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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니뿌니 May 11. 2022

수업 스케치 1_뻥!

그럴듯한 거짓말과, 아닌 것 같은 진실.

뻥!


대학에서의 수업은 초중고 수업과 비교하여 사실 많이 다르지 않다. 전교생이, 아니 전국의 고교생이 똑같이 배우는 '언수외사과'에서 해방되고, 전국 모의고사 석차의 내림차순에서 해방되며, 나름 내가 선택한 전공 공부의 영역이 비교적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는 정도다. 예전에 배웠던 '언수외사과'와 비슷한 과목들이 '교양과목'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이면서 시류를 반영하여 근사하게 이름만 살짝 변질되어 있을 뿐이다.  


등하교 시간이 들쭉날쭉하고, 수업도, 시간표도 내가 선택해서 듣고 만들 수 있으니 얼마나 자유로울까 하지만, 자유가 있으면 책임도 따르는 법, 마냥 자유로울 것 같은 자유와 책임의 크기는 대학 들어오면서 확 늘어난 등록금의 액수와 정확히 비례한다는 걸 그들도 머지않아 곧 깨닫게 된다.


대학에 가면 공부에서 해방되고 연애사업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게 다 뻥이고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건 대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바로 안다. 선배들은 그런다. 너무 성적에 올인하지 말라고. 물론 뻥이다.


신입생 면접 때 이렇게 물어본다. '우리 과는 과제하려면 며칠씩 밤을 새야 하는 경우도 많을 텐데 할 수 있겠니? 아마 고등학교 때 보다도 더 열심히 해야 할 텐데 할 수 있겠어?' 그러면 백이면 백 다 '네' 한다. 물론 뻥이다. 그게 뻥이라는 것은 물어보는 나도, 대답하는 예비 신입생도 안다는 게 진리.


대학생이 되면 자신이 정한 규칙과 책임의 범위가 넓어지고 그래서 학과생들에게는 알아서 하겠지 하고 공부해라를 별로 하지 않는다. 대신 결석 시수가 좀 많다거나 과제 제출일을 매번 지키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최후통첩을 날릴 때가 있는데 멘트는 대개 비숫하다.

"너, 이러면 학점 안 나간다." 내지는,

"한 번만 더 결석하면 F야.",

"너 어쩌려고 이러니, 다음부턴 꼭 해와. 알겠지?",

"뭐라도 제출해야 성적을 주지. 나도 근거가 있어야 성적을 줄꺼아냐."


멘트들 중에도 먹히는 정도에 따라 난이도가 있는데 제일 잘 먹히는 건 역시 이거다.

"부모님 휴대폰 번호가 어떻게 되니?"

무슨 말을 굳이 부모님께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단지 번호만 물었을 뿐인데 뻥의 효과가 바로 나타난다. 솔직히 다 큰 성인이 공부 좀 안 한다고 부모에게까지 알리는 교수는 없다. 다른 멘트들은 얼마간은 학생들에게 내성이 생겨 시간이 지나면 효력이 없어지는데 이 질문은 아직 쓸모 있다. 좀 독한 처방을 내려야 할 때 사용하는 일종의 치트키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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