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뒤집듯 임신중독
제왕절개 예정일은 11월 3일이었다. 하루하루 버겁기는 해도 무탈히 혈당관리하며 잘 보내고 있었다. 운동은 거의 못했고 하루 종일 혈당 신경 써서 단백질 챙겨 먹는 게 전부인 일상이었다. 내 지난 계류유산을 함께 지켜본 내분비내과 주치의 선생님의 "이제 아기 잘 낳고 봅시다." 하는 든든한 말도 들었다.
마지막 산부인과 검진은 10월 29일. 출산 5일 전이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머리가 심하게 아팠다. 3일 전부터 두통은 조금씩 있었지만 적당히 견딜만했는데, 그날은 아니었다. 타이레놀을 먹어도 해결이 안 났다. 워낙 고질적 두통을 달고 사는 편이라 다양한 두통을 경험해 봤지만 그날은 좀 유난했다. 컨디션이 안 좋다고 확연히 느낄 정도.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타이레놀도 무용지물이었다.
평소보다 혈압이 좀 높았다. 130/95. 담당 주치의 선생님은 "혈압이 좀 높아졌네요. 그렇다고 약을 먹을 정도는 아니고.. 일단 수술이 얼마 안 남았으니 좀 더 지켜보죠." 2주 전보다 체중이 1kg이나 늘어 있었다. 매달 꾸준히 1kg씩 늘긴 했어도 2주에 1kg은 가파른 상승이었다. 그래도 모든 수치가 아주 심각한 지경은 아니어서 마지막 검진을 그렇게 마쳤다. 태동검사도 무사히 넘겼다. 내 아기는 영락없이 11월 3일에 만나려나 싶었다.
오전 검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소파에 앉아 두통을 견디기만 했다. 평소라면 이 정도 두통은 응급실행이었는데, 임신 중이니 그럴 수도 없어서 묵묵히 버텼다. 마지막 검진 결과를 궁금해할 친정엄마에게 연락할 정신도 없었다.
갑자기 아래에서 무언가 울컥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열 달 전 생리 때에나 느끼던 감각이었는데 싸한 마음이 들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페브릭 소파가 젖을까 봐 벌떡 일어난 거였는데, 설마 하는 마음만 있었지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분비물인 줄 알았다.
자리에 선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상황을 파악했다. 다리를 타고 흐르는 묽은 액체는 없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출혈. 어그적 어그적 걸어 화장실로 갔다. 다행히 피는 묻어나는 게 없었고 대신 누런 점액질 같은 게 묻어났다. 양수도 아니고 이슬도 아닌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염증성 분비물 같은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덜컥 겁이 났다. 양막파수의 시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랬다. 보통은 이슬이 비치고 몇 시간 안짝으로 양수가 터진다고 들었는데, 나는 아무런 피 비침도 없었다. 덜덜 떨리는 상태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지금 올 수 있어? 양수가 터진 것 같아."
라고 말하기 무섭게 바닥으로 후드득 액체가 떨어졌다. 다리를 타고 흐른다기보단 후드득, 묽은 액체가 떨어지듯 쏟아졌다. 엄청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분명 알 수 있었다. 양수였다. 카펫이 젖었는데 닦을 겨를이 없었다. 움직임을 최소화해 간신히 옷만 갈아입었다. 남편은 곧장 귀가했다. 둘 다 상기되어 있었다. 떨리는 동시에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양막파수에 대해선 진작 공부를 많이 해뒀다. 덕분에 능숙하게 팬티에 생리대를 하나 대고, 미리 꾸려뒀던 출산가방에 추가로 챙길 물건을 조금 더 챙겼다. 병원에 연락을 하니 일단 진료를 보러 내원하라고 했다. 오후 4시쯤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갔다. 병원이 아직 운영 중인 시간이라 다행이었다. 밤 사이 일이 터졌으면 영락없이 응급 분만을 했어야 할 판이었다. 생각보다 무서운 마음이 앞섰다. 수술에 대한 공포감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살면서 한 번도 개복수술을 해본 적이 없으니 두려운 것도 이상하진 않지.
오전에 봤던 진료 그대로 주치의에게 진료를 보았다. 주치의는 우선 흘러나온 분비물이 양수가 맞는지부터 확인하자며 질초음파를 보자고 했다. 입었던 바지를 초음파용 치마로 갈아입으려 탈의실로 들어갔는데,
"어...! 아..."
