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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니뿌니 Jan 18. 2022

퇴직한 디자이너의 오감...聽覺

ㅆ + ㅋ + ㅡ + ㅗ + ㅏ + ㄱ

"聽覺"

나는 걷기를 좋아한다. 커뮤니티센터에 있는 러닝머신 타는 것보다는 탁 트인 공간에서 걷기를 좋아한다. 워낙 폐소 공포증이 있기도 하지만 하늘색과 초록색을 좋아해서 그렇기도 하다. 요즘은 하늘색이 더 투명해졌다. 초록색이 남아있는 곳도 있지만 갈색과 빨강, 노랑으로 변한 나무들은 자신의 색깔뿐만 아니라 주변의 회색들도 무늬 벽지를 바르듯 예쁘게 치장해 주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과천시는 낙엽이 떨어지면 즉각 치우지 않고 한동안 놔두었다가 어느 정도 모이면 한꺼번에 수거해 간다. 수거해 가기 직전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을 때가 가장 좋을 때다. 주변에 중앙공원과 양재천, 대공원, 현대미술관이 있어서도 그렇지만 북으로는 관악산, 남으로는 청계산이 있어서 연중 자연의 색깔 변화를 감상할 수 있다. 단골 코스를 걷다 보면 낙엽으로 온통 덮인 작은 오솔길들이 여기저기 나타나는데 굳이 눈을 들어 하늘과 산을 보지 않아도 발아래가 낙엽의 종류와 색깔들로 향연을 이룬다. 더불어 낙엽을 밟을 때마다 나의 청각을 자극하는 사각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과천의 노랑

사각? 서걱? 쓱? 컥? 이어폰을 빼고 낙엽을 밟을 때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약간 칼칼하면서도 날카롭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귀에 거슬리는 것은 아닌데 도무지 이 소리를 글자로, 시각적으로 표현하기는 매우 어려움을 느낀다. 첫소리의 닿글자에는 'ㅅ', 'ㅆ', 'ㅋ'의 경음과 격음이 섞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홀소리는 'ㅏ'인지 'ㅓ'인지 'ㅡ'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같은 자리를 맴돌면서 계속 밟아봐도 어떤 때는 '쓰'로, 어떤 때는 '콰'로 들린다. '쓰'라고 생각하고 들으면 '쓰'로, '콰'로 생각하고 들으면 '콰'로 들린다. 또 가끔은 '츠'로 들리기도 하니 정답 맞히는 걸 좋아하는 이  ISTJ는 조금 난감해진다. 소리가 꽤 매력적이어서 같은 자리를 뱅글뱅글 돌며 밟을 때마다 나는 소리를 계속 듣는다. 나름 소리의 높낮이도 있는 것 같고 걸음에 따라 리듬도 생긴다.

        

청각, 소리의 감각은 손 끝에서 느껴지는 질감의 감각, 촉각과도 매우 밀접하다는 생각이 든다. 낙엽의 소리는 까끌까끌한 샌드페이퍼의 질감을 생각나게 하거나, 어쩌면 달궈진 무쇠판의 넉넉한 기름 위에 부어지는 녹두전의 소리와 맛으로까지 확장한다. 한 다리로 지탱을 하고 다른 다리로 원을 그리듯이 낙엽을 헤치면 마치 파도 소리와도 비슷해서 패딩을 입었는데도 한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특히나 겨울 바다의 넓고 투명한 청초록의 그라데이션은 이 세상에 있기는 한 색깔일까 생각도 하면서 더 소리에 집중하게 한다. 시냇물은 '졸졸졸', 까치는 '까악 까악'처럼 의성어가 있으면 좋겠는데 도무지 한글로도, 영어로도 이걸 글자로 표현할 길이 없다. 글자, 문자가 갖고 있는 표현의 한계를 느끼면서 의성어 글자 변환 앱은 누가 개발 안 하나....... 를 생각하며 나름 소리를 글자로 표현해보기로 했다. 청각 정보의 시각화라고나 할까.               

ㅆ + ㅋ + ㅡ + ㅗ + ㅏ + ㄱ 정도.    

 

. . . . . . . . . .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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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느 초등학교에서 이런 비슷한 과제가 있었나 보다. 선생님은 시냇물이 흐를 때 나는 소리를 적어오라는 과제를 내주었는데 어느 학생의 답이 매우 신선했다. 그 학생이 적어온 소리는               

 'ㄹㄹㄹ  ㄹㄹ  ㄹㄹㄹㄹㄹ '.          

 그 학생의 귀에는 'ㅈ'도, 'ㅗ'도 아닌 그냥 물이 흐르는 모습과 리듬이 더 다가왔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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