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 들 수 없는 태아보험
산부인과에서 연계해 주는 보험모집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산모님 안녕하세요^^ 태아보험은 다른 데 가입하신 걸까요? 아직 가입 전이시면 상담 도와드립니다^^"
철렁했다. 생각지도 못한 산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내 보험만 해도 머리가 딱딱 아픈데 아기를 위한 보험이라니.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 나보다 일찍 출산한 친구들에게 SOS를 쳤다.
"태아보험 어떻게 가입했니? 선배님들 조언 부탁요."
그냥 평범하게 추천하는 대로 가입했다는 친구도 있었고, 이것저것 착실히 설계해 가입했다는 친구도 있었다. 결론은 모두 가입했다는 점이었고 나름 보험 덕을 본 케이스도 있었다. 역시 아기에게 꼭 필요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공부라면 질색인데, 아기를 위해 보험공부를 했다.
친구의 조언 대로 유튜브 영상을 좀 보기로. 처음엔 막막해도 영상 두어 개만 보면 금방 감이 올 거라더라. 진지한 마음으로 영상을 켰고 생각보다 금방 개념이 잡혔다. 막연한 개념이라 너무 두렵게 생각했던 모양.
참고한 영상 중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아래 두 가지.
둘 다 조금 오래된 영상이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쏙쏙 들어오는 핵심 조언만 들어 있어 좋았다.
https://youtu.be/Iu_X7 cF405 c? si=gXvWMrwNvbrf0 xky
https://youtu.be/hcRjBRtcG8A?si=9B7foUUHnl2jearC
내게 도움이 되었던 핵심만 요약하자면
1. 태아보험은 어린이보험에 태아 특약을 몇 가지 더한 보험.
2. 실손보험에 입원비, 진단비(암/뇌/심 특약) 정도면 충분.
3. 30세 만기면 충분.
4. 11주 이전 가입이 최선, 22주 이전 가입이 차선. 늦어도 22주는 넘기지 말 것.
5. 직접 3대 보험사(삼성화재/현대해상/메리츠) 태아보험 상품 비교해 볼 것.
6.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보험사를 골라 각각 다른 설계사에게 설계받아볼 것.
7. 토탈 보험비가 5만 원 안짝이면 충분&성공.
새로 공부하려는 사람에게는 위 요약도 어지럽고 복잡하게 느껴지겠지만, 영상을 한 번 보면 쉬워진다. 나도 잔뜩 쫄았다가 10여 분 만에 개념 윤곽이 선명해졌다.
이제 대충 태아보험에 대해 알게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상품을 알아볼까 하던 찰나. 섬광처럼 불길한 기분을 느꼈다. 26세에 당뇨 진단을 받은 나는 개인보험도 가입이 어렵게 되어 엄마가 신경 써서 이런저런 보험을 미리 가입해 주셨더랬다. 당뇨를 진단받은 이상 앞으로는 보험가입이 어려울 거라면서. 그런데 내가 태아보험을 가입할 수 있나? 걱정되는 마음에 검색을 해보니...
산모가 당뇨인 경우엔 태아보험 가입이 불가하단 내용이 태반이었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나 어린이보험으로 가입할 수 있는 거라고. 엄마가 기저질환이 있어 아이의 기형 위험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평범한 엄마로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며 보험공부를 열심히 하던 게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내게 먼저 연락을 주었던 보험모집인에게 연락을 넣었다.
"제가 당뇨가 있는데도 태아보험 가입이 되나요?"
당연히 안 된다는 답이 돌아올 줄 알았다.
"당뇨가 있으시면 16주 이후 가입가능합니다. 2차 기형아 검사 이후 이상소견 없으면 가입하실 수 있어요."
서류심사를 거치긴 해야 하지만 가입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제야 안도했다. 생각지 못하게 큰 도움을 받은 기분이었다.
임신성 당뇨 진단을 받은 경우에도 태아보험 가입이 어렵긴 마찬가지여서, 대부분 모든 변화가 생기기 전인 11주 전에 가입이 가장 좋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나는 어차피 임신 전 당뇨 환자였으므로 전혀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16주 이후 가입하면 어린이 보험이나 뭐가 다른가 싶다가도, 아기를 낳고 보니 뜻밖에 많이 아파 병원을 꽤 오갔던 친구의 말이 마음이 걸렸다. "나는 도움 많이 받았어." 하는 친구의 말에 마음속 저 깊이 숨어 있는 두려움이 고개를 들었다. 가뜩이나 건강치 못한 모체라 아이가 기형의 위험을 남보다 훨씬 많이 안고 있는데, 행여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 미안함, 서글픔.
아직 16주가 채 되지 않았으니 보험 걱정은 그때로 미뤘다. 미리 고민해 봐야 답도 없고,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기쁨을 먼저 누리기로.
그리고 며칠 뒤 산부인과에서 안내 메시지가 왔다.
"니프티 기형아검사결과(다운증후군, 에드워드 증후군, 파타우) 저위험군(정상)입니다. 00산부인과"
1차 기형아검사 무사통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