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에게는 늘 꿈꾸는 풍경이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열면, 문에 달린 종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나를 반긴다. 그 순간, 엄마는 가장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아 주고, 하얀 에이프런을 두른 채 간식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고 계신다. 나는 가방을 후딱 내려놓고 맛있는 냄새를 쫓아 식탁으로 향한다. 함께 간식을 나누며 도란도란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나눈다. 쫑알쫑알 떠드는 나를 엄마는 다정하게 바라본다. 이렇게 실컷 수다를 떨고 나면, 한결 기분이 좋아진다.
거실의 한쪽에는 세계문학 전집이 꽂혀 있고, 간식을 다 먹은 후 읽고 있던 책으로 시선을 돌린다. 책 속에서 나는 사랑을 하고, 모험을 하며, 때로는 아주 먼 곳으로 떠난다. 현실에서는 따뜻하고 다정한 공기가 내 주위를 감싸고 있다. 책을 읽다가 엄마의 옆모습을 본다. ‘내가 오늘 팬케이크 먹고 싶은 걸 엄마는 어떻게 알았지?’ 생각하며 다시 책에 몰입한다. 책이 재미있자 나는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본격적으로 긴 이야기를 읽을 태세를 갖춘다. 엄마도 내 옆에서 책을 읽거나 뜨개질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우습기도 하다. 학창 시절, 아무도 없는 집에 제일 먼저 들어와 가장 오랜 시간을 홀로 보냈던 나에게는 이런 상상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쓸쓸함이 마음속에 큰 구멍이 되어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 남아있다니, 가끔은 놀라지만 어쩔 수 없이 품고 살아야 할 상처인 것 같다.
우울한 날들이 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우울이 찾아오면 잠이 많아진다는 것을. 회사를 막 퇴사했을 때였고, 스스로 길고 긴 터널로 들어갔다. 눈을 뜨면 다시 자고 또 자고, 신생아처럼 잠만 잤다. 참다못한 남편이 내 손을 잡고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는 산책을 권했지만, 나는 이불에서조차 일어날 힘이 없었다. 아이를 낳고 내 손으로 키우기보다는 시어머니와 남편이 주 양육자가 되어 있었기에, 퇴사 후 여유가 생겨도 아이는 내 곁에 오려 하지 않았다. 어린이들을 위한 좋은 책을 만드는 것을 업으로 삼았던 내가 정작 우리 집에 있는 어린이에겐 책 한 줄 읽어줄 여유가 허락되지 않다니 참 아이러니했다. 정작 퇴사 후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려 했지만 다섯 살 아이는 갑자기 들이미는 책이 낯선지 한참을 거부했다. 아이와 새로운 유대관계를 맺으며 친해지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시기를 애착으로 똘똘 뭉쳐 함께한 엄마가 아니라 어떤 거리감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 일 년쯤 잠자기 전 열심히 그림책을 읽어 주었을 때, 아이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잠들기 전에 책을 읽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져, 엄마.”
“우리 그러니까 매일매일 읽자, 아들.”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재우고 한참을 울었다. 하지만 막상 내 우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책을 읽어주지 못하는 날들도 많았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 나는 필요 이상으로 바빴고, 회사 내에서 나에게 준 역할들을 제대로 해내고 싶어서 늘 안간힘을 썼다. 말도 안 되는 마감 일정이 주어져도, 모두가 하기 싫어하는 일이 내 몫이 되어도 아무 말 없이 묵묵히 해 나갔다. 하지만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나는 정작 나 자신과도 내 아이와도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새벽 4시, 아무도 없는 사무실 안에서 마감을 하다가 그 자리에서 사표를 썼다. 하지만 정작 회사를 나와서는 정작 내가 누구인지, 내가 뭘 원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해 애썼는지도 모르겠다.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닌 읽고 싶은 책을 읽었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조금씩 나를 위한 시간을 조금씩 만들어 갔다.
이전 회사에서는 업무 일지를 써야 했다. 오늘 내가 한 일 리스트를 작성하고 마지막에 느낀 점을 적어 회사 서버에 올리고 퇴근해야 했기에, 나는 나만의 하루 일과표 양식을 따로 만들어 사용했다. 퇴사 후 그 양식을 꺼내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적었다. 작고 소소한 일들을 적어 나갔고, 해냈을 때 그 칸에 색을 입혔다. 화분에 물 주기, 낮잠 자기, 책 읽기...... 등의 작은 행복들을 나열하다 보면 어느새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나답게 살게 되었고, 차근차근 나를 찾아갔다. 화분에 물을 주고, 낮잠을 즐기며, 준비해 놓은 책을 읽는 것 같은 사소하고 평범한 일들이 모여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열면 나는 누구보다 반가운 엄마가 되어 아이를 맞는다. 아무리 피곤한 날이어도 되도록 현관까지 가서 아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하며 반기는 엄마가 되려고 노력한다. 지난날을 통해 다정한 날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다. 매일의 작은 순간들이 모여 의미 있는 하루를 만들고, 그 하루가 나의 삶으로 채워져 간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오늘도, 내일도 안녕한 다정한 매일매일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