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아버지는 군인이다. 그는 산 속에서 파시즘에 저항하는 반군을 학살한다. 반군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지역 주민들을 개미 때처럼 죽인다. 반군이란 이름으로 묶인 그들은 투사이기 전에 사람이라서, 누군가의 연인이고 가족이다. 학살이 시작되면 사람들은 이념 때문이 아니라 소중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
비슷한 일이 파시즘 시대의 대한민국에서도 있었다. 제주도에서, 광주에서, 여수와 순천에서, 보도연맹 학살이 있었던 수원과 경기에서, 전국 구석구석의 땅굴에서 말이다. 우리는 아직 그 상처를 졸업하지 못했고, 대한민국은 미완의 파시스트 국가라서 파시즘은 지금 다시 고개를 들었다.
소녀가 도착한 산 속의 주둔지에는 밤마다 총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곳에 도착하고부터 소녀의 눈에는 요정이 보인다. 요정을 따라간 곳에는 전설 속 정령인 '판'이 있었고, 그는 자신이 제안하는 모험을 수행한다면 지하왕국의 공주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소녀의 모험이 시작된다.
영화를 본 모든 관객의 뇌리에 비슷한 생각이 스쳐갔을 것이다. 요정이나 마법 같은 건 모두 소녀의 상상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다. 중세의 사람들이 쉽게 영적인 경험을 한 이유는, 배가 고파서였다. 극도의 내핍이 환각을 불러냈다. 상상은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가부장적인 환경과, 매일 반복되는 죽음을 피해 소녀는 환상으로 도피했을 것이다.
기예르모 델토로의 영화는 전체주의로부터 도피한 곳에서 꿈꾸는 동화다. 그래서 소년들을 징집해 군사훈련에 동원하는 끔찍한 파시즘의 시대에도 피노키오는 사람이 되며, 제페토는 다시 아버지가 된다(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 <판의 미로> 속 소녀는 엄마가 살아있는 지하궁전으로 돌아가 웃으며 죽음을 맞는다.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는 해양 생물이 주인공에게 아가미를 달아주고, 둘은 '사랑의 모양'을 닮아 경계 짓지 않는 물 속에서 살아간다.
독일의 작가 크리스타 볼프는 '남성의 전쟁으로 여성이 희생될 때 그 여성들의 국적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전쟁을 넘어서는 평화의 길 역시 ‘여성적인 것’으로부터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기예르모 델토로의 영화도 비슷한 믿음을 공유한다.
그의 작품은 '남성적인 것'에 저항한다. 가령 군대와 전체주의 같은 것들이다.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권위적인 군인 남성은 흑인과 여성, 장애인을 경멸한다. 자신이야말로 신과 가장 비슷한 형상일 것이라 믿는다. 사람들의 믿음 속 '신'은 백인 남성이었으니. 하지만 그가 그토록 혐오하던 괴물에게 심판 당하는 순간 깨닫는다. '너는 신이구나'
<판의 미로>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정부 메르세데스는 여성이었기에 의심 받지 않고 첩자로 활동할 수 있었다. 체포된 순간에도 파시스트인 아버지는 그녀를 무시한다. '여자 한 명인데 뭐 어때.' 그는 혼자서 심문에 임하며 끝까지 그녀를 얕본다. 칼에 찔리기 전까지 말이다.
남자들은 여자가 감정적이라며 조롱한다. 그래서 남성들의 굳건한 이성은 세계를 전쟁터로 만들었나. 공부하고 여행하고 사랑해야 할 소년들이 군대에서 비굴한 자아를 키우게 만들었나. 자신의 이성을 확신하는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다. 전쟁터에서 사람은 개미 때처럼 죽어가고, 가부장들은 그렇게 아이와 여자들을 지키지도 못한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확전을 부르짖는 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진실은 따로 있다' 고 말했다. '평화가 곧 승리라는 것이다. 더 이상의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다시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이 승리다.
델토로는 동화의 형식으로 현대 문명의 모순을 극복해내지만, 현실은 동화가 아니다. 이곳에는 요정도 마법도 없다. '판의 미로'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어른이 되면 알게 될 거야. 세상은 동화 속 요정 이야기와는 달라. 잔인한 곳이야."잔나비의 노래 '꿈과 책과 힘과 벽'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이런 무책임한 격언에 꿈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어른이 된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우리는 어째서 어른이 된 걸까' '하루하루가 참 무거운 짐이야. 더는 못 갈 거야.'
하늘에 도리가 없고 신에게 자비가 없다고 느껴질수록, 중요한 것은 지상에 살아가는 우리의 행동이다. 요정이 없다면, 책임은 이곳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다. '세상이 잔인해'진 것은 우리의 탓이다. 이제 우리는 질주를 멈추고, 서로를 구원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 아이들이 더이상 무덤덤한 우리의 눈빛을 닮지 않기를바란다.
<꿈과 책과 힘과 벽. 잔나비>
꿈과 책과 힘과 벽 사이를 눈치 보기에 바쁜 나날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무책임한 격언 따위에 저 바다를 호령하는 거야 어처구니없던 나의 어린 꿈 가질 수 없음을 알게 되던 날 두드러기처럼 돋은 심술이 끝내 그 이름 더럽히고 말았네
우리는 우리는 어째서 어른이 된 걸까 하루하루가 참 무거운 짐이야 더는 못 간대두
멈춰 선 남겨진 날 보면 어떤 맘이 들까 하루하루가 참 무서운 밤인 걸 잘도 버티는 넌
하루하루가 참 무서운 밤인 걸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하루는 더 어른이 될 테니 무덤덤한 그 눈빛을 기억해 어릴 적 본 그들의 눈을 우린 조금씩 닮아야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