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뒤안길 - 추억 소환 51
산사의 저녁은 호젓도 하여
발끝에 스치는 자연의 소리
잠시 머무는 추억의 숲 길 따라
푸른 솔 가지 사이 바람도 소슬하네
세월의 연줄 엮으며
덧없이 떨어지는 잎새
굽이 굽이 길섶 좌중한 고운 자태
세상 풍진 털어내는 범종소리
속내 가을 단풍의 파문으로 퍼져
깊고 푸른 수면(睡眠)으로 내려앉는다
회룡대 난간에 기대어
휘영청 달빛 가득 가슴에 넣으니
엷은 회 보랏빛 구름 휘장 젖혀
저 천상으로 걸어서도 가겠다
내성천 백사장 무릎 위에
무이촌 아홉 가구 짚 베개 돌아누워
네모 세모 논배미에 흐르는 순수의 땀방울
갈무리 마친 농부 짚 풀 훨훨 타 올리니
난
콩 사리 아궁이 불 지피다
머릿수건 풀어 훌훌 치맛자락 털며
유유히 날아가는 백로를 쳐다보는 순한 아낙네가 되었으니
내 귀한 손님과 달빛 아래 머물러
혼이 담긴 그림에 취하고
가을 단풍잎에 눈자위 붉게 물들고
열두 폭 연둣빛 물에 흠뻑 빠져
들리지 않는 먼 산울림이라도 좋겠다
보이지 않는 별빛 싸라기도 좋겠다
우리가 남긴 발자국 흔적 위에
시월의 보름달 그윽이 내려
아름다움 솔솔 뿌려놓아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