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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니뿌니 Apr 13. 2022

과거를 곱씹기 딱 좋은 전화번호부 2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제일 모른다.

길고 긴 전화번호부의 중간쯤에 있는 A는 그렇게까지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다. 수업은 시간이 되면, 마음 내키면 나와 들었다. 오전 수업에 교내에 있었는가 싶으면 오후에는 사라져서 같이 어울려 다니던 문제아 삼인방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전화해보라고도 하였다. 1학년 두 학기 내내 성적이 안 나와 유급해서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학교를 포기하지는 않고 다시 1학년으로 내려가 졸업할 때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했다.


왜 그리 학교에 정을 붙이지 못했는지를 물어보자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방학 내내 학비를 벌어야 했는데 개강하고도 등록금이 모자라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고, 처음 몇 주 결석했더니 수업에 따라올 수 없고 과제가 뒤처져서 또 결석하게 되고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갔다고. 그렇게 또 한 학기 학사경고를 받고 애써 벌어놓은 등록금은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졌다고.


수업 이해력이 나쁜 것도 아니었고  소프트웨어도 곧잘 다루어서 어떻게든 학교만 나와있으면 성적이 나갈 텐데 도무지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삼인방이 한꺼번에 안 나올 때도 있었고 가끔씩은 따로따로 나오기도 했다.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느라 지각하는 학생들은 꽤 있었는지라 "너도 게임했지?"라고 물어보니 아니란다. "저는 게임 같은 거 안 해요."라는데 거짓말 같지는 않다. 성적만 나쁘지 않으면 국가장학금(국장)을 받으니 알바 안 해도 되지 않느냐고 해도 자신은 국장을 못 받는단다. 할만한 학생이 자꾸 뒤처지면 분명 무슨 이유가 있게 마련이었다. 긴 상담을 하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학생이 이해가 되면서도 답답하기도 하였고 많이 짠 하기도 하였다.


이 학생의 문제는 계속해서 악순환이 지속되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등록금을 더 이상 안 주시겠다고 선언하셨고, 학교 졸업은 헤야겠고, 등록금을 내기 위해 알바를 해야 하는데 방학 동안만 하다 보니 금액이 모자라고, 금액을 맞추다 보니 학교를 나올 수 없고, 학교를 못 나오니 성적이 엉망이고, 성적이 엉망이니 부모님은 학교 그만두고 직장이나 알아보라 하고...... 부모님을 찾아뵈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오래전에 이혼하시고 A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작은 사업을 운영할 만큼 A의 어머니는 그 지역에서는 자리도 잡고 소위 소득분위도 높은 분이었다. 국장이 안 나오는 이유는 물론 학생의 성적이 좋지 않았음도 있었지만 어머님의 소득 분위가 높아서이기도 했다. 국장은 소득분위가 낮거나, 다자녀, 국가유공자 등의 해당사항이 있어야 받는다. 등록금을 주실만큼의 여유가 있는데도 안 주시겠다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였다.


미리 연락을 드리기는 했으나 A의 어머니는 매우 바쁘신 것 같았다. 잠깐 짬을 내어 빈 방에 A의 엄마와 마주했다. 나를 보자마자 하신 첫 말씀은 "A가 어렸을 때 이혼을 했는데...... "였다. 요즘은 이혼이 창피하거나 숨길 필요도 없어지긴 했다지만 그렇다고 대화의 첫머리에 물꼬를 트는 주제로도 적당하지는 않다고 생각하는데, 대개의 경우 상담의 사유가 자신에게 있다고 느껴져서 그러는가 학생과 부모 모두 이혼의 주제로 상담의 물꼬를 트게 되는 경우가 그 전에도 많았다. 이혼이라는 사건이 그들의 인생에 매우 큰 영향력을 미쳤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엄마의 말씀은 그랬다. 젊어서 이혼을 하고 어떻게든 먹고살아야 하는데 새로운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되고 그 분야에서 노력하다 보니 어찌어찌 여기까지 왔노라고. 당신의 아들이 책임감 없고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건 볼 수 없어서 A가 어렸을 적부터 엄하게 키웠노라고. 공부 열심히 해서 성적도 잘 나오고 성실하게 사는 것을 보여주면 당신도 얼마든지 등록금을 줄 수 있다고. 당신은 아들을 강하게 키우고 싶다고...... 부모로서의 역할을 편모로서 혼자 잘 해내고 싶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농사는 잘 지었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는 뜻으로 이해되었다.


