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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니뿌니 Feb 20. 2022

고'양'이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고양이의 보은

고양이 둘째 딸 '양'


우리 '양'이는 엄마가 스트릿 출신이다. 화곡동의 한 빌라에서 사람에게 밥을 얻어먹던 임신한 길양이를 누군가 거두어 집에서 새끼를 놓게 하고 그 새끼들을 분양했는데 양이는 그중 하나였다. 딱 손바닥만 할 때 엄마에게 떨어져서 우리 집에 왔으니 그 어린것이 얼마나 막막했을까. 엄마 고양이도 새끼를 보낸 후 스트레스가 심해 많이 힘들어했다는 전화를 받았었다. 세상 고양이가 처음이었던 나는 식구들이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지, 고양이는 뭘 먹고사는 동물인지, 개와 고양이의 차이는 무엇인지 아무런 앎도 없이 덜컥 데려와 버렸는데, 개는 예전에 몇 번 키워봐서 알겠건만 고양이는 도통 깜깜이었다. 그냥 막연하게 개보다는 배변훈련이 잘 되어 있고 냄새가 덜 나서 목욕을 그리 자주 시키지는 않아도 된다는 것이 고양이에 대한 내 지식의 전부였다. (나중에 알러지 MAST검사를 해보니 아들은 6(최악), 딸은 4였다. 헐..... 이걸 미리 알았으면 안 키웠을꺼다.... )


양이는 우리 집에 와서 이틀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숨어있어서 찾다 찾다 포기하고 결국 밥과 물을 놓고 출근하곤 했었다. 일주일쯤 지나자 양이는 완전 깨발랄 똥꼬 냥이가 되었고 그렇게 나의 둘째 딸이 되었는데 그게 벌써 햇수로 16년이다. 이름도 지을 줄 몰라 '고양아, 고양아'라고 부르다 그냥 이름이 '양'이 돼버린 그녀는 이제는 나와 잠도 같이 자는 내 보물이 되었다. 


양의 리즈시절


오토바이 사고로 두 달을 넘게 병원에 있다가 온몸에 철심 박고 캐스트 하고 살은 빠져서 흉한 몰골이 된 사람 엄마는 좀 무서웠나 보다. 당시는 몸이 똑바로 펴지지도 않아서 거실의 리클라이닝 소파를 뒤로 젖혀서 1년 열두 달 하루 온종일을 거기서 살았었다. 병원의 냄새를 잔뜩 묻히고 온 엄마가 많이 낯설었던가 목 놓아 이름을 불러도 힐끗 쳐다보기만 할 뿐 '양'이는 가까이 오지도 않고 거실 벽에 바짝 붙어서 멀찍이 돌아다니기만 하였다. 주위를 맴돌기만 하고 이름을 부르면 쳐다보기만 할 뿐, 심지어는 허리를 잔뜩 낮추어 걸으면서 경계한다는 의미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섭섭하다 못해 미칠 지경이었는데 반전이 일어났다. 어느 순간인가 갑자기 누워있는 소파로 뛰어오르더니 이내 내 옆에 배를 깔고 누웠다.  


'양'이는 절대로 먼저 사람에게 오는 고양이는 아니었다. 너무 일찍 엄마와 떨어져서 그런가 쌀쌀맞고 독립적이며 사람에게 안기는걸 너무 싫어해서 내려달라고 발버둥 치고 결국에는 자기 숨숨집에 숨는 전형적인 까칠한 고양이였다. 그런 '양'이가 나에게로 먼저 와서 내 옆에 누웠다. 서너 시간의 새로운 냄새에 대한 긴 탐색이 끝났다는 뜻일 게다. 그때의 감격이란..... 턱뼈가 부러져 이에 철심을 박고 입을 벌리지 못하도록 고정을 하고 있었던 나는 고작 낸다는 소리가 '음음' 밖에 없었는데 목청껏 소리를 내어 '음음'거리며 식구들을 불렀다. 거실로 나온 식구들도 놀라워했다.


아니, 양이가? 스스로? 엄마 옆에?


