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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y joo Mar 18. 2024

부드럽고 반듯하게 타인을 넘나드는 일

<깨끗한 존경>, 이슬아 인터뷰집


기자도, 작가도 아닌 나는 우연히도 여러 번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프리랜서, 사진작가, 신부, 한 단체와 기업을 이끄는 대표를 만나며 그들에 대해 묻고 말이 가진 휘발성을 단단히 가로채어 글로 정돈한다. 그들의 앞에 앉으면 나는 철저히 듣는 사람이 된다. 그들이 말하는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 내 식의 티끌이 묻어나지 않도록, 그렇게 그들이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의 고유한 향기가 내 손에서 바래지 않도록 조심히 듣고 신중히 받아 적는다.


내가 이토록 철저히 듣는 사람이었던 적이 있었는가. 철저히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대화의 한 구성원이 되는 것과는 달랐다. 그 사람의 말 뒤로 내가 펼쳐나갈 수 있는 또 다른 이야기, 대화의 맛을 돋우는 완벽한 리액션을 고민하는 대신 내가 온 신경을 쏟아야 할 부분은 그들 이야기의 심장을 느끼는 것이다. 하나의 문장 아래에 놓인 헤아릴 수 없는 인생과 경험의 두께를 그 감촉과 심연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그렇게 그들의 마음과 동일한 상태로 다시 문장을 써 내려갈 수 있도록, 아주 무겁게 헤아려내는 과정이다.

이런 책임감과 묵직함으로 들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 그들이 꺼내놓는 이야기는 참으로 그들을 꺼내놓는 이야기가 된다.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는 더 성숙한 글쓰기를 향한 열망에서 비롯된다. 그녀가 의식적으로 시선을 돌리고 네 명의 타인을 마주한 채 듣는 사람이 되려 한 것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시선'을 다른 사람에게로 확장하기 위함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막막한 어려움 또한 이것일 테다. 나를 둘러싼 중심축을 타인에게로 기울이는 것. 그리하여 누구에게나 자유자재로 이입할 수 있는 유연한 상상력과 아량을 지니는 것.


<깨끗한 존경>에서 이슬아는 이를 완벽히 해내 보인다. 정혜윤, 김한민, 유진목, 김원영으로 옮겨가는 이야기 속에서 독자인 나의 세상은 라디오 pd, 비건인의 세상, 그리고 디스옥타비아와 장애인 무용이 펼쳐지는 낯선 무대로 자유롭게 옮기어 간다. 완벽에 가깝게 그들의 이야기게 몰입할 수 있는 건, 그들의 앞에 서서 상대의 말과 삶의 온도를 정확히 가늠하기 위해 자신을 발가 벗긴 그녀의 노력에서 비롯된다. 이슬아는 그녀의 '속을 비워둔 채 깨끗한 마음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전혀 아는 바가 없던 네 명과의 대화를 읽고 있자니 내가 얼마나 타인을 모르고 살았는지가 여실히 느껴졌다. 이 네 명의 인터뷰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다른 무수한 타인들을 나는 얼마나 모르고 살았는가. 나라는 개인의 노력이 환경에, 지구에, 세상에 불러 올 변화는 얼마나 까마득하겠나며 미뤄 둔 행동 너머로 애써 용기 내어 행동하는 김한민과 같은 사람을.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 부족한 건 너무나 당연한 일임을 솔직하게 직시하고 평범한 사랑에 덥석 기댄 채 그들의 빈자리를 상상하며 쓸쓸하고 진득하게 살아가는 유진목과 같은 이를. 나는 그들을 몰랐다. 그리고 내가 가진 시선이 얼마나 치우쳐진 것이었으며 그 시선으로 얼마나 많은 타인과 나를, 김원영과 같은 사람을 봐 왔을까 하는 무심함을 깨우친다. 타인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내 좁다란 시야가 부끄러워져 문득 다른 사람의 말과 행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조심스럽고 어려운 마음이 들 즈음, 정혜윤 피디는 이렇게 말한다.



"연민 아니에요. 이타심도 아니에요.

깨끗이 존경하는 거예요."



그래, 깨끗이 존경하는 것이었다.





요즘은 듣는 사람보다도 말하는 사람만이 즐비한 세상이다. 모두가 자기를 소개하고 펼쳐내느라 바쁘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들에 면면이 귀 기울이고 조용히 들어만 주는 서로는 아무래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각자의 이야기는 허공을 맴돌다가 시끄럽게 부딪힐 뿐이다.


하지만 타인의 마음을 넘나드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다. 깨끗하게 존경하는 마음 하나를 품기 위해서 우리는 그들을 더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을 도통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해 외면하고, 외면하다 못해 미워하는 일이 싫어서, 나는 더 많은 타인의 이야기를 담으려 한다. 내 마음은 비워둔 채, 오직 읽고 듣기만 하며.


'타인과 나 사이를 드나드는 일은 원래 열감을 나누는 일임을 알리듯 피부에 붉은색이 비친다. 열띠다라는 동사가 얼마나 멋진지를 새삼 곱씹는다.' - 이슬아


붉은 홍조를 띤 표지 속의 살구가 너무나 부드럽고 반듯하다. 타인을 알아가는 것도 그렇다고, 이 책은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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