 판단하고.

행복을 위해 믿는 종교가 불행의 원인이 되고, 혹은 불행에 가담하고.

사랑하기에, 무너지지 않기위해 붙잡지만 그로인해 무너지고, 결국은 내려놓으니 만족하고.

그와 동시에 내려놓는 그 행위 자체가 불만족이지만 내가 원하는대로 세상은 진행되지 않고.

이 모든것들이 아이러니하다.


난 그 아이러니함 속에서 생존하고 익히고 살아가는 이 사회와 세상이 난 정말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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