그대로 양수가 터져 바닥으로 물처럼 쏟아졌다. 탈의실 바닥이 흥건해졌다. 당황한 내 목소리를 들은 간호사가 밖에서 무슨 일이냐 물었고, 나는 물처럼 막 쏟아졌다고 답했다. 간호사는 양해를 구하고 커튼을 열었다. 바닥에 쏟아진 투명한 액체를 보고는 주치의에게 말했다.
"검사할 것도 없겠는데요? 양수예요."
분만실로 향했다. 출산가방을 다 챙겨간 덕에 그대로 진행할 수 있었다. 남편은 분만실 밖에서 기다렸고 나는 오전에 누웠던 태동검사실 바로 옆방에서 다시 태동검사를 했다. 옷을 갈아입고 내 발로 걸어 수술실로 들어갔다. 남편과 짧게 포옹하며 "잘 있어. 잘 낳고 올게." 했다.
척추에 하반신 마취제를 넣는데, 앉은 자세로는 잘 되지 않아 세 번만에 모로 누웠다. 누운 채 주사에 성공했다. 허리가 뻐근하고 기분 나쁜 감각이었다. 바늘을 찔러 넣을 때마다 묵직한 통증이 있었다. 수술 과정을 느끼는 게 두려워 처음부터 완전한 마취를 청했던 나는 다시 물었다. "처음부터 재워주시면 안 돼요?" 마취의는 그러마 했다.
수술이 시작되고 나는 노파심에 마취의에게 중얼중얼 말을 걸었다.
"혹시 아기가 태어났을 때 저혈당이면 잘 좀 케어해 주세요..."
"수술 중이니까 말하지 마세요."
어리둥절했다. 얼마 안 가 간호사가 내 눈앞으로 아기를 보여주었다. 마취가 곧장 되었다가 수술 중간에 잠깐 의식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아이 얼굴만 보고는 또다시 기억이 없다. 수술이 다 끝나고 회복실로 옮길 때만 또 잠깐 기억이 난다.
수술 후부터 회복실, 병실로 옮겨서까지는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이가 딱딱 부딪칠 정도로 몸이 떨리는데 떨림이 오래도록 멎지 않아 힘들었다. 춥다는 감각은 특별히 없이 떨림이 멎질 않아서 말 그대로 '힘이' 들었다. 지칠 정도로 몸이 떨리는 느낌. 난생처음 느껴본 감각이었다. 마취가 덜 깬 와중이었음에도 그 괴로움이 생생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피를 너무 흘려 추웠던 거였다.
병실로 옮겨 밤새 구토를 했다. 자다가 - 구역감을 느끼며 깨서 - 남편이 받쳐주는 봉투에 누운 채 구토를 하고 - 다시 잠드는 패턴으로 밤을 보냈다. 남편에게 어떻게 보일지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긴 머리카락에 토사물이 묻거나 말거나,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남편에게 봉투를 청해 고개를 돌려 토하는 일이었다. 마취 부작용이었다. 남편은 내 토사물을 받고 머리카락을 닦아주며 밤새 곁을 지켰다.
정신이 돌아오고 나니 문제는 빈혈이었다. 헤모글로빈 정상수치가 12% 이상인데, 수술 전 11%이던 게 수술 후 5.8%로 떨어졌다. 초음파를 보았다. 복벽 안쪽으로 가로지름 10cm짜리 혈종이 보였다. 배를 닫은 후 모세혈관 출혈이 있었던 흔적이었다. 수술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고 내부출혈도 이제는 다 멎은 듯 보였지만 어쨌든 비정상적인 양상이었다. 수술 중 출혈이 많았던 게 주요 원인인 듯 보였다.
피를 세 통이나 맞았다. 난생처음 해보는 수혈이었다. 다행히 수혈 부작용은 없었다. 얼굴이 창백해 입술색이 다 빠지고 눈알이 하얗다 못해 푸르스름해 보는 사람마다 걱정을 했다. 남편은 내 얼굴만 바라봤다. 나는 꼬박 네 시간이나 피를 맞느라 신생아실 면회를 못 간다는 사실에만 몰두했다. 아쉽고 섭섭했다.
