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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Dec 18. 2022

세상에서 가장 큰 방

To Vincent 1 -보이지 않는 철벽을 통과한 

              고흐의 방오베르 쉬르 우아즈  


라부여인숙 3층 계단 모서리   

고흐의 방은 너무 좁다

천정에 뚫린 창으로 

무수한 씨앗들을 퍼뜨린 방

온 세상을 담아낸 방이

너무... 

작다  


공백이 불러일으키는 작은 폭풍에 휩싸여, 꿀꺽

언어를 삼킨 회오리 끝에 

눈물이 줄줄 대신 말한다 

무수한 사람들의 심장을 뛰게 한 방

나를 다시 시작하는 우리의 장소

폐허이자 성지

내 안에 있는 우리들의 방

세상에서 가장 큰 방     


빈센트! 온 세상이 당신의 방이고 집입니다 

당신은 모두 가지고 영원히 가진걸요

지속되는 시공간이 모두 당신 것입니다

슬퍼할 일은 없어요 

나의 친구 빈센트      


소식 하나 전할게요

당신의 오베르 그림 중에 하나를 구해서 

당신의 방에 두려는 움직임이 있나 봐요 

정말 사람들의 생각은 놀랍죠

당신도 기쁜가요

두 달 동안 당신의 숨결을 몰아 빚은

아름다움이 사람들을 움직인 거예요 

미는 선보다 멀리 가니까요     


당신에게 기대어 아름다움을 길어 올립니다

당신을 통해 나를 만나고 서로를 발견합니다  

우리에게는 아름다움이 필요하니까요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기억하기 위해.   

  

자신의 뒤에 오는 자들을 건드리는 고흐 

‘미래를 유산으로 물려받’은 사람

자신의 의지로 삽질을 한 예술노동자

보이지 않는 철벽을 깨고 통과한 사람 

자기 혼자서 배우고 

자신에게 사는 법을 가르친 자*     


고흐의 방에 

고흐의 그림 하나

세상에서 가장 작은 미술관이 되겠구나 

고흐 하나가 모든 고흐가 되는구나    

  


● 그림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잘 그릴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가 느끼는 것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사이에 서 있는 듯한, 보이지 않는 철벽을 통과하는 일이야. 아무리 두드려도 부서지지 않는 그 벽을 우리는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서서히 인내심을 가지고 삽질을 해서 그 벽을 파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 ~ 예술만이 아니라 다른 일도 마찬가지야. 위대한 일은 우연이 아니라 분명한 의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야. 1882년 10월 22일에 쓴 고흐의 편지. (박홍규 옮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 아트북스. 266-267)    

 

                                                                                                                                             

*우리가 오직 자기 자신으로부터/자기 혼자서 사는 법을 배우는 것 말고 다른 어떤 것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것은 살아있는 것으로 가정되어 있는 생명체에게는 불가능하면서도 필수적인 기묘한 참여다. “사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이것은 죽음과 마주하는 한에서만 의미를 지니고 정의로울 수 있다. (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 진태원역. 그린비. 10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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