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몰라요. 나중에 깨달아요.
일하는 엄마를 둔 죄로 초등학교 내내 모든 일을 혼자 해야 했던 아이가, 소풍 가서 매번 김밥을 혼자 먹거나 다른 아줌마들이 끼어주면 그 틈에 껴서 먹었다는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눈도 안 맞추고,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이 툭 던질 때 그 아이의 마음을 알겠더라. 알림장의 준비물을 안 가져가 매번 꾸지람을 듣고도 "너 왜 얘기 안 했니?"라는 물음에 "엄마 바빴잖아."라고 대답하는, 까까머리 고등학생으로 자란 변성기 지난 저음의 무심한 대답에 그 아이의 마음을 조금 더 알겠더라. 더 이상 아프지도 않을 만큼 단단해져 버린 그 나이 때의 내공을.
아버지가 사업을 하면서 최상급 난이도의 롤러코스터 타던 살림과 줄줄이 사탕처럼 매달린 동생들을 보고, "나는 국비 전액 지원해주는 간호전문대 갈 거야."라고 호기롭게 외쳤던 큰 딸은, 졸업 후에도 중동의 더운 사막의 나라로 돈 벌러 나가서 꼬박꼬박 월급을 보내 생활비를 보탰었다. 덕분에 대학 다니는 동생이 해줄 수 있었던 건 일주일에 한 번 봉함엽서로 편지 보내는 것뿐이었는데, 큰 딸은 그 편지들을 못 버리고 고무줄 열십자로 꽁꽁 묶어 귀국하는 비행기 트렁크에 고이 넣어 가져왔다. "못 버리겠더라."라고 말하는 큰 딸이 말도 안 통하고, 덥고, 외롭고, 힘들었을 그 삶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용담 얘기하듯이 술술 풀어내는데, 그 마음을 이제야 알겠더라. 삶의 아픔을 툭툭 털어버린 20대 처자의 담백하고 담대한 용기를.
다 나중에 알겠더라. 그 사람의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