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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니뿌니 Jan 31. 2022

그 사람의 마음을 이제야 알겠더라.

지금은 몰라요. 나중에 깨달아요.

젊어서 남편을 잃고 떡집을 하는 아주머니가, 초등학생 큰아들이 딴에는 도와준다고 방앗간 일을 돕다가 기계에 손가락이 잘리는 모습을 보고, 아들이 나중에 나이 들어 아들의 아픔을 고단한 삶의 뒤에 놓을 수밖에 없었던 그 엄마 나이가 되어서야 "지도 많이 아팠겠죠. 웃는 척하는 거지...... "라고 감정도 없이 눈을 멀뚱히 뜨고 툭 내뱉는데, 그 사람 마음을 알겠더라. 돌덩이 같았던 서러움의 밀도를...... 그리고 그 아픔을 삭이는데 생겼을 마음의 생채기를...... 



일하는 엄마를 둔 죄로 초등학교 내내 모든 일을 혼자 해야 했던 아이가, 소풍 가서 매번 김밥을 혼자 먹거나 다른 아줌마들이 끼어주면 그 틈에 껴서 먹었다는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눈도 안 맞추고,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이 툭 던질 때 그 아이의 마음을 알겠더라. 알림장의 준비물을 안 가져가 매번 꾸지람을 듣고도 "너 왜 얘기 안 했니?"라는 물음에 "엄마 바빴잖아."라고 대답하는, 까까머리 고등학생으로 자란 변성기 지난 저음의 무심한 대답에 그 아이의 마음을 조금 더 알겠더라. 더 이상 아프지도 않을 만큼 단단해져 버린 그 나이 때의 내공을.



아버지가 사업을 하면서 최상급 난이도의 롤러코스터 타던 살림과 줄줄이 사탕처럼 매달린 동생들을 보고, "나는 국비 전액 지원해주는 간호전문대 갈 거야."라고 호기롭게 외쳤던 큰 딸은, 졸업 후에도 중동의 더운 사막의 나라로 돈 벌러 나가서 꼬박꼬박 월급을 보내 생활비를 보탰었다. 덕분에 대학 다니는 동생이 해줄 수 있었던 건 일주일에 한 번 봉함엽서로 편지 보내는 것뿐이었는데, 큰 딸은 그 편지들을 못 버리고 고무줄 열십자로 꽁꽁 묶어 귀국하는 비행기 트렁크에 고이 넣어 가져왔다. "못 버리겠더라."라고 말하는 큰 딸이 말도 안 통하고, 덥고, 외롭고, 힘들었을 그 삶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용담 얘기하듯이 술술 풀어내는데, 그 마음을 이제야 알겠더라. 삶의 아픔을 툭툭 털어버린 20대 처자의 담백하고 담대한 용기를.


다 나중에 알겠더라. 그 사람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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