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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Dec 14. 2022

신들의 정원

기쁨을 달고 일하러 갈 때

 - <알렉산더 대왕의 승리><신비스런 꽃><쥬피터와 세멜레> 

                                                      귀스타브 모로. 파리 귀스타브 모로미술관     


우리 동네 오가는 길에 봐두었던 모로 미술관

주택들 사이로 낯익은 현관문을 내집처럼 쑥 들어선다, 아

모로의 그림은 한 점 시작부터 변함없이 유혹적이다 

지치도록 먹었어도 신선하며 새로울 뿐    

 

거침없는 붓질에도 세심하고 화려하다

남긴 듯한 물감 자국, 철필로 긁은 듯 가는 선들

보석가루로 신화적 비가시성을 조각하는 그림들 

수채화의 투명함도 자주 보이는가 하면 

엷은 부조 같은 요철감은 눈으로 촉각하게 한다 

전통 회화의 엄숙함에 저항하는  

입체적 평면성에 거듭 놀란다      


꿈처럼 끊기듯 이어지는 미세한 선들

새긴 듯 힘있게 달리는 섬세한 선들은

유화의 붓으로 가능한 거리감을 밀어낸다

평면에 가까이 손이 닿아야 가능한 만화적인 선

손과 눈의 극진한 협업, 시각과 촉각의 공감각 

레이스처럼 펼쳐지는 몽환적 세계

신비감에 장식성을 더한 인물들에게 빠진다 

지금 여기 그림 속에 그들과 함께      


돌돌 달팽이 같은 아르누보 계단에서 

위로 아래로 호령하듯 휘둘러보니 

신의 정원을 물려받은 듯 거만해진다  

그림들을 직접 배치하고 바꾸지 말라 했다는 모로 

자신이 낳은 것들에 만족하는 그가 되어 본다

미지의 원석이 가득한 동굴을 울리는 박동소리

몰입의 평정은 꿈에서 현실로 가는 문을 연다

마침내 이승이 강렬히 부르고 나는 크게 대답한다  

    

투사와 욕망이 흘러넘치는 그림의 숲에서 

완전한 해방감으로 밀어낸다, 빠져나온다

영원히 잃어버린 세계의 잔해들을 불러낼수록 

팽팽히 인식되는 것은 지금, 숨 쉬는 나다

힘차고 가볍게 내 시간을 올라타게 한다 


이제 기쁨을 달고 일하러 갈 때다 

내가 가진 것들을 생각하고 감사할 때다

나를 둘러싼 아름다운 것들이 일제히 입을 열어 말한다 

정밀하게 느끼며 싸우고 사랑하며 바꾸라고

진정 아름다운 것들은 그렇게 말한다 

그게 진짜 일이며 밥이라고 

<신비스런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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