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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Dec 13. 2022

사용하기 쉽지 않은 선물, 용서

나를 향해 전적으로 기울던 손 

   - <성녀 베로니카> 로렌초 코스타. 파리 루브르미술관     


갑자기 떠오르는 소매치기 아이의 얼굴

오른쪽 옆구리 아래로 빠져나가던

당기는 수건처럼 주름져 흐르던 그것

육신의 살을 가진 형체도 입체도 아닌

찍힌 얼굴, 움직이며 흐르는 평면

‘베로니카의 수건’을 봐야겠다!*     

 

백색으로 조여오던 하늘, 추락의 아뜩함

그러나 비난조차 망설이게 하던 작은 아이 

그 얼굴이 자꾸 예수의 얼굴인 양 뜨면서 

베로니카의 수건 그림이 생각나는 거였다 

며칠간 달라붙어 불쑥거리던 그 형상 

윗니를 내보이는 간교한 웃음 찍힌 낯짝

카라바조 그림의 아이보다 훨씬 악마적인!     


그러나 성녀의 수건에 있는 흔적은 

내게 남은 인상과 조금도 같지 않다

흔적에 무슨 실체가 있을까 

고통조차 읽히지 않는다  

구덩이처럼 뚫리는 허망함으로 잦아들던 

아이의 얼굴은 다른 얼굴 하나를 급히 불러낸다   

   

튀김을 먹으며 선배랑 둘이 붐비는 거리를 걷던 때였다.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의 손을 강하게 밀어낸 선배는, 남은 튀김조각을 입에 넣자마자 곧 달려가 전단지를 달라고 하더니 손가락을 닦는다. 순간 백안시하는 그 사람의 얼굴과 겹치던 선배의 붉어진 얼굴. 그것은 들킨 죄의 표정이며 진정한 부끄러움이었다.  

   

이어서 떠오른 하나는 내 얼굴이다. 둘째 딸래미의 낯가림이 심할 때, 엄마만 찾으며 내 손을 놓지 않던 세 살 무렵 어느 날 가게에서의 일이다. ‘두루야, 엄마 이것 좀 사고 나서 우리 손잡자. 조금만 기다려’, 하고 어렵게 손을 놓자마자 곧 내 손을 찾아 붙잡는 아이의 작은 손을 모질게 뿌리치고 말았다. 곧 아이의 손을 잡았지만 이미 나를 향해 전적으로 기울던 그 손, 존재로서의 손은 아니었다.     

 

그 찰나 죄책감 덩어리였던 내 얼굴은

사라지지 않는 표상이 되었을 거다

거부와 고립감이 아이에게 새겨졌을까 두려웠다

그 기억이 되살아날 때마다 미안하고 아팠다 

아이에게서 어두운 빛 한 줄기 보일 때면 

기억은 되돌아와서 나를 추궁했다    

  

그건 마침내 나와 내 엄마에게 자리를 물리고 사라졌다 

내가 놓았던 두루의 손은 엄마가 놓았던 내 손이었으며 

거부당한 것은 두루가 아니라 나였던 것 

내 상처가 열릴 때마다 엄마를 탓할 수 없는 

유아-나, 내 안의 어린아이는 

두루와의 기억을 불러냄으로써 나를 탓했음을      


나는 아직 엄마를 모른다. 사랑받지 못했으므로 사랑할 줄 몰랐다. 엄마를 사랑하지 못했으므로 엄마를 용서할 수도 없다. 무엇을 어떻게 용서해야 하는지 모른다. 엄마가 왜 나를 사랑하지 않았겠는가. 자신의 무한 생에 갇혔을지라도 엄마의 방식으로 사랑했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몸에 새겨져야 하는 것, 알맞은 때 말로 종종 드러났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그림을 찾아다니는 행위가 사랑과 용서에 대해 배우는 과정이라는 몸의 말을 들을 뿐. ‘용서는 무의식을 갱신’하여 ‘역사와 파롤(parole)을 수정’하게 한다고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말한다. 아름다움의 파괴력만이 a를 흔들어 나로 살게 하고 나의 말을 소급적으로 다시 기록할 힘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을 중단시키고 새로운 출발을 가능하게 하는 그 힘이 바로 용서라는 것, 그것은 사용하기 쉽지 않은 선물임을 나는 안다. 그 선물은 내가 만들어 나에게 주어야 하는, 그때에만 비로소 받을 수 있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지고 가던 예수의 땀을 닦아준 베로니카의 수건에 예수의 얼굴이 찍혔다는 전설   


  

<성녀 베로니카> 로렌초 코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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