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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생끝에골병난다 May 29. 2023

어떤 글에 끌리시나요. 비 오늘 날을 위한 시와 음악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 윤종신과 하루키의 '상실'

이 글을 인스타그램(@garbageidea)에 올렸는데, 윤종신 씨가 직접 좋아요를 눌러주셨다!윤종신 가사에 대한 글을 쓰고, 윤종신의 좋아요를 받은 게 군생활 최대 자랑이다.



인스타그램 @garbageidea_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온종일 비가 온다. 왜 일과가 있는 평일이 아니라 주말에만 비가 오는 걸까. 원래도 그랬지만 군입대를 하고 나니 비를 더 좋아하게 됐다. 18개월만 계속 내려줬으면 좋겠다. 비 그치기 전에 써보자는 생각으로 촉촉한 시와 노래 몇 개에 대한 글을 '휘뚜루마뚜루' 적어봤다. 다음 번에 비가 내리면, 비를 대하는 다른 태도의 문학 작품과 음악을 다뤄보고 싶다. 세상 이별 다한 것처럼 우울한 걸로.


비가 온다
네게 말할 게 생겨서 기뻐
비가 온다구

나는 비가 되었어요
나는 빗방울이 되었어요
난 날개달린 빗방울이 되었어요

나는 신나게 날아가
유리창을 열어둬
네 이마에 부딪힐거야
네 눈썹에 부딪힐거야
너를 흠뻑 적실거야

유리창을 열어둬
비가 온다구!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황인숙>



비가 온다는데 시는 경쾌하다. 시인도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다. 비가 오면, '너'에게 말해줄 게 생겨서 기쁘다. 시인은 비를 보면서 '너'를 떠올린다. 그러니까 시인을 신나게 하는 것들은 '비'와 '너'이다. 이 시가 구슬픈 이유는 시인을 슬프게 하는 것 역시 '비'와 '너'이기 때문이다. 화자가 비를 보면서 너를 떠올리기에, 비가 온다는 것은 '너'의 부재를 상기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언뜻 경쾌하기까지 한 이 시의 제목에는 '침울'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영화 '가장 따듯한 색, 블루'에 대한 감상평을 올린 적 있다. 영화에 따르면 사랑의 본질적 속성은 푸른 것이고, 그래서 블루는 가장 따듯한 색이다. 시인은 이제 비가 와도 마냥 기쁘지 않게 되었다. 가령 비가 올 때마다 세상이 따듯한 푸른색으로 물드는 것이다.



이런 발상은 많은 팬덤을 가진 멜로 영화 중 하나인 <이터널선샤인>의 질문과도 연결된다. 개인적으로 <이터널선샤인>이 비슷한 팬덤을 가진 <어바웃타임>보다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답을 쥐여주는 대신 질문을 던지는 영화기 때문이다. 외롭지만 '티 없이 맑은 마음'과 사랑을 겪은 우울한 마음 중 무엇을 택할 것인가. 물론 선택권은 없고, 영화처럼 기억을 지울 수도 없다. 시의 태도는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상쾌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나는 비가 되어, '너'를 만나 너를 흠뻑 적실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이미지를 세우는 노랫말은 하나가 아니다. 악동뮤지션의 '달'이라는 노래(유난히 밝은 달 / 우리가 유일하게 공유하는 것 아직도 / 나도 살짝 웃어보이면)부터 진저리가 나는 정철의 '속미인곡'까지. 악동뮤지션 '달'의 화자도 '우리'가 같은 달 아래 있음을 상기하며 비가 내리기를 소망한다. 아니, 어쩌면 이 시도 속미인곡의 변주 아닌가. '각시님, 달은커녕 궂은비나 되소서'라고 말하던 화자는 세월이 흘러 스스로 '궂은비'가 되기로 결정한다. 심지어는 날개까지 달고 나서 통보한다. 유리창을 열어뒤. 비가 온다구.