A의 엄마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학교에 잘 오지도 않던 A를 붙잡아 내 방 의자에 앉히고 오늘은 네게 꼭 이유를 들어야겠다고 다그친 적이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 중에 왜 개강을 해도 학교에 나오지 않는지 묻고 있었다. 알바를 한다는 얘기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 얘기를 하기 꺼려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결국에 나는 그렇다면 네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는 수밖에 없겠다 했는데 갑자기 A가 눈물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은 절대로 엄마에게는 비밀로 해달라고 애원했다.


길어야 두 달 조금 넘는 방학 동안 등록금을 벌 수 있는 알바는 흔치 않다. A가 했던 알바는 대학생이 할 수 있는 알바가 아니었다.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 멀리 원정 알바를 했는데, 이를테면 술과 노래가 있는 노래방이라 했다. 왜 멀리 그런 곳을 갔냐고 했더니 돈이 좀 되기도 하고 이 지역에서 하면 들키기도 할 것 같아서 그랬다는 거였다. 계약한 기간 동안 일을 해야 월급으로 돈을 주는데 등록금을 맞추기 위해서는 개강 후까지 계약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데 해 줄 말은 없어지고 짧은 한숨이 계속 새어 나왔다. 등록금을 안 주시겠다는 부모님 원망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졸업을 하고 싶다는 학생을 대견하다고 해야 할지. 아들이 돈 벌러 타지에 나가 있는데도 캐묻지도 않는 부모나, 묻는다고 대답을 할 것 같지도 않은 아들이나 도대체 어디서부터 매듭을 풀어야 할지 난감했다. 선생님은 제가 무슨 일까지 당했는지 모르실 거예요...... 하는데 억장이 무너졌다. 너무 안쓰럽기도 하고 너무 화가 나서.


그렇게 아들이 정말 어렵게 스스로 돈 벌어 등록금을 냈다는 사실을 A의 엄마는 몰랐다. 두 시간 넘게 엄마와 상담하는 동안 나 보다는 엄마가 더 많이 말씀을 하셨는데, 비슷한 연배에 아들을 키우는 엄마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그랬던가 그동안 살면서 힘들었던 얘기를 담담하게, 때로는 언성이 좀 높아지면서 풀어놓으셨다. 내가 무슨 말을 엄마에게 했는지 정확하게 생각나지는 않지만 하나는 기억한다. "어머니, A 등록금은 어머님이 꼭 주세요. 책임감을 기르는 것도 좋지만, 아직은 그보다 학교 졸업이 우선인 것 같습니다. 제가 잘 다독여서 꼭 졸업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A를 믿어주세요. 아니면 저를 믿어주세요"


그 후로 A는 가끔 결석은 했지만 어머님이 주시는 등록금으로 학교 잘 다니고 졸업도 하였다. 우수한 성적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중위권으로 졸업했으니 아주 잘 된 일이었다. A는 가끔 나에게 "엄마"라고 불렀다. 불쑥 뱉어놓고 "그냥 꼭 엄마 같아요"하고 얼버무렸다. 졸업 후 군에 가서 대학교에서 배운 지식으로 짬짬이 알바하여 돈을 번다고도했다. 제대하면 이 분야로 계속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잘 지내고 있다고 지지난 추석에 감사의 카톡도 주었다. 감사의 카톡을 받고 감사를 해야 할 사람은,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나라고 생각했다.


자식을 제일 사랑하면서도 모르는 사람이 부모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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