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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니뿌니 Jan 27. 2022

시어머니치매탈출시간보내기프로젝트

치매 할머니와의 즐거운 한때.

우리 시어머니는 지금 하늘나라에 거주하신다.


'시'자 들어가면 시금치도 안 먹는다는 말이 있지만 난 시어머니와 꽤 잘 지냈다(고 생각한다). 결혼할 당시 지방 대학에 근무하고 있어서 분가를 하면 서울에 있는 당신 아들 끼니 거를까 봐 노심초사하시는 어머니를 보고 통 크게 결단을 내렸더랬다. 시댁에 들어와 살겠다고...... 곧 후회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부모님은 당연히 장남이 모시는 것이 자연스러웠는데, 첫째 내외와 함께 사는 것이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있으셨는지 둘째인 우리와 같이 사는걸 은근히 바라셨다. 가까운 친척 중에 최대 라이벌(?)인 외삼촌댁이 큰 아들 내외랑 사셨는데 그걸 그렇게 부러워하셨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둘째를 임신하고 육아휴직을 길게 하면서 분가하겠노라고 선언했을 때 어머니는 노골적으로 '너 미워. 너 나쁜 X이야'를 그렇게도 많이 표현하셨고, 그 표현이 너무 노골적이고 힘들어서 나는 임신 중에 편두통이 어마어마했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던 그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셨다.


치매에는 좋은 치매와 나쁜 치매가 있어서, 좋은 치매는 어린아이처럼 마냥 하하호호 즐거운 사람으로 변하지만, 나쁜 치매는 성격이 아주 못돼 져서 거짓말하고, 험담하고, 심지어는 폭력을 써서 주변 사람들이 매우 힘들어진다고 했다. 우리 시어머니는 반은 좋은 치매, 반은 나쁜 치매셨다.


사람에 따라 말투며 눈짓이며 대하는 태도가 아주 달랐는데, 간병인에게는 욕을 마구 하시면서 당신의 남편을 꼬시려고 집에 들어온 천하의 나쁜 X이라 하셨지만, 일 한답시고 자주 가 뵙지도 못하는 둘째 며느리는 매번 가면 소파의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치시며 이리 와 옆에 앉으라고 하셨다. "아이 왜 왔어 힘든데. 지금 올라왔어?"라고 말씀하시면서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참 고왔다. 그 웃으시는 모습에 나도 마음이 들떠서 어깨며, 다리며, 손이며, 발바닥이며 막 주물러드리곤 했다. 그런 고운 웃음을 치매에 걸리기 전에는 한 번도 보여주신 적이 없었다.


친정어머니는 워낙에 남한테 피해 주는 거 싫어하시고 꼿꼿한 분이셔서 딸들에게도 살가운 분은 아니셨는데, "잠깐 병원 다녀올게." 하시고 돌아가실 때까지 2년을 병원에서 지내시는 통에 그 흔한 어깨 주물러 드리는걸 한 번도 하지 못하였었다. 마냥 함빡 웃으시는 시어머니를 보는데 예전에 병원에 누워서 목에 호스 꼽고 나오지도 않는 쇳소리로 멀뚱히 "너 누구니?" 하며 기억도 나지 않는 딸들을 쳐다보시던 엄마의 얼굴이 겹쳐진다. 그때의 친정어머니도 말갛고 하얀 얼굴에 살그머니 웃으시는 얼굴이셨다. 주로 엄마를 간호했던 큰언니는 "내 평생 살면서 이렇게 웃으시는 건 첨봐. 어쩌면 이렇게 환하게 웃으시니."라고 몇 번을 말했었다. 나보다 엄마를 7년이나 더 만난 큰언니 눈에도 이건 처음 보는 웃음이었나 보다.


치매에는 과거 기억을 되살리고 단순하고 쉬운 일을 반복하면 좋다고 하여 나름 아이디어를 낸 것이 간단한 그리기와 산수, 그리고 뜨개질이었다. 하루 온종일 소파에 누워 낮을 밤처럼 주무시고 정작 밤에는 잠이 안와서 거실을 돌아다니는 바람에 간병인이 잠을 설치는 눈치였다. TV  보는것 외에는 몸을 쓸 일도, 마음을 쓸 일도 없는 어머니께는 낮동안 에너지를 소모할 숙제가 필요했다.


간단한 산수 문제를 거의 100포인트 큰 글자로 제일 쉬운 더하기부터 빼기, 곱하기, 나누기까지 문제집을 만들고, 예쁜 색칠하기 그림도 만들어 프린트했다. 인터넷에 있는 색칠하기 그림들은 예쁘고 화려하지만 난이도가 꽤 있어서 손에 힘이 없는 어머니는 어려울 것 같아, 간단한 이미지를 윤곽선으로 따서 나름 어머니 맞춤형으로 따로 만들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모든 내용은 그리드에 맞게 정리하고 어머니 이름과 점수를 기입하는 칸까지 양쪽 위에 배치했다. 파일링 하여 드렸더니 말간 얼굴로 물으신다. "이거......... " 이게 뭐냐는 뜻이다. 어머니 귀 가까이 대고 큰 소리로 주욱 설명을 드린다. "일주일 후에 와서 점수 매겨드릴게요." 한다.


색칠하기 공부는 70점 받으셨다. 그러니까 윤곽선을 벗어나 삐죽삐죽 나온 부분이 너무 많아서다. 색감은 굿이다. 어머니께 큰소리로 외친다. "어머니, 100점이에요 100점. 참 잘하셨어요!" 박수 추임새도 꼭 넣어드린다. 그리고는 그림을 거실과 부엌 사이에 있는 벽에 차곡차곡 붙인다. 한 달이 지나자 벽에는 어머님의 그림들로 제법 장식이 되었는데, 그 그림들은 하나같이 너무나 아름답고 순수해서 꼭 바스키아를 보는 것 같았다.


산수공부는 꽤 잘하셨다. 더하기는 올백, 빼기는 조금 틀리셨는데 곱하기와 나누기는 손도 못 대셨다. 어머니의 생각이, 기억이, 딱 그만큼이셨던 거다. 곱하기를 배우는 나이 바로 전 어디쯤에 머물고 계신 거였다. 그래도 항상, 무조건 100점이셨다. 맞아도 맞고, 틀려도 맞고......


뜨개질은 목도리가 숙제였는데 처음 10센티 정도의 폭은 갈수록 넓어져서 나중에는 사다리꼴의 목도리가 아닌 보자기로 변하였다. 손놀림이 유연하지 못했던 어머니는 대바늘 코 꿰기가 어려워 여기저기에 바늘을 집어넣고 무조건 코를 만드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물론 100점이다.


벽이 어머니의 흔적으로 꽉 찰 무렵, 그리고 소파 위에 형체도 모를 흐믈흐믈한 뜨개질 보자기가 제법 커질 무렵, 그 그림들과 시험지들, 보자기는 이내 지저분하다는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 곧 쓰레기통으로 처박혔다. 그 후로는 문제지 프린트도 하지 않고 털실도 사지 않게 되었다. 어머니의 '치매탈출시간보내기프로젝트'는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허무하게  끝났다. 내 외장하드의 '어머님' 폴더에는 어머니 맞춤형 산수 기출문제 파일이 아직도 있다......


어머니를 선산에 모시는 날, 어디선가 예쁜 나비가 날아와 봉분을 만드느라 바쁜 삽질 근처에서 한참을 놀다 떠났다. 삐죽삐죽 튀어나온 어머니의 고운 색칠하기가 언뜻 스쳐 지나갔다.

봉분이 아직 만들어지기 전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와 한참을 맴돌다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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