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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니뿌니 Feb 20. 2022

반려동물도 가족관계 증명서에 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고양이의 보은

우리 집의 터줏대감 '양'이에게는 또 다른 이유로 우리 집에 온 한 살 어린 품종묘 남동생이 있었는데 이름이 '파트로슈', 줄여서 '슈'라고 불렀다. '양'이는 둘째 딸, "슈"는 둘째 아들이었다. 만약 법이 개정되어서 반려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서류상 등록시킬 수만 있다면, 이 법적인 조치만으로도 그동안 해결되지 않았던 동물 유기나 학대 등의 다양한 문제들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약간 멍청한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었다. 


원래 목동의 고급 주상복합 사무실에서 키우던 '슈'는 밥도 먹을 만큼, 물도 먹을 만큼 주고 사람들이 떠나면 사무실이 비는 주말과 연휴에는 온종일 자기 혼자 큰 사무실을 덩그머니 지켜야 하는 고독하고 불쌍한 아이 었다. 품종은 노르웨이숲 이었는데 워낙 장묘 종이라 털도 많이 날리고 수시로 빗질이며 관리를 해 줘야 하는 아주 크고 잘생긴 아이 었다. 


 '양'과 '슈'는 모든 게 달랐다. '양'이는 여자 '슈'는 남자, '양'이는 까칠 '슈'는 순둥, '양'이는 삼색이 '슈'는 회색이. 가끔 어울려 놀기도 하였지만 절대로 같이 붙어있거나 자지는 않고 그렇다고 싸우지도 않는 우열이 확실한 관계였는데 당연히 짱은 '양'이었다. 혹여라도 같이 나란히 있는 사진을 찍을 때면 우리는 가족 단톡방에 서로 공유하며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외쳤었다. 

드물게 보는 '양'과 '슈'의 함께 모습

순종이라는 출생증명이 있다고는 했지만 무심한 원래 집사가 잃어버려서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그러니까 '슈'는 크고, 잘생기고, 성격 좋고, 누구나 키우고 싶어 하는, 순종의 품종묘가 아니라 그냥 그 사무실에서 키워지는 그저 그런, 누가 데려가 키우라고 떠맡겨 할 수 없이 키워지던 그런 아이였다. 딱히 집사라 주장할 사람도 없었으니 직원 중 누구는 이쁘다고 밥이며 물이며 챙겨줬겠지만 누구는 털 날린다며 발길질이나 안 하면 다행이었으며, 빗질을 안 해주어 털이 날리면 컴퓨터 방열판에 엉켜서 컴퓨터를 열 받아 날려먹는 그런 털 뭉치 아이였다. '양'이를 키우고 있었던 나는 '슈'가 너무 안돼 보여서 긴 연휴 동안에는 가끔 우리 집에 데리고 와서 봐주었는데, 사무실 이전으로 더 이상 키우기 어려웠던 오갈 데 없어진 아가를 나는 그렇게 우리 집으로 업어왔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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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는 천성이 착했다. 밥은 아주 조금만 먹었다. 입맛은 아주 까칠해서 고급 캔을 사다 줘야 조금 먹어줬다. 그것도 두 번쯤 먹으면 물려해서 수시로 다른 캔으로 바꿔 대령해야 했다. 한 캔을 다 먹으면 이게 입맛에 맞는구나 하고 대량 주문하는데 그러면 바로 다음 날 또 안 먹어서 비싼 캔들은 결국에는 길양이들의 특식이 되곤 했다. '양'이는 캔은 입에도 안 대고 오로지 건사료만 먹어서 먹는 것에 대한 공유는 절대 없었다. 그렇게 '양'이는 살이 쪄서 걱정을, '슈'는 살이 안 쪄서 걱정을 하며 잘 지냈었는데, 성격 까칠한 '양'이 와도 잘 지내던 '슈'는 재작년 이 집으로 이사 오고 나서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무지개 나라로 떠났다. 원인도 모르는 병으로 일주일을 심하게 앓다 첫째 딸(사람) 품에서 괴롭게 숨을 거두었다. 


할 수 있는 검사는 다했고 수혈에, 산소방에, 보험도 안 되는 병원비는 정말 많이 나왔지만 얼마가 들더라도 꼭 지키고 싶었다. 입원시켜놓고 집으로 혼자 오는데 얼마나 아이에게 미안했던지........ 일주일 새 두 번을 입원하고 퇴원하고, 이게 아닌 것 같아 의사에게 물었다. 우리 '슈'가 회복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10%라고 했다. 10%. 그곳에서 보낼 수 없단 생각에 퇴원시키기로 하고 울고불고 눈물범벅이 된 사람 딸을 설득하여 퇴원해서 집으로 오는 길, 저 앞에 집이 보이는데 그걸 기다리지 못하고 '슈'는 그렇게 차 안에서 괴로워 몸부림치다 딸 품에서 떠났다. 그렇게 하여 우리 '슈'는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되었다. 떠나는 순간 '슈'를 품었던 사람 딸은 아직도 저 앞에 집이 보이던 그 길을 싫어한다. '슈'가 생각난다고 했다.

선인장 꽃과 '슈'

난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새 집에서의 액땜을 가족들 몰래 혼자 받아냈던가 자기 방식으로 우리 가족에게 보낸 고마움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해야 쉬웠다. 딱딱하게 굳어가는 '슈'는 나와 사람 누나의 사이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그렇게 조그만 오동나무 상자와 영정 사진으로 남았다. '슈'는 지금 내 책상 위에서 창밖의 풍경을 보고 있다. '슈'야 보고 싶다. 아주 많이. 

'슈'의 1주기

결혼해서 분가한 딸은 지금도 집에 들르면 '슈'가 들어있는 상자를 어깨 위에 올려놓고 집 안을 돌아다닌다. 딸의 어깨는 '슈'가 제일 좋아했던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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