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아 반가워
2023년도도 어느 덧 마무리가 되어 가는 지금.
누군가 나에게 "올해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이 언제인지 물어본다면 나는 주저 없이 내 강아지를 처음 만나게 된 순간이라고 답할 것이다.
나에게 지난 23년 08월 강아지가 찾아왔다.
내게 강아지가 오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약 8개월 정도 걸렸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강아지를 정말 키우고 싶어하던 아이였다. 사실 5살 때 할머니집 마당에서 키우는 백구에게 물린 후 강아지를 보면 무서워 하였으나 만지지 못했을 뿐 항상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과 같이 살 때는 강아지를 키우자고 말하지 못하였기에 강아지 입양은 항상 마음에만 품던 나의 버킷리스트 정도였다.
그렇게 나는 28살 결혼을 하고, 몇 년이 지나 삶이 안정되니 또 다시 강아지를 키우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는 동네는 강아지가 정말 많은 신도시였고, 어딜가든 강아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강아지를 키우기 위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유튜브, 블로그, 주변 지인 등 강아지를 키우는 것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고 내가 강아지를 데려와야겠다. 라는 확신이 드는 순간부터 유기견 입양어플을 보기 시작했다. 동시에 유기견 애견카페에 가서 실제 아이들을 만나보기도 했다. 순간순간 눈길이 가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그 때 마다 덜컥 겁이 나는 입양을 포기하기도 하고, 확신이 있었던 때는 입양 심사에서 떨어지기도 했다.(신혼부부라는 이유가 컸다.)
그렇게 몇달이 지나고 우연히 강아지를 무료분양(유기견, 가정견, 파양견) 하는 카페에서 우리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우리 아이(나중에 지어지는 이름, 보름)는 2개월, 3개월 비숑 강아지 입양 공고에 있던 3개월 강아지였다. 2개월 강아지는 한 눈에 보아도 너무 귀여운 아이였는데, 반대로 3개월 강아지는 가장 귀여워야 할 시기에 몸에 털이 부분적으로 없었고 그 부분이 좀 심해서 2개월 강아지에 비해 입양 문의가 없었다.
이 공고를 보고 나는 2개월 강아지 입양에 대해 문의하였으나, 3개월 강아지만 남아 있다는 답변을 달았고 나는 "3개월 강아지가 털 외에 건강 상태가 양호하다면 데려오고 싶다.' 라고 말했다. 이렇게 우리 보름이를 만나게 되었다.
입양 문의를 하고 일주일 뒤, 보름이 임보자는 털이 여전히 빠진 상태이지만 조금씩 나는 것 같으니 데려가도 좋다 라는 말을 남겼고, 우리 부부는 8월 1일 강아지를 데리러 갔다. 강아지를 데려간 날이 5개월이 지난 지금이지만 나는 또렷이 기억이 난다. 퇴근 후 남편과 임보자의 집 근처로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수건에 들러싸인 아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작고 얇았다. 잡으면 부러질 것처럼 약했다. 임보자에게 아이의 접종 정보 등 간단한 질문만 하고 서둘러 아이를 위해 준비한 강아지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차로 이동했다. 왜 그렇게 서둘러 이동했는지 모르겠다. 길 한복판에서 강아지를 수건에만 싸서 나온 임보자가 못미더웠는지, 아이를 빨리 집에 데려가고 싶었는지 모를일이다.
사실 나는 강아지를 데려가는 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임보자가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지 사기 분양도 많다는데"
"아이가 털도 이 만큼이나 없는데 건강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전적으로 나를 믿고 따라주는 남편은 준비가 되었을까? 내가 너무 밀어붙이는 것은 아닐까?" 등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 난 걱정과 고민으로 사실 전 날 잠도 자지 못했다.
그렇게 허겁지겁 아이를 데려와 차 안에서 남편과 아이의 이름에 대해 이야기하였을 때.
23년 8월 1일 슈퍼문이 뜬 날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는 차 안에서 큰 보름달을 보며 '보름' 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보름이는 낯선 차 그리고 가방 안에서 얌전하지 못하고 계속 움직이는 아이였고 나는 제대로 아이를 보지 못한터라 빨리 집에 가고 싶어졌다.
https://www.insight.co.kr/news/445720
그리고 집에 와 준비한 공간에 아이를 두었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안좋은 아이의 상태에 할말을 잃었다. 왠지 남편에게 눈치가 보이는 순간이었다. 등에 털이 없다고 했던 것보다 심각하게 큰 탈모가 있었고, 네개의 발 모두에 털이 없었다. 그리고 아이의 갈비뼈는 앙상했다. 난 아직도 보름이가 정확히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생년월일도 견종도 확신할 수 없다. 임보자가 구조했다고 했는데 구조한 동안 아이의 상태가 왜 이리 안좋을까? 하는 착잡한 생각에 나도 모르게 임보자님에게 이 아이의 건강이 괜찮은게 맞느냐 내가 모르는게 있다면 말해달라 라고 날선 문자를 보냈었다.(나중엔 모두 사과드리고, 받아주셨다)
23년 8월 1일 보름이가 우리집에 처음오고, 집을 인사시켜주고 바로 밥과 물을 주었다. 아직 아기이니 배변패드도 많이 깔아두었다. 초보 강아지 보호자가 된 우리 부부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하루였다.
가끔 나는 이 순간의 사진과 영상을 꺼내본다. 우리 보름이가 이렇게 작았구나 약했구나 그리고 털이 이렇게 없었구나! 라며 눈물짓는다. (원래 나는 눈물이 많고 청승이다) 우리 부부. 그리고 나는 보름이가 온 순간부터 생각하는 것, 먹는 것, 말하는 것까지 모든 것들이 달라졌다. 동시에 기록하고 싶어졌고 영원히 남기고 싶어졌다. 앞으로 보름이와의 삶이 얼마나 다이나믹할지는 기대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