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생끝에골병난다 Jun 03. 2023

총을 이긴 꿈. 유시민과 김남주. 영화 <1987>

지금, 돌아봐야 하는 이유

지금, 돌아봐야 하는 이유
-유시민과 김남주. <1987>의 6월




 저는 민주화가 될 거라고 생각을 안 했어요.
 학생들의 맨주먹으로 탱크와 총칼을 어떻게 이겨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못 이기는싸움이예요.

 해야만 하니까.
 왜 해야 한다고 생각하냐면,

너무 못나보이잖아. 그냥 있으면.

(KBS '대화의 희열' 중, 유시민 작가)





모병제에 대한 이야기


군대 후임이 크게 다쳤다. 쇳덩이로 된 커더란 장비 덮개에 손가락을 찍혔는데, 선을 따라서 살이 다 패였다. 일과를 마치고 생활관에 돌아왔을 때, 그 친구는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울고 있었다. 파견 근무를 나와있는 탓에 의무대는 닫혀 있었다. 후임이 지혈을 하는 30분 동안 간부들은 산골에서 병원에 보낼 방법을 의논하고 있었다. "택시를 부를까?그럼 사단에서 싫어할 텐데." 그러는 중에도 그 친구는 내내 울다가 한참 뒤에야 엠뷸런스를 타고 민간 병원에 갔다.


근대로 이행하며 대부분의 선진국은 징병제에서 모병제로의 전환을 선택했다. 어쩌다 잡혀온 '오합지졸'보다는 정예군이 강하기 때문이다. 징병제로 육군을 운영하던 중동 국가들이 미군의 항공 전력에 무참히 패배한 역사가 말해주듯, 현대전은 사람 수가 아니라 기술이 승패를 가른다. 건강한 청년들이 헌법 상의 자유권을 빼앗기고 최저시급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며 노동에 동원되는 것은, 개인에게도 막대한 기회 비용을 초래하지만 국가적인 인력 낭비이기도 하다.


군대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남자로 태어난 죄" 때문에 고생을 한다는 불만이다. 징병제 사회의 청년 남성은 자신이 손해를 봤다는 생각 탓에 극우화  다. 국가에 동원된 자신은 피해자이며, 복무하지 않은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외국인은 '무임승차자'지만 특혜를 받고 있다. 따라서 평등을 추구하는 정책은 남성에 대한 억압이라는 인식이 성립한. 여성을 징병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도 남성 권력자였고, 그를 괴롭혔던 자는 남성 선임이었으며, 그 부조리를 답습하여 후임을 괴롭혔던 자도 바로 그였지만.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는 여성이 그의 기회를 빼앗고 있다는 주장으로 군대에 가지 않은 '비남성'에게 원한을 발산한다.


징병제 국가에서 파시즘은 쉽게 똬리를 튼다. 거의 모든 남성이 '생각하지 말 것'을 강요하는 군대 문화를 체화한 채 사회에 흩어진다. 아랫사람을 짓밟고 윗사람에 고개 숙이는 비굴한 자아가 양산된다. 징병제는 국가가 시민의 계약을 통해 탄생한 상상의 산물이며, 국가의 주권이 민에게 있다는 기본적인 사회 계약과도 충돌한다. 국가에겐 우리를 동원할 권리가 없다. 국가가 우리의 노동력과 병력을 이용하고 싶다면, 단지 노동법에 따라 계약할 수 있을 뿐이다.


손가락을 붙들고 울고 있는 후임을 보면서, 나는 징병제가 없는 세상을 생각했다. 멀리있는 꿈이었다. 진지한 해결을 논하는 순간 징병제의 피해자인 20대 남성들부터 "빨갱이" "메갈" 같은 혐오 단어를 뱉으며 공격하니 말이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지 않는 자는 세상이 정해주는대로 생각한다. 한나 아렌트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 때문에 파시즘의 비극이 움틀 것이라 경고했다.


어쩌면 이 불만의 세대는 해결을 바라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중국의 대문호 루쉰은 노예면서 자신이 노예임을 알지 못하는 자, 생각하지 않고 다른 노예를 괴롭히는 자를 노비라고 했다. <아Q정전>의 '아Q'가 그 예일 것이다.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노예임을 긍정하고 다른 약자들을 괴롭히는 노비가  수는 없다. 멀어지는 앰뷸런스를 보며 나는 멀리있는 모병제를 생각했다. 대학에서 코딩을 공부하고 싶어했던 후임은 다치지도 울지도 않았어야 했다.


KBS <대화의 희열>



총보다 강한 꿈의 승리사(史)


꿈은 힘이 세다. 무형의 사상은 언제나 총칼을 이겼다. 지금 우리가 아무리 멀리있는 꿈을 꾸더라도, 총칼과는 싸우지 않아도 . 글을 쓰는 지금은 6월이다. 봄은 끝나가지만, 아직은 더 짙어져야 하는 초록이 남았다. 3월부터 6월까지 이어지는 봄의 시간은 여울진 한국 현대사를 압축해놓은 시간이기도 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벚꽃을 보며 겨울간 곪아있던 것들이 터져나오는 모습을 떠올렸다. 추위에 얼어있던 것이 녹으면서 부패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꽃이 핀다. 그래서 봄에는 환희와 좌절이 교차한다.