유난히 밝은 달
거대한 원형 속에 보이네 너의 미소

샤워하고 걸쳐 두른
샤워가운
베란다로 나와
자막 없이 밤하늘 보고
번역 없는
바람 소릴 듣지

눈물이 고이네
슬퍼서
달이 너무 슬퍼서
비가 오면 좋겠어
오늘 밤엔

유난히 밝은 달
거대한 원형 속에
보이네 너의 미소
나도 살짝 웃어 보이면
저 달에 비칠까 (..)

유난히 밝은 달
우리가 유일하게
공유하는 것 아직도
나도 살짝 웃어 보이면

샤워하고 걸쳐 두른 네 향기
난 오늘도 달에 밤 인사를 건네
음소거로 소리 없이 흐느낀
난 오늘도 달에 밤 인사를 건네


<달, AKMU(악뮤)>





윤종신과 하루키의 상실


나는 윤종신의 노랫말을 좋아한다. 어떤 가사는 비유와 상징이 가득해서 해석하려면 공을 들여야 한다. 윤종신의 가사에는 그런 것이 없다. 대신 다른 중요한 성분이 마음을 움직이는데, 그것은 진심이다. 사실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문학 교수의 논문보다는 보통 사람의 일기장이다.

윤종신의 가사는 담백한 그의 목소리를 닮았다. 과하지 않게 진심을 담아낸다. 언젠가 작사가로서의 윤종신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다. 우선은 5월이 가기 전에 12년 전 5월에 발표된 곡 <두 이별>을 소개하려 한다.

노래는 '이별 1'과 '이별 2', 두 파트로 나뉘어 있다. 무려 8분짜리 곡이 지루하지 않은 것은 음악이 훌륭한 탓도 있지만, 이것이 '이야기'라서다. 두 이야기가 하나의 편곡으로 묶여있는 형식인데, 모두 남성 화자의 실패한 사랑 이야기다. 이 지점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과도 연결된다.

보통 운문은 소설과 달리 작가의 마음을 반영하지만, 윤종신 같은 직업 작사가는 소설을 쓰듯 캐릭터를 설정한 뒤 작사에 임하기도 한다. 월간윤종신의 <다중인격>이라는 노래는 윤종신 노래의 다양한 화자들을 모두 집합시키는데, '두 이별'은 그들 중 두 명의 남자를 불러낸다.




이별에 대응하는 두 가지 태도가 있다. 가수 이정의 목소리로 표현된 1번 태도는 언뜻 쿨해보인다. '너'의 좋은 안부를 기원하고(기왕이면 잘 살아줘 / 먼 훗날 옛사랑이 초라해지면 / 그건 더 싫어), 영원한 것이 없다는 사실에 순응한다. '이별 1'에서 화자의 자세는 상실을 극복하려는 것이다. '나'는 '추억을 깊이깊이 묻어서' 기억으로 바꿀 것이다. '추억들이 떠오르면' 견뎌야 할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인물은 윤종신이 작사한 다른 노래 '눈물이 주룩주룩'의 화자와 비슷하다. 일상은 분주하고 현실이 중요해서 상실은 뒷전이다. 그리고 '눈물이 주룩주룩'에서처럼, 실패할 것이다. 인간의 뇌는 한 번 겪은 일을 절대 지우지 않는다. 잊었다고 믿은 기억들은 모두 어디엔가 '몰린' 것이다. 그리고 몰려있는 것은 농도가 짙다.


(눈물이 주룩주룩, 윤종신)



그냥 견딜만 했어
우리 이별이란 게
내겐 현실보다 중요한 건
아니었나 봐


걱정했던 그리움
분주했던 내 하루에
조금씩 미뤄지다가
어느새 난 이별한 적 있었나


오늘 바빴던 하루
집에 돌아가는 길
왠지 낯익은 온도와 하늘
피곤함까지


이런 날엔 기댔지
그날의 푸념까지도
모든 걸 들어주었던
그 한 사람 갑자기 떠올랐어


(..)


