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당뇨인도 엄마가 되고 싶어서

태아보험도 안 돼, 혈당관리도 안 돼

by 큐지혜

결론부터 말하면 태아보험 가입은 모두 거절되었다. 간혹 고위험 산모의 경우 메이저한 보험사가 아닌 한 단계 다운그레이드 된 보험사에서는 태아보험 가입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여 심사를 문의했는데, 어렵다는 답변만 받았다.


KakaoTalk_20250722_172717770.jpg


출산 후 가입이 가능하다는 건 '태아보험 특약은 불가하고 어린이 보험에 가입하라'는 소리다.


불안한 마음에 조금 동동거렸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임신과 함께 당뇨를 진단받아 나와 상황이 비슷했던 사촌동생도 똑같이 태아보험 없이 아이를 낳았고 문제는 없었다. 모든 보험은 불안을 좀 먹어 생긴 금융상품이란 사실을 상기하며 진정했다. 우리 어릴 땐 당연히 없었던 태아보험이란 사실도 연거푸 곱씹었다. 남편은 불안해하는 내게 "괜찮아, 우리 아기는 건강할 거야."하고 말해주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지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2차 기형아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제법 초조했다. 내가 고위험산모라는 사실을 새삼 다시 상기한 이후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정상소견. 초조한 마음에 추가로 더한 검사까지 모두 정상소견을 받았다.


KakaoTalk_20250722_172612844.jpg


그렇게 16주를 넘기고 임신은 중기를 넘었다. 임신한 몸 상태에 적응도 하고 입덧 증상도 사라져 훨씬 살 만한 상태가 되었다. 가끔은 내가 임신했단 사실을 잊을 정도로 편안해졌다. 오지 않을 것 같은 평화의 날이었다.


일찌감치 준비했던 태교여행도 다녀오고 즐겁게 보냈다. 어차피 매일 혈당을 신경 쓰고 있으니 몸무게 조절에 크게 신경도 쓰지 않았다. 매번 산부인과 검진을 갈 때마다 몸무게, 혈압을 체크하는데 주의하란 이야기도 안 들었다. 그럭저럭 관리가 되는 정도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무게는 1개월에 1kg 정도씩 꾸준히 는 정도다. 23주, 6개월인 지금 약 6kg 정도의 체중이 불었다.


태아보험도 몸무게도 그럭저럭 잘 이겨내고 넘어왔는데, 당뇨인 임산부에게 가장 큰 산은 뭐니 뭐니 해도 결국 혈당이다. 혈당 조절이 잘 안 된다고 느껴지면 스트레스가 팍 튀어 오른다. 팔뚝에 매단 연속혈당측정기가 말썽이면 삶의 질도 뚝 떨어진다.



KakaoTalk_20250722_174342076.jpg
KakaoTalk_20250722_174410148.jpg


나를 미치게 했던 센서 오작동들. 연속혈당측정기 가격이 저렴한 것도 아니라서 이런 오류 하나하나가 무척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정가로 사면 11만 원에 육박하고 당뇨소모성재료로 구입해도 3만 원대인 고가 의료기기인데 부착하자마자 저런 오류가 뜨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센서 오류'의 경우에는 이미 부착한 센서를 꾹꾹 눌러가며 몸에 삽입된 침을 제대로 자리 잡게 도와주면 효과가 있다. 센서 침이 정확히 직선으로 꽂히지 않아 일어나는 오류가 많다고 했다. 처음 저 오류를 보고 프리스타일 리브레 측에 문의하니 내 센서 오류 상황을 함께 추적해 주더라. 해결방법이라 봐야 일단 몇 시간 동안 회복이 되는지 지켜보는 정도이지만. 부착 부위가 아프도록 사방팔방 꾹꾹 눌러댄 결과 센서는 정신을 차렸다.


