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방식

영화 러브레터

by 오늘의 햇살
img.jpg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방식



하얀 설원 위에 한 여자가 서 있다. 그녀는 산을 오르다 목숨을 잃은 약혼자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산 중턱에서 그녀는 외친다. "오겡끼 데쓰가? 오겡기 데쓰가? 와타시와 겐끼데스." 잘 지내냐고 묻는, 그리고 나는 잘 지낸다고 답하는 그녀의 청명한 목소리가 설원의 풍경과 함께 오래오래 마음에 남는 영화, 러브레터이다.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첫사랑과 함께였다. 첫사랑이라고 해봐야 십 대 시절, 일 년 남짓 혼자 좋아했던 게 전부이지만, 그 시절의 기억은 어쩐지 어설프고 설레고 따뜻하게 남아 있다.

중학생 시절 나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방송인이 되어서 내 목소리로 전하는 소식들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꿈을 접었다. 무엇보다는 부모님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준비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우리 집에서는 이 모든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꿈만 꾸기에도 모자란 여중생 시절이었지만, 나는 어쩜 그리 냉철하게 현실을 바라보았을까? 고등학생이 되면서 그 꿈을 정리했다. 그러고 찾아간 곳이 방송반이었다. 당시 방송반 이야기를 다룬 ‘나’라는 청소년 드라마가 히트를 치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방송반 시험을 보러 온 줄은 꽤 길었다. 나처럼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가 그 긴 줄을 기다리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쨌든 나는 방송반에 합격했고, 아나운서가 되었다. 방송반 학생은 할 게 많았다. 순번을 정해 친구들보다 일찍 일어나 아이들이 등교할 때 운동장에 흐르는 클래식 음악을 틀어야 했고, 가요 파트와 클래식 파트를 나눠서 점심시간 교내 방송을 해야 했다. 그리고 틈틈이 볼펜을 입에 문 채 안 되는 발음을 연습해야 했다. 선생님들은 전체 학생들에게 전할 소식이 있으면 방송실을 찾았고, 쉴 새 없이 호출되어 필요에 따라 아이들에게 새로운 소식을 전해야했다. 온에어 부스도 따로 없는 작은 공간이었지만, 나는 방송반 친구들과 함께 원고를 쓰고 방송을 하는 그 시절이 좋았다. 방송실이 따로 있어, 언제든 갈 수 있는 우리들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도 청소년 시기의 커다란 기쁨이었다.

