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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Dec 17. 2022

무의식이 나다

상상력, 아무리 비싸도 싸다

    - <타라스콩으로 가는 화가빈센트 반 고흐. 분실작품

    - <반 고흐의 초상화를 위한 습작프란시스 베이컨.      


파리 북역, 시외버스 매표소를 어렵게 찾은 반가움에 얼른 빈 창구로 다가가 인사부터 했다. “봉 쥬흐, 무슈~” 그런데 “Don't use English.”라고 써놓은 종이가 코앞에 세워져 있다! 이미 ‘익스큐’까지 나온 말은 신기하게도 ‘익스큐제 뫄~’로 변해서 이어졌으니 여기까진 좋았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를 어쩌나... 그를 쳐다보면서 우물우물 혀를 움직이는 나, 내 쪽으로 몸을 내밀며 귀를 기울이는 그. “오베흐 쉬흑 와즈Auvers sur oise!” 그는 알아들었다! 여기까지 예의상 불어 성공. 다음은 활짝 웃으면서 영어로, 

“프랑스어를 못해서 정말 미안해요.” 

그는 굳은 표정을 풀고 미안함에 가까운 미소로 아주 친절했다. 흥, 영어 잘하면서! 갖은 여행객들의 제멋대로 영어 발음에 질린 거라고 이해하고 싶었다. 메흐시 보끄!     


오베르역에 내려 두리번, 잊었던 고향같다

오래 걸렸구나, 작은 공원에서 마주친  

마르고 긴 남자는 모자를 썼다 

이젤과 켄버스를 묶어 등에 지고 

오른쪽으로 물감통, 손에는 붓 

왼팔에 스케치북을 끼었다 

느리게 걷는 사람

타라스콩으로 가는 화가      


빈센트, 물감통은 내가 들게요 

길에 부서져 깔린 태양이 찬란하나 

따갑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삶의 열기

고통과 환희의 합창이 들린다 

또렷한 한낮의 그림자는 믿음찬 지지자 

평생 동지, 또 하나의 빈센트 

그는 신과 함께 걷는다      


고호의 초상화를 위한 베이컨의 습작들은

타라스콩으로 가는 화가의 무의식이자 

그림의 무의식을 단번에 보여준다 

발 아래 끈적이는 길바닥 

기어올라 몸을 덮치는 그림자 

찢겨 갈라지는 면과 색들은 

희망을 취소한다 그래도 걷는다

고호에게는 정말 ‘없었던’ 무의식을 

자신에게서 꺼내 보여주는 베이컨 

나는 부제를 붙인다 ‘이것이 무의식이다’    

  

정신분석학자들조차 그것에 대해 더듬거릴 수밖에 없을 때 

베이컨은 이미지로 잡아채고 증명한다 

이거다, 두렵지 않다. 두렵지... 두려우나

주장하도록 자신을 밀어붙이는 힘을 견딘다 

제 심장의 한복판을 스스로 뚫고 

시커멓게 솟는 도약이자 비상飛翔

폭포를 거스르는 자유의 고통에 몸을 적셔본 자  

베이컨은 무의식에 대한 격렬한 연설자다     


프로이트가 발견을 넘어 발명함으로써 ‘무의식’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그것. 그것은 나에 대해 쉬지 않고 발언하지만 나는 잘 모르거나 아니라고 잡아떼는 내 것이다. 그러니 무의식이 나다. 무의식이 말한다고 해야 옳다. 타자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남의 말로는 불가능, 내 언어로 만나야 한다. 내 안의 우주를 탐험하지 않고 밖을 나가면 수시로 접질리되 같은 자리를 접질리는 까닭이다. 인간은 도표화·수치화·프로그램화 할 수 없는 무늬들을 가진 존재이며 존재는 절대 위엄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 탐사에 필요한 것은 오직 말이다. 그리고 약간의 상상력. 아무리 비싸도 저렴하다.

     

베이컨을 통해 자신의 시커먼 구멍을 눈치채는 사람들은 땡잡은 거다. 그것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듣고자 한다면, 그래서 들을 수 있다면 희망은 매우 능동적일 수 있다. 누군가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베이컨적 표상이 필요하다. 치유는 스스로 하는 것, 자기치유가 시작될 때 삶이 덜 고통스럽고 더 즐겁다. ‘말로 이해되지 못한 것은 되돌아온다’는 프로이트의 말씀이다. 충분히 말해지지 않고는 우연과 반복을 통한 회귀가 있을 뿐. 그리고 그것은 종종 삶을 범람시킨다. 그 범람은 극도의 메마름일 수도 있으며 결코 자신에서 끝나지 않는다. 보이는가 하면 꼬리를 감추는 a를 찾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오베르성당 주변을 한 번 더 걷고 역으로 간다. 문만 열려 있을 뿐 직원이 없다. 시간표를 보니 4시 10분 이후 파리행 기차도 없다. 번쩍! 메리 쉬르 우아즈까지 걸으면 되겠구나. 28분 예상. 안녕안녕, 도비니의 우아즈강 그림들을 떠올리며, 몇 번 오베르를 뒤돌아보며 걷는다. 급박한 산책, 내 다리가 짧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목적지 도착이라고 구글은 읊어대는데 철로만 한 줄 멀리 보일 뿐 역을 찾을 수가 없다. 뱅뱅 돈다. 약간의 공터와 공사중인 엉성한 구조물을 발견하고 달려가니 작은 통로가 나타난다. 전력질주하여 승강장에 오르자마자 들어오는 기차. 한 젊은이를 발견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빠히~~?” "OK, 빠히!” 내 달리기가 빠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몹시도 멋진 날, 발뒤꿈치로 a의 꼬리를 확실히 밟은 날. 그 생생한 감각적 입체감, 야호~~ 펄쩍 뛰다가 양손에 하나씩 쥔 2리터짜리 물병 두 개가 동시에 떨어져 굴렀어도 랄랄라~ 고흐의 집에 가서 베이컨도 만난 날, 근사하기 짝이 없는 날!        



   

<반 고흐의 초상화를 위한 습작> 프란시스 베이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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