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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인도 엄마가 되고 싶어서

당뇨인이라 더 필요한 간식

by 큐지혜

당뇨란 모름지기 간식을 끊고 클린한 식단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나도 임신하자마자 제일 먼저 했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인슐린을 투약하기 시작하면서는 간식이 필수품이 됐다. 칼로리 0에 수렴하는 저당 간식? 물론 그것도 필요하지만 일반적인 간식이 필수다. 당뇨라면 절대 먹어서는 안 될 것 같은 과일, 간단한 간식류가 꼭 있어야 한다. 언제든 쉽게 먹을 수 있도록 구비해둬야 한다.


왜냐, 인슐린 작용으로 급격히 혈당이 떨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혈당이 너무 안 떨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혈당이 너무 잘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기본적으로 당뇨 임산부에게 가장 위험한 일은 저혈당이다. 가뜩이나 혈당이 높아 문제인 병인데 저혈당이 무슨 대수냐고? 그만큼 인슐린을 맞으면 저혈당이 오기 쉽다. 인슐린 용량을 잘못 잡아서라기보다, 그만큼 내 몸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1. 식사량을 계산해 인슐린을 미리 맞았는데 식사량을 다 못 채웠을 경우

2. 인슐린 민감도가 널을 뛰어 예상보다 인슐린을 과다투여했을 경우

3. 식후 운동량이 많아 인슐린 작용이 빠르게, 많이 일어났을 경우

등등... 이뉴는 차고 넘친다.


그래서 당뇨 임산부는 식간 간식이 필수이다. 혈당이 너무 떨어지기 전 질 좋은 간식을 준비해 차분히 먹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순간도 자주 발생한다. 낮잠을 자다 깼는데 저혈당 위기라거나, 외출 중 갑자기 저혈당 위기라거나. 그래서 손쉽게 혈당을 올릴 수 있는 간식이 꼭 필요하다. 쉽게 꺼내 먹을 수 있는 종류이되 소포장되어 양을 조절할 수 있는 형태로.


우리 집에 항상 두는 간식 넘버원은 시리얼. 일반 시리얼도 무관하지만 웬만해선 저당시리얼을 먹는다. 설탕이 거의 없는 시리얼이라도 기본적으로 곡물이기 때문에 탄수를 포함하고 있고 우유와 함께 먹으면 꽤 괜찮은 혈당 보강이 된다. 단 양조절은 필수이다. 한 번 먹을 때 한 줌 정도로 제한해 먹는다. 우유도 150ml 정도. 예전에 양껏 먹던 시리얼에 대면 간만 보는 수준이다. 아쉬워도 양조절이 정말 중요하다. 시리얼은 혈당을 무섭게 올린다. (그래서 자기 직전 혈당이 저혈당 위기일 때 아주 간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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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나 요구르트도 좋다. 유당이 포함되어 있어 기본 우유만으로도 괜찮은 간식이 되고, 지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혈당 그래프가 완만한 편이다. 요즘엔 대체당으로 단 맛을 낸 달달이 우유도 가끔 먹는다. 유당을 제거하고 설탕을 넣은 과일맛 요거트도 종종 먹는다. 유당을 제거한 만큼 설탕이 들었으니 그럭저럭 혈당을 올려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맛도 좋으니 먹기 편하다. (무가당 요거트에 블루베리를 먹는 것이 가장 좋은 방편이겠지만 급할 때는 그냥 간편한 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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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낱개로 포장된 쿠키도 종종 먹는다. 간식을 먹어야 하는 타이밍이나 출출할 때 한두 개 먹으면 혈당도 차고 마음도 찬다. 양을 조절하면 인슐린 없이도 그럭저럭 방어하며 먹을 수 있으니 덜 서럽게 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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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원래 지독한 과자 애호가였다.(아니 지금도 과자 엄청 사랑한다) 특히 달달한 쿠키류보다는 짭짤한 봉지과자 스낵류 타입이었는데, 봉지과자는 아무래도 양조절이 어렵기 때문에 임신 이후로는 거의 끊었다. 남편이 먹을 때 옆에서 조금 집어먹는 정도로 만족한다. 딱 한 번 입이 터져 밤간식으로 자갈치 한 봉을 다 뜯어먹은 적이 있는데... 그런 날엔 눈 딱 감고 혈당수치를 무시한다. 이왕 먹고 싶어서 먹은 것, 무를 수도 없고. 다시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며 잊어버렸다.