여고생이었던 나는 근처 학교 방송반 학생들과 종종 교류를 했는데, 목적은 서로의 방송 시스템을 나누고 서클 활동을 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만남이었다. 하지만 집에는 언니들뿐이고 여중, 여고 출신인 내가 타학교 남학생들을 만나는 경험은 신선하고 큰 충격이었다. 그 아이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 아이 곁에서 빛나고 있는 후광을 보았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많은 책 속에서 드라마에서 왜 그렇게 표현하는지 나는 그날 정확히 알게 되었다. 눈부신 그 아이는 근처 OO고등학교 방송반 PD였다. 하얀 얼굴에 해사하게 웃는 그 웃음이 무엇보다 좋았다. 그 학교 방송반 친구들과 우리 학교 방송반 친구들이 함께 만나는 자리를 끝내고 난 후 그에게 온 메시지를 확인한(당시는 삐삐 세대였다. 그가 내 번호로 전화해 음성을 남긴 것이다!) 잘 들어갔냐는, 만나서 반가웠다는 뻔한 인사말이었지만 수십 번도 더 들었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채 학교로 향했다. 하지만 이내 알게 되었다. 방송반 친구 여섯 명에게 정확히 비슷한 식의 메시지를 남긴 그라는 걸! 그날부터 나는 매일매일 가슴앓이를 했다. 계절이 흐르고 종종 타학교 방송제가 열려 참석하게 되는 날이면 혹시나 그 아이를 우연히 만나 인사하게 되지 않을까 하여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런 순간이 오면 어느새 살포시 두꺼운 안경을 벗어 가방에 집어넣곤 했다. 하지만 막상 우연히 만나도 목인사를 하며 스치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의 마음은 더욱 열렬해졌달까? 나는 매일매일 일기 형식으로 그에게 편지를 썼다. 그러면서 그 아이에 대한 마음은 점점 더 깊어졌다. 그렇게 1년 반 정도가 흘렀을 때, 그럴 용기가 어디서 났는지 먼저 연락하기로 결심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를 종이에 적었다. 그리고 필요 없는 말들은 빼고 최대한 담백하게 문장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그 말들이 어느 정도 내 성에 차자 연락을 시도했다. 한번 보았으면 좋겠다고. 그 아이는 흔쾌히 좋다고 했고, 우리는 번화가에서 만났다. 그리고 함께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기 전 그가 물었다. "대학 가면 뭘 공부하고 싶어?" 나는 문학이라 말했고, 그는 순수과학이라고 했던 것도 같다. 함께 영화를 보면서도 나는 숨소리도 제대로 내기 힘들 정도로 긴장했고, 설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영화를 보는 그 순간, 이제 미련 없이 고3을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했던 것도 같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와 보자.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유명한 영화 '러브레터'는 얼굴이 닮은 두 여자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히로코는 약혼자 이츠키를 잃은 지 2년이 지나도 그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느 날, 우연히 이츠키의 중학교 졸업 앨범을 들여다보다가, 이제는 도로로 변한 그의 예전 주소에 편지를 쓸 결심을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편지에 답장이 온다. 답장은 사망한 약혼자 이츠키가 아닌 같은 이름을 가진 여성, 이츠키에게서 온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 여성 이츠키가 히로코와 경이롭게도 똑같이 닮았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여러모로 몇 번을 보아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둘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편지로 점차 가까워진다. 이 편지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끈처럼 작용하며, 두 여성은 서로에게 큰 위로가 되어 준다. 나는 이 영화를 겨울이 되면 종종 보곤 한다. 한 번 본 영화를 다시 보는 일이 드문 나이지만, 이 영화만큼은 하얀 눈이 내리는 계절이 되면 종종 보게 된다. 세월에 따라 여고생인 나도 머리 희끗한 중년이 되었다. 90년대의 영화 속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그 시절만의 아날로그 시절의 면면이 드러난다. 그렇기에 더욱 따뜻하고 정감 있다고 해야 할까? 신속함은 부족할지라도 감정을 담는 데 있어 편지만큼 힘이 있는 매체가 없지 않을까 싶다.

나는 그 아이와 영화를 다 보고 나와 스티커 사진을 찍고 손을 흔들며 역에서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좋아한다고." "이제 더는 밤새 길고 긴 편지를 쓰지 않아도 괜찮겠다고. 너의 꿈을 펼치며 살아가는 미래를 응원한다고." 하는 말을 끝내 하지 못했다. 역에 도착한 내가 들어가려고 가자 그 아이가 내 이름을 불러 손을 흔들며 인사했을 때, 나도 손에 스티커 사진을 쥔 채 힘껏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아이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은 수많은 열렬한 문장을 지우고 남은 심플한 문장만큼이나 담백했다. 그리고 함께 찍은 스티커 사진은 한동안 내 교복 안쪽 주머니에서 나와 함께했다.

"좋아한다고." 말 한마디 못 하는 나나 영화 속 운명의 여인을 만난 이츠키나 우리는 어쩐지 닮아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십 대의 사랑이야말로 찐 사랑이라고 하지 않는가? 서로 열렬히 닿을 수 없어서 더 애절한 영화 속 이츠키들을 보며 지난 여고 시절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방식은 어쩐지 수줍고 말 한마디 시원하게 나누지 못했지만, 그래서 더 오래 애잔하게 가슴속에 남아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 러브레터를 보는 순간, 해사하게 활짝 웃으며 힘껏 손을 흔드는 열여덟의 나와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절의 나와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이제는 큰 목소리로 힘껏 응원해 주고 싶어진다.

작가의 이전글선물 같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