3월 1일에 꾸었던 자주 광복과 민주주의의 꿈은 15일의 부정선거와 4월 3일의 학살로 짓밟혔다. 하지만 4월 19일에는 독재 정권을 무너트리기도 하는 것이다. 5월 광주에서 정의는 죽임 당하고 패배했지만, 그것이 '앞서서 나간' 발자국이 되고, 6월에는 군부 정권을 무너트리기도 하는 것이다. 광주의 이야기가 총을 이겼다. 총은 책보다 힘이 약하고, 책은 총보다 강하다고 할 만하다.


KBS '대화의 희열'
나는 걷고 있었다 그날밤
살얼음이 깔린 압제의 거리를
기역 자로 꺽어진 엿장수 골목을 돌아
밤참으로도 허기진 배를 채우지 못하는 노동자들
카바이트 불빛의 포장마차를 지나
내 이름 아닌 아무개 이름을 불러도
혹시나 나를 세워 몸수색이나 하지 않을까
호루라기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죄 안 짓고 죄지은 양 괜시리 불안해지는 곳
그런 파출소 앞을 지나

환청이었을까 '어이 학생'하는 소리에
환각이었을까 목덜미에 닿을 것 같은 검은 손의 촉감에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발걸음이 빨라졌고
급기야는 뛰기 시작했다
뛰면서 나는 생각했다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칵 뒈져나 버려라 이 겁보야
(..)

그날밤 나는
나에게 맡겨진 임무를 성공적으로 끝냈다
아 그날밤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 하나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그날밤을 회상하면, 김남주)


김남주 시인도 '그날 밤' 압제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잠들지 못하는 도시를 지나쳤다. 그곳에는 엿장수 골목이, 밤참으로도 허기를 채우지 못하는 노동자가, 포장마차가 있었다. 고통이 들어찬 생활의 공간이다.

이어서 파출소를 지나친다. 이곳은 호루라기 소리로 시민을 멈춰 세운 뒤, 나의 몸을 수색할 수 있는 압제의 공간이다. '어이 학생' 하는 소리가 들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납치와 고문, 살인이 팽배한 시대였다.

환청이 들릴 정도로 대학생 김남주는 긴장해있었다. 도망치며 생각했다. '칵 뒈져나 버려라 이 겁보야.' 시인은 두려워했지만, 인간이고자 하는 마음으로 도망을 멈췄다.

그날 밤 임무를 마치고,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 하나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이유는 의미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일 너머의 이유를 추구하는 존재라서, 의미를 찾기 위해 가끔은 욕망을 숨길 줄도 알아서 우리는 인간이다. 양심을 위해 두려움을 참을 때 우리는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 된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요?


우연히 유튜브에서 한 토크쇼 영상을 봤다. 유시민 작가는 KBS '대화의 희열'에 출연해 그런 말을 했다. 대학생들이 총을 이길 수는 없어 보였다고, 언론은 늘 기득권과 한통속이었다. 시위를 해도 신문 한 줄 나지 않았다. 3분 동안 집회를 하고 징역 3년을 받는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꿋꿋이 목소리를 낸 이유에 대해, 작가의 대답은 이렇다. "너무 못나보이잖아. 그냥 있으면." 건너건너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세상은 고통이 가득 들어찬 곳이다. 공장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는데 누가 와서 인분을 뿌렸다. 누구는 잡혀갔다. 나는 이런 세상에 태어났다. 내 앞길을 닦는 것도 삶의 방법일 수 있겠지만.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나서야만 했던 것이다. 내 삶의 방식에 비천함과 비겁함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영화  <1987>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요?" 총칼 앞에서 나약한 개인의 양심 같은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총에 맞아서 죽으면 그런 것도 다 끝일 텐데.

그런데 1987은 그렇게 세상이 바뀌는 것이라고 소리치는 영화다. 교도관과 기자, 성직자와 검사. 대학생과 시민까지. 모두가 조금씩의 양심으로 조금씩의 저항을 한다. 여기저기서 개울물이 모여들고 이내 개천을 이룬다. 역사는 그렇게 바다로 흐르는 것이다.

지금 역사는 다시 뒤로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언론과 야당은 압수수색을 당한다. 자유로운 예술 행사는 폐지됐고, 수색 받고 감옥에 갈 것이 두려워서 우리는 입을 다물어야 한다. 정부는 민주주의의 기본인 집회의 자유를 통제하겠다며, 또 군 복무 기간을 연장하겠다며 논의한다. 직장인의 노동시간을 늘리고, 부자들의 보유세를 깎아준 뒤 서민의 전기요금은 높였다. 모병제, 주4일제, 기본소득 같은 더 나은 미래의 꿈들은 산산히 흩어졌다. 지금, 6월이 가기 전에, 다시 80년대를 돌아봐야 한다. 아직은 더 짙어져야 하는 초록이 남았다. 김남주 시인의 글로 용기를 전한다.




“자신이 자유로운 존재임을 잊지 않는다면 대통령 자리에 앉은 어떤 남자의 어리석고 기괴한 행위가 너의 존엄을 해치지 못할 거야!




작가의 이전글 우리는 어쩌다 어른이 됐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