눈물이 주룩주룩
나의 뺨을 지나서
추억 사이사이 스며드는 밤
한꺼번에 밀려든 그대라는 해일에
난 이리저리 떠내려가



<눈물이 주룩주룩>을 인용하자면, '왠지 익숙한 하늘과 온도, 피곤함'에 어느날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들 것이다. 눈물은 '나의 빰을 지나서' 곧 그 밑에 있는 마음까지 도착할 것이다. 슬픔이 언젠가 가슴에 '깊이 묻어둔' '추억 사이사이' 스며든다. 이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여자 없는 남자들'의 소재이기도 하다. 충분히 슬퍼하지 않은 상실에는 더 짙은 고통이 찾아든다.

윤종신의 목소리와 함께 '이별 2'가 시작된다. 발성이 훌륭한 사람은 노래방에도 많다. 윤종신이 좋은 가수인 건 그가 나지막하게 노래를 시작하는 순간 주변 공기가 달라진다는 사실에 있다. 이 이야기는 조금 더 윤종신의 진심이다.

조금은 이해가 된다. 이런 이별을 하는 사람이니까 윤종신은 그런 가사를 쓸 수 있다. 떠나는 상대를 잡으려는 태도는 되려 그를 질리게 만들고, 결국 나는 '너'를 영영 돌아올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과실을 평생 후회하며 이런 글도 쓰는 것이다.  윤종신 노래의 화자가 이별을 잊지 못하는 건 요즘 말로 '스스로 불러온 재앙' 아닐까.

청승을 떨다가(어떻게 보내줄까 / 너무 사랑했다고 / 부디 행복해 줘 /고개 떨굴까 우리 이별), 이상한 배려를 고민하다가(혹시 꿈꿔왔던 이별이 있니 / 내가 사랑했었던 / 그래 널 위한 마지막 배려) 결국엔 붙잡는다(나를 버리지마 / 너 뿐인걸 내겐 / 너 하나가 내게는 유일했던 휴식) 떠나라는 말도 하지만, 공 들일 필요 없는 반어법이다.

둘은 다른 태도로 이별에 대처하지만, 결국엔 둘 다 실패할 것이다. 다시 '여자없는 남자들'로 돌아가면, 상실은 얼룩 같은 것이다. 닦아내도 남아있고, 사방에 퍼져있다. 그러고 보니 윤종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에서 모티브를 얻어 노래를 쓰기도 했다 (가도 있어 언제 어디나 / 얼룩들처럼 사방에 번져 있어.)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두 이별'은 다른 과정을 거쳐 같은 슬픔에 이른다. 어쩌면 이건 모두의 이야기면서 한 사람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서럽다가도 괜찮아지고, 괜찮다가도 무너지는 것이 이별의 경로 아니던가. 잊고 살다가 문득 마음에 걸리는 얼룩처럼 말이다.



(두 이별, 윤종신)

(이별 1)

기왕이면 잘 살아줘
먼 훗날 옛사랑이
초라해지면 그건 더 싫어
내 욕을 해도 괜찮아
어차피 너 가버린 뒤
헤어진 이유 그게 뭐가 중요할까


추억들이 떠오르면
그 때만 잘 견디면 돼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걸
우릴 보면 알 수 있잖아


저 멀리 멀리 가버려
혹시 떠올라도 그리워도
안부조차 들을 수 없게
저 깊이 깊이 묻어둬
추억 추억 또 추억
셀 수 없는 순간들 그냥 기억일 뿐
(...)


(이별 2)
어떻게 보내줄까
너무 사랑했다고
부디 행복해 줘 고개 떨굴까
우리 이별 원하는 대로 해줄게
혹시 꿈꿔왔던 이별이 있니
내가 사랑했었던
그래 널 위한 마지막 배려


나를 떠나지마 나를 버리지마
너 뿐인걸 내겐 너 하나가
내게는 유일했던 휴식
내 모두였던 너를 보내기엔
아무 준비 안된 나를 제발 버리지마
내가 달라질게 너만 바라볼게
(...)