놀라운 일은 사실 그 후에 일어났다. 화장실 갈 때만 그나마 멀쩡한 한쪽 다리로 누군가의 부축을 받아 얼른 다녀오고 밥도 소파에서 먹었다. 팔은 옆구리에서 떼지 않아야 그나마 쇄골뼈가 붙는다고 움직이지 말라고 해서 밥도 죽지 않을 만큼만 먹던 시절이었다. 입을 벌리지 못해 어금니 쪽으로 빨대를 꽂고 유동식만 먹었다. 정강이 뼈가 부스러져서 무릎에서부터 발목까지 철심을 박고 있었는데 좀 덜 박혀서 철심의 끝이 무릎을 자꾸 건드리고 있었다. 다릴 펴도 아프고 구부릴 수는 더더욱 없고 하루 종일 캐스트 위에 다리를 올려놓고 욱신거리는 다리를 욕창 안 생길 만큼만 움직이는 정도였다. 그런데 양이가 올라와 내 다리에서 배를 깔고 누워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꼭 아픈 오른쪽 다리 위에. 내가 아프면 '양'이를 물려야 하는데 그게 왜 또 그러고 싶지는 않았는지 큰맘 먹고 올라와 준 것도 감사한데 내칠 수는 없었다. 다리가 아파 조금씩 움직이면 '양'이는 '앵' 하고 울면서 싫다고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사람에게 잡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양'이가 스스로 내 옆에 왕림해 주셨는데 집사가 아무리 불편하고 아파도 그걸 표현할 수는 없었다. 하루 24시간을 그렇게 '양'이는 내 옆에서 머물렀다.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식구들이 모두 이상하다고 했다. 이런 애가 아닌데........


'양'이는 내가 아픈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이 사람 엄마가 오랜만에 아픈 몸으로 나타났으니 내가 보살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안다. 고양이가 24시간 사람 옆에 붙어있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그것도 정형외과 의사가 '이 다리 안 붙을지도 몰라요'라고 까지 했던 가장 심각한 부상을 당했던 오른쪽 다리 위에 따뜻한 배를 깔고 마치 온몸으로 온찜질을 해주듯이 나를 그렇게 치료해 주고 있었다. 가끔 쥐 나 새를 잡아서 집사에게 가져오는 고양이의 보은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이건 좀 달랐다. 많이.


나이도 많은데 골다공증이었으니 부스러진 뼈가 잘 붙을 리는 없었다. 1달쯤이면 부러진 뼈에서 진이 나와 붙는다고 했는데 나는 3달이 되어도 기미도 안 보였다. X-Ray의 아직도 칼날같이 날카로운 뼈 조각을 보며 오히려 의사가 머쓱해했을 정도였으니까. 어떤 의사는 내게 정신과 상담 예약을 추천하기까지 했다. 나의 신체도 그랬지만 정신이 더 망가져서 하면 안 되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거의 매일. 많은 사람들이 좋은, 훌륭한, 매우 미래지향적인, 긍정적인 이야기들도 많이 해 주었지만 이상하게도 다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심지어 식구들의 말도 어떨 때는 듣기 싫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망가져 있을 때 나를 보살펴 준 것은 '양'이었다. 내가 향한 곳은 '양'이었다. '양'이의 등털을 만지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다행히 3개월이 넘어서고 집도의가 추천해 준 최신식 기계를 공수해서 달고, 뼈에 좋다는 비싼 한약을 먹고 하여 늦게나마 뼈는 붙기 시작했다. 오른쪽 발을 조금씩 디딜 수 있게 된 후로는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아쉽게나마 집을 돌아다니게 되었는데 이상한 것은 이쯤부터 '양'이가 내 옆에 오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점점 뜸해지더니 이제는 자기 집에 가서 잠도 자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목놓아 이름을 불러도 힐끗 쳐다보기만 하고 오기는커녕 아주 dog 무시했다. 이렇게 변할 수가....... '양'이도 알았을까? 내가 이제 어느 정도 회복하여 고양이 치료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그렇게 고효율의, 마음 따뜻해지는, 그녀를 만지면 엔도르핀이 팍팍 샘솟는 고양이 치료는 끝이 났다. 아쉬웠다. 섭섭했다. 어느 의사보다, 어느 상담사보다, 어느 가족보다 많이 고마웠는데. 백만 가지 말보다 오로지 몸짓으로만 보여준 '양'이의 치료는 정말 눈물 나게 효율적이고 고마웠다. '양'이는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망할 놈의 정형외과 의사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 다리 안 붙을지도 몰라요'라고 내뱉어 버리는 내 다리가 어렵지만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나를 치료했다는 것을............ '양'아, 고마워. 엄마가 안 잊을게. 그리고 앞으로 10년은 더 건강하게 엄마랑 같이 살자.


. . . . . . . . . . . . . . . . . . . .


그렇게 쌀쌀맞았던 고양이 치료사 '양'이는 지금은 내 팔 베고 잔다. 그니까 우리는 동침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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