수혈한 다음날 헤모글로빈 수치는 6.2%로 올라왔다. 수혈을 해도 본디 수치는 서서히 올라오는 거라 이 정도면 걱정할 일은 면한 참이었다. 현재 출혈이 멎은 것만은 분명하다는 방증이라 기쁘게 회복을 기다렸다.
그래도 여전히 빈혈이 심해 두통이 이어졌다. 어지럽다고 느끼기보다는 두통으로 느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느낌보다는 잡히지 않는 두통에 체위를 신경 쓰기 바빴다. 평평하게 누우면 도리어 머리가 아파서 앉거나 서 있을 때가 나았다.
두통이 좀 잡힐 때쯤 되니 벌써 수술 6일 차. 내일이면 퇴원이었다. 회복 중이라는 생각에 안도하고 모유 직수도 다녀왔다. 직수의 기쁨이 호르몬을 자극했는지 기쁨이 가득한 상태가 되어 내 몸 컨디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들떠 있었다. 갑자기 타인을 이렇게 좋아하게 된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날 저녁, 잠깐 슈퍼에 다녀온 남편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나 때문이었다. 환자복 밖으로 피가 흥건히 배어나는 중이었다. 놀라서 옷을 벗어보니 이미 수술부위 밖으로 팬티가 몽땅 젖었고, 상처부위에선 피가 뚝뚝 떨어졌다.
급한 대로 수술부위를 지혈하고 새로 드레싱을 했다. 다음날 진료를 보았다. 아직도 피는 나는 중이었다. 적지 않은 출혈이었다. 초음파 소견상 새로운 혈종이 발견되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만 6일이 지난 상처에서 아직도 피가 난다는 건 비정상적이라 했다. 주치의는 종합병원 진료를 권하며 소견서를 써주었다. 이상 양상이니 일단은 실밥도 뽑지 않겠다고 했다.
가까운 종합병원 진료는 당일이 불가해서, 아쉬운 대로 응급실로 갔다. 온갖 검사를 했다. CT, 엑스레이, 동맥혈검사... 2시에 도착한 응급실에서 7시는 다 되어 나왔다. 응급실 부인과 소견, 다음날 산부인과 진료 소견, 본래 다니던 내분비내과 주치의 소견 모두 큰 일은 아니라 했다. 상처가 남들보다 지나치게 더디 낫는 것뿐, 모든 수치가 정상이니 염려 말라고. 귀찮아서 그렇지 고인 피만 다 빠지면 알아서 살은 붙을 테니 거즈 잘 대고 지내라고.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막상 몸에서 계속 피가 나니 무서웠다.
하루 네댓 번씩 드레싱을 했다. 남편이 야전병원처럼 조리원 한편을 꾸려두고 정성껏 돌봐주었다. 이번에 멸균거즈 따위는 처방으로 살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포비돈용액을 바르는 방향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나는 하루 종일 씩씩하게 지내다가도 밤이면 무서운 마음이 들어 흠뻑 울었다.
피는 수술 후 17일이 지나서야 멎었다. 작게 피가 새던 수술부 구멍도 그제야 거짓말처럼 아물었다.
지금은 출산 44일 차. 아직 혈압약을 먹고 있고, 모유 수유 때문에 여전히 인슐린을 맞지만 특별히 아픈 곳 없이 잘 지낸다. 10cm이던 혈종도 5cm 정도로 줄었다. 임신 중 인슐린저항상이 끝없이 높아져 하루에 기저 32 단위, 속효 70 단위 이상을 투약했는데 지금은 기저 12만 맞는다. 필요시에만 속효 2~3 단위로 조절하는 정도. 당화혈색소는 5.8, 정상 범위다. 내분비내과 주치의 선생님은 "복덩이를 낳았네."라고 하셨다. 아직 임신 회복기라 변동성이 클 수도 있지만.
지나고 보면 하루아침에 임신중독이 되었던 것 같다. 임신 내내 멀쩡하던 혈압이 갑자기 튀었고 부기도 상당했다. 무엇보다 수술 후 출혈이 잘 잡히지 않았던 게 가장 이상하다. 그래서 지독히도 회복이 더뎠던 것 같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다행히 아기는 저혈당 없이 세상에 잘 태어났다. 2025년 10월 29일 오후 6시 28분, 무려 3.89kg의 사랑스러운 여아가 내게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