'센서 교체'의 경우는 아직 팔에 센서가 붙어있음에도 불구, 별안간 아예 센서 인식을 못하며 새 걸로 교체하라는 케이스다. 자려고 누웠는데 어제 교체한 센서가 갑자기 기절해 버렸다. 밤 사이 저혈당을 신경 써야 하는 입장이고 당장은 고객센터도 안 하는 시간이라, 일단은 센서를 바꿔 달았다. 이건 기다려보고 자시고 가 없었다.


다음날 고객센터에 연락했고, 기기 정보를 읊은 뒤에 어렵지 않게 새 제품을 배송받을 수 있었다. 그 사이 스트레스는 내 몫이지만... 그래도 10만 원을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위안이 좀 되었다.


KakaoTalk_20250722_175107266_01.jpg
KakaoTalk_20250722_175107266.jpg


정품에 '비매품' 스티커를 부착해 보내온다. 그리고 기능을 하지 못한 불량품 센서를 회사로 반품해 주면 절차는 끝.


당연히 센서가 먹통일 때는 본래의 방식대로 손끝을 따야 한다. 연속측정기로 시간마다 자세히 혈당을 측정해 오던 입장에서는 손끝 측정이 더욱 어렵다. 궁금할 때마다 침 찌르려면 정말 자주 찔러야 하기 때문... 모니터링이 안 되는 사이 혈당을 알 수 없다는 게 은근 불안요소로 다가온다.


가끔은 센서에 따라 유난히 손끝 혈당과 격차가 큰 경우도 있다. 혈당치가 30 이상 낮게 측정되어 걸핏하면 저혈당이라고 새빨간 안내창을 띄우던 센서가 있었다. 몸에는 아무런 저혈당 신호가 없는데 자꾸 저혈당이라고 기록되니까 할 수 없이 손끝을 찔러 이중 체크를 해야 했다. 아픈 손끝도 손끝이지만 제대로 측정되지 않는다는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결국 많은 것에 초연해도 혈당 앞에서는 벌벌 떨게 되더란 말이다. 엉망진창인 센서를 다 쓰고 내과에 가던 날은 기분이 정말 별로였다. 지난 보름을 엉망으로 보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저혈당도 아닌데 저혈당으로 오해해 먹어치운 탄수가 얼마나 될까 생각하며 불안했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결과는 당화혈색소 5.5! 다시 정상인 범주에 들었다. 센서가 말썽이고 그만큼 초조했던 것 대비 열심히 잘 관리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지난달 6.5였던 당화혈색소가 5.5가 되었다고 하니 더없이 기뻤다. 태아보험도 들어주지 못하는 못난 엄마가 열심히 애써서 편안한 태중 상태를 만들었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다.


인슐린민감도는 끝없이 널을 뛴다. 분명 지난주까지는 똑같은 식단에 인슐린 11 단위로도 충분히 커버가 되었는데, 별안간 2시간 만에 저혈당 수준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세 시간째 200 이상의 고혈당을 유지하기도 한다. 그럴 땐-마음이 정신없이 요동치겠지만- 사흘 정도 텀을 두고 몸 상태를 측정에 민감도가 변화했음을 감지하면 된다. 특히 20주가 넘어가면서 태반이 완성되어 호르몬이 본격 작용을 하기 시작하면 보통 인슐린 민감도가 떨어져 혈당 조절이 어려워진다고 하니, 민감도가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잘 추적해 대응하면 된다.


나는 22주 차에 갑자기 민감도가 확 높아져 저혈당을 많이 봤다. 보통 민감도가 떨어져 인슐린 용량을 늘려야 하는 시기인데도 그랬다. 그래서 약 1주일간 인슐린을 조금 줄여서 맞고(역시 GPT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23주에 접어들며 다시 민감도가 떨어져 다시 용량을 조금 늘렸다.


불안한 마음에 매달 가던 내과도 이제는 두 달 뒤에 가기로 했다. 의사 선생님이 긴 대기시간을 견뎌가며 매달 올 필요가 없다고 연거푸 권하신 때문이었다. 나를 믿기로 했다. 이미 충분히 애쓰고 있음을 인지하고, 잘해나가고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당뇨인도 엄마가 되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