하지만 이걸로 간식에 대한 열망을 다 채울 수는 없다. 그래서 제로의 축복에 감사하며 즐겨 먹는 간식도 많다. 대체당 천국이 된 시기에 임신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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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해서 속도 더부룩한데 탄산음료도 한 모금 못 마신다면 정말 억울했을 것 같다. 입덧 때부터 꾸준히 내 곁을 지켜준 제로탄산. 특히 제로콜라는 떨어뜨리지 않고 먹는다. 혈당 반응은 전혀 없으면서도 한두 모금으로 달달한 음식에 대한 열망을 싹 내려준다. 너무 참다 입 터지는 것보다 적당히 즐기며 지내는 게 심정적으로 낫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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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속이 부대끼니 시원 달달한 게 당긴다. 그래서 종종 먹는 저당 아이스크림. 확실히 설탕 들어간 아이스크림에 비해 맛은 아쉽지만 충분히 도움이 된다. 특히 아예 0칼로리인 빙과류는 정말 아무런 혈당 변화 없이 시원 달달하기만 하다. 강력 추천.


그리고 사람마다 차이가 있어 제로계의 사기꾼으로 치부되는 '말티톨'.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먹어봤는데 웬 걸. 내 몸에선 말티톨도 크게 혈당반응이 일어나지 않았다. 1~20 오르는 선에서 쉽게 방어된다. 그래서 종종 먹는 말티톨 아이스크림. 맛은 어느 대체당 아이스크림보다 가장 만족도가 높다. 일반 제품과 맛 차이가 거의 없다. 그래서 제조업체에서 말티톨 포기를 못하나 봐. 약간의 설탕이 함유된 저당 제품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사바사로 각자 체질에 따라 혈당반응이 다를 수 있으니 조심히 실험해보고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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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배스킨라빈스에 가고 싶긴 하다. 임신 이후 단 한 번도 가지 않아 6개월이 넘었다. 그래도 대체품으로 잘 버텨내고 있다.


요아정은 몇 번 너무 먹고 싶어서 먹었다. 그럴 땐 추가인슐린 주사를 맞고 먹는다. 너무 참아 병나는 것보다는 추가 인슐린으로 똘똘하게 조절하며 먹는 편이 행복 임신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대신 '저당 요아정'을 선택하고 토핑으로 올라가는 과일도 GI가 높지 않은 것으로 고르려 노력한다. 시리얼 같은 고당 토핑은 빼고. 저당 요아정은 생각보다 혈당이 많이 안 오르니 괜찮은 선택지이다.


그래도 뭐니 뭐니 가장 좋은 간식은 과일이다. 딸기, 수박, 사과, 참외, 복숭아... 모든 제철과일을 섭렵 중이다. 과일은 GI가 높더라도 피크를 찍은 후 금세 혈당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적당량 먹으면 크게 나쁘지 않은 간식이 된다. 단 식후에 디저트로 곧장 챙겨 먹지 말고, 식후 2시간 이상 지나 혈당이 안정된 후에 출출하면 적당량 먹는 것으로 조절한다. 과일엔 당분도 많이 들었지만 못지않게 건강한 다른 영양소도 많이 들었기 때문에 단순당을 섭취하는 것보다 훨씬 건강한 간식이다.


임당 위험으로 1kg도 찌지 않은 채 아기를 낳은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내가 인슐린을 맞으며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부러워했다.

"나도 차라리 병원에서 '인슐린 맞으면서 드시고 싶은 것 드세요. 괜찮아요.'라고 해줬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내가 조절하지 않으면 인슐린을 맞아야만 하고, 그게 엄마 자격 없는 나쁜 사람이 되는 것처럼 느껴져서 힘들었어."라고 했다. 실제로 친구는 막달에 다다를 수록 거의 무탄수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


임당은, 임신 전 당뇨는, 죄가 아니다. 인슐린을 맞아가며 아이를 길러내야 해서 내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것과 직무유기는 별개다. 나는 누구보다 내 아이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긴다. 그래서 매일 네댓 번씩 인슐린 주사를 맞아도 버틸 수 있다. 다른 당뇨 엄마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조금만 먹어도 관리가 되지 않는다며 울기 보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임신 중기에 접어들며 아이가 엄마의 기분을 고스란히 느낀다고 하니까. 행복한 엄마라야 행복한 아기를 길러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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