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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율로 Dec 06. 2021

아기와 설리

아기를 낳고 비로소 '아기 설리'를 만나다

막상 다섯째 막내딸을 낳으니 너무 신기하고 예뻤다. 몰랑몰랑한 아기 살. 눈 꼭 감고 젖 먹는 모습. 우는 소리까지 너무 사랑스러웠다. 나는 조리원에서 15일간 몸조리를 하고 16일째 되는 날 집으로 왔다. 


16일... 우리 설리는 태어난 지 16일 만에 베이비 박스에 버려졌다. 설리가 지금 내 품에 있는 핏덩이만 할 때 버려졌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조리원에서의 마지막 날, 나는 눈이 퉁퉁 붓도록 울며 설리가 낳아준 엄마 품에서 떨어지던 그날을 생각했다. 딸아이의 상실의 아픔이 처음으로 내 가슴을 후벼 팠다. 


 막내 지율이를 집에 데리고 오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설리의 문제 행동들이 예전만큼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또한 작은 아기로 인한 행복과 웃음이 조금씩 우리 집 분위기를 바꾸어 놓기 시작했다. 


오빠들과 설리도 처음엔 엄마가 완전히 아기의 것이 되었다며 힘들어했지만, 조금씩 조금씩 아기의 몸짓과 미소에 녹아 버렸다. 특히 설리는 아기가 자신을 향해 활짝 웃어주는 그 웃음에, 그 손짓에 너무 행복해했다. 무엇보다 오빠들보다 자기를 더 좋아하는 지율이 때문에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지율이는 나만 좋아해요.” 

“지율이는 형제들 중에 나를 제일 좋아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기뻐했다. 


자신을 향한 조건 없는 아기의 미소와 몸짓이 설리의 마음을 치료하는 것 같았다. 

 

“나도 이렇게 작았어요?” 

“나도 아기처럼 우유를 잘 먹었어요?” 

“나도 이렇게 귀여운 아기였나?” 


아기가 온 뒤 설리는 부쩍 많은 질문들을 했다. 


설리 너도 너무나 작고 예쁜 아기였다고, 우유를 잘 먹는 착한 아기였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새들원에서 자랐고 새들원에서 엄마젖 대신 우유를 먹었다고 말하는 설리의 모습이 애처로웠지만 아기를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고 입양 말하기를 시도하게 되어 다행이었다. 


상처와 아픔을 말하고, 느끼고, 곱씹으며 아이가 마침내 그것을 이겨낸다고 배웠기에 나와 설리는 막내 아기를 사이에 두고 ‘아기 설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설리는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주눅 들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럴수록 아이가 조금씩 밝아지는 것을 느꼈고 비로소 나는 설리의 아픔과 상처가 이해되고 느껴졌다. 


‘이토록 작고 한 시간도 엄마 없이는 지낼 수 없는 존재인 어린 아기였을 때, 네가 너무 힘들었겠구나... 네 울음이, 눈치가, 너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고 돌봐주는 엄마가 없어서 생긴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아이에 대한 이해의 폭이 훨씬 넓어졌다. 또한 어린이집에서도 동생들을 잘 돌보아 인기가 많은 언니인 설리는 막내 지율이 돌보는 것을 너무 즐거워하였고 나는 그런 설리에게 고맙고 미안하였다. 


아기가 태어나면 나는 다섯 아이를 키우다 죽을 것 같았는데, 우리 설리는 더 힘들어할 줄 알았는데 막상 아기가 오고 나서 나와 설리는, 그리고 우리 가족은 웃음을 되찾고 회복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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