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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Dec 12. 2022

아프도록 안겨 보고 싶다

불을 피울 줄 아는 사람

   - <명상중인 철학자> 렘브란트. 파리 루브르미술관

   - <탕자의 귀향> 렘브란트.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따쥬미술관 


암흑덩이 너머의 황혼

온기를 모으는 둥근 창에 앉아본다

고요한 빛의 회오리 

반달창틀을 만지고 벽장문도 열어 본다 

펼친 책들로 이어진 계단에서 길을 잃는다

철학자의 자리에 앉기는 조심스럽다 

그는 입이 없다

   

벽난로의 불을 낳는 진주홍 석양 

불을 피우는 선지자, 불을 피울 줄 아는 철학자

빛을 따라갔으나 그림자에 갇힌다

화폭 안을 헤매는 나는 그들의 알파벳이 되고 

훔친 불꽃이 되어 계단을 타오른다      

 

볼수록 깊어지는 공간에는

어둠과 빛, 존재와 질문의 미궁 

팽팽하되 고요한 대결이 있다 

숨기는 답과 동시에 열리는 물음들 

놀랍도록 따뜻하고 몹시도 아름답다

생의 실타래들을 펼치고 감으며 

나도 가만히 철학자가 된다    

  

맘껏 제 몫을 누리되 문득 뒤돌아보는 자들

감사하며 타자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사람들 

제 삶을 그리는 화가로서 우리는 철학자다 

어둠과 맞닿은 절정의 황금빛에 기대어

두 손 모은 철학자는 이제

탕자의 귀향을 기다리는 아버지가 된다   

   

늙은 아비는 버선발로 달려 나와 

돌아온 아들을 부여안는다 

아버지의 온기는 벌써 머리털이 빠진 

자식의 발꿈치로 폭포처럼 쏟아진다 

아들의 어깨를 확고히 붙든 손은 

아버지이자 어머니의 손이며 신에게 속한다 

     

나도 엄마에게 아버지에게 가고 싶다 

아프도록 안겨보고 싶다 

미진한 용서와 아득한 사랑을 

아직 풀어낼 길이 없지만 

용서.를 혀에 올리고 싶다      


오늘은 <도살된 소>도 그냥 지나지 않는다 

한때 피가 돌고 고통받는 살이었던 고깃덩이 

렘브란트는 소를 그렸지만 인간에 대해 말한다 

걸린 자와 걸어 놓은 자 모두를 용서한다 

몸이라는 유한성을 입은 인간에 대한 연민 

잔혹하고 슬픈 몸의 말들이 우글거린다 

용서.도 그 안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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