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를 들을 때 흠뻑 몰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두 손으로 턱 괴고 그의 얼굴을 보며 멍하니 연주 동영상에 귀만 열어놓는 것이다. 비디오와 오디오가 동시에 보고 들려야지, 연주회라고 해서 오디오만 들리는 건 뭔가 허전하다. 그래서 정지된 화면만 잔뜩 나오는 유튜브에서의 그의 연주는 별로다. 연주자가 반드시 내 눈에 보여야 나는 좋은연주를 봤다고 말한다.
티 없이 말간 피부에, 연주에 몰입했을 때 너무 찡그리지 않는 얼굴 표정, 하얀 손가락의 놀림, 날렵한 옆얼굴 라인, 찰랑거리는 머리......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피아노를 정말 잘하는구나 하고 감탄하며 그의 연주가 끝나면 그곳이 거실이건 차 안이건 나는 두 손 모아 격렬하게 박수를 친다. 물론 운전 중에는 직선거리에서만 두 손 모아 손뼉 친다. 고속도로에서 차 안이 떠나가라 크게 들을 때가 그래서 제일 좋은데, 회전 구간에서는 한 손은 핸들 잡고 다른 손으로 운전대라도 두들긴다. 입으로는 연신 '브라보'를 외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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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피아노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니 연주 실력을 평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을 테고, 그저 내가 보고 느낀 연주자들의 연주를 말할 뿐인데, ISTJ라서 그런가 어떤 악기든 기본에, 악보에 충실한 연주가 나는 듣기 편하다. 클래식 Classic 이란 의미가 원래 그렇기도 하고. 음은 악기가 내지만 그 소리를 컨트롤하는 것은 연주자이니 자연스럽게 몸짓과 얼굴 표정에 곡의 느낌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연주자는 연주하는 동안 악보의 음률과 어울리는 장면을 시각적으로 상상할 수도 있겠고, 그 상상의 느낌을 악기로 표현하면서 청중에게 온몸으로 그 느낌을전달하니, 연주회는 보고 듣는 시각과 청각 모두를 사용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런 비주얼 제스처가연주의 일부이고 그래서 나는 '연주를 듣는다'라기보다는 '연주를 본다'라고 하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연주자의 바로 위에서 연주자의 정수리가 보이는 카메라 앵글을 좋아한다. 화면 가득하게 피아노의 건반이 보이고 연주자의 손은 좌우로 춤추듯 날아다니면서 화음을 만들어낸다.
edited image from 'Chloe (Ji-Yeong) Mun - Solo Finals - 60th F. Busoni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현란한 기교도 아닌 것 같고, 자기감정에 휘둘려서 자칫 오버하는 연주도 아닌 것 같고, 오히려 너무 정직한 느낌의, 어찌 보면 정삼각형, 정사각형 같은 기본형의 느낌이랄까, 그런 것이 그의 연주에서는 느껴진다. 그의 제스처는 비주얼 오버가 없어서 연주에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다. 연주자마다 곡을 해석하고 몰입하는 스타일은 다르겠지만 그의 비주얼 연주는 Krystian Zimerman과 Lang Lang이 스크롤바의 양쪽 끝에 위치한다면 중간에서 약간 Zimmerman 쪽으로 기울어진 어느 중간 위치쯤 되지 않을까? 누군가는 너무 완벽해서 감정의 울림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어떤 연주자처럼 "ugly face expression"도 없고 그 곡이 원하는 바로 그 음악적 표현의 둘레 안에 있는 듯하다. 눈을 감고 들어야 연주의 참 맛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면, 보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각디자인 전공자인 나는 살짝 동의하기 어렵다.
단 한 번의 미스 터치도 없을 만큼 완벽하지만 작곡가와 연주자의 감정이 음 하나하나에 그대로 드러난다. 연주하는 그의 손은 음의 높낮이나 강약, 길이에 따라 같이 춤을 춘다. 부드러울 때는 한없이 부드러운 곡선의 손놀림을 보이고, 강할 때는 위아래로 크게 휘젓는 강한 직선의 움직임이 보인다. 콘체르토를 연주할 때는 다른 연주자나 지휘자 말고 오로지 피아노를 치고 있는 연주자와 그의 손만 보여줬으면 좋겠다. Chpin이 연주하는 걸 볼 수만 있다면 아마 조성진처럼 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Chopin이 피아노 콘체르토를 작곡했을 때가 20세였다고 하니 말이다.
연주 시작할 때 손수건으로 건반을 둘러 닦고 무심한 듯 피아노 속으로 훅 던지는 동작은 그만의 루틴이 되었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입을 약간 내밀고 아주 작은 소리로 연주할 때, 머리를 기울일 때마다 찰랑거리는 직모도 아닌 살짝반곱슬 반짝이는 머리, (혹시 펌 했나? 2015년 쇼팽 콩쿠르 때는 완전 직모였는데) 그런 모양, 모습들이 그의 연주를 즐기는 하나의 비주얼 요소가 되었다.
나이가 들어도 그의 얼굴에는 소년기가 있다.수염이 나면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얼굴, 머리 숙이며 연주할 때 보이는 예쁜 정수리에서는 흰머리도 안 났으면 좋겠다.말간 얼굴에 여드름은 더더욱 용서할 수 없다. 하긴 나이 들어 흰머리 성성한 Krystian Zimerman은 더 멋있긴 하지만.
오늘도 얼마 전 케이블 티브이 추가 사용료 내고 달아놓은 좋은 스피커와 딸이 상품으로 받아온 좋은 헤드폰으로 Chopin Piano Concerto No. 2 in F minor, Op.21을 크게 듣는다. 좋다. 이 참에 큰 TV로 바꿀까 살짝 욕심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