헤어나오기엔 너무 깊이 빠져든 너이기에
내게 자존심 따윈 필요치 않아
나 이제 어떻게 살라고
너 없는 날들
어때 참 멋없지
있던 정마저 떠나지
붙잡고 매달리는
가련한 사람 떠나





The duets


사라진 내일이 바로 지금이란 걸


윤종신 다음으로 좋아하는 작곡가는 윤상이다. 어렸을 땐 남들 빅뱅 좋아할 때 손석희 앵커를 좋아했다. 알고 있다. 안경 쓴 아저씨를 좋아하는 증상을 치료해야 한다. 윤상 노래는 구조적으로 가장 완벽하다고 느낀다. 치밀한 구성이 대중성을 구현한다. 어떤 노래에서는 사람 귀가 듣기에는 과분한 소리가 난다.


가사는 모범생 예술가가 수렴하는 어떤 지점에 있다. 삶의 진실이 고통에 있음을 인정하고, 다정한 격려와 카르페디엠에 대한 찬미로 극복해보자는. 'MZ 타령' 하는 애 같은 어른이 아니라, 어른 같은 어른이 부족한 시대에 이보다 나은 메세지도 없다.


황규관 시인은 ‘사는 건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몸이 아파보면 비로소 정신이 육체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단 아프지 않은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절실해진다. 위염에 걸리지 않으면 위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아프지 않으면 생을 감각할 수 없다. 살아있지 않으면 아플 수도 없다.


는 육체를 지닌 동물이다. 죽어있는 것으로 가득한 우주에서, 생명은 살아가는 것만으로 소중하다. 이유 없이 우울할 때, 식당에 들어가서 정말 맛있는 요리를 배불리 먹고 나와보자. 아까 했던 고민들이 덧없는 것으로 느껴지며 기분이 한층 나아질 것이다.


장담한다. 허파에 차오르는 우울한 빗소리에, 살풋 풍기는 밤공기 내음에 영문도 모르고 마음이 부풀어 오를 때, 사랑하는 사람의 문자 한통,  그친 거리에서의 산책 한 번으로 아까와 똑같은 공기 아래서 전혀 다른 하루를 보내리라. 어른이라면 말해줘야 한다. "사라진 내일이 바로 지금이란 걸". 1등이 되겠다는 낮은 확률에 모든 것을 걸고 아등바등 살기에는 인생이 짧다는 걸. 나에게 즐거운 일을 찾고,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서로를 덜 괴롭히는 것이 행복의 공식이란 걸. 2014년에 발매된 <Waltz>의 노랫말로 글을 마친다.




이런 하루 또 하루가
전부는 아닐까
가끔은 주저앉고 싶지만
천천히 서로를 느끼며
가까이 리듬 속에
우린 함께 춤을 추고 있는 거야

너와 나 두손을 마주잡지는 않아도
두 입술을 포개지 않아도
하루 두번이라는 큰 원을 그리며
우린 함께 춤을 추고 있어
가끔은 넘어질 때도 있지만
그 모습이 서로 우습지만
세련되지 않아도 리듬을 찾아서
우린 다시 원을 그리는 거야

삶이란게 너무 무겁다고
지친 얼굴로 날 보며 웃었지
말로 전하지 못했던 달콤한 위로는
늘 맘 속에 그늘로 있지만
괜찮아 서로를 느끼며
가까이 리듬 속에
우린 함께 춤을 추고 있는 거야

사라진 내일이 바로 지금이라는걸
우린 모두 서로 잘 알기에
시계바늘 따라서 큰 원을 그리며
지금도 우린 춤을 추고 있어
가끔은 넘어질 때도 있지만
그 모습이 서로 우습지만
세련되지 않아도 리듬을 찾아서
우린 함께 춤을 추는거야

(Waltz, 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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