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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Dec 19. 2022

그 미친 노랑으로 내게 왔던

치밀한 글자로 그린 그림

   - 고호와 테오의 묘, 오베르 쉬르 우아즈 

   - <까마귀가 나는 밀밭> 빈센트 반 고호. 암스테르담 반고호미술관       

   

6월 태양이 뜨겁다 

고호가 누운 곳은 들판을 향해 열린 꽃밭 

담쟁이는 푸르고 접시꽃은 자란다

고호와 테오가 나란히 있다 

단단한 벽 아래라서 좋다

기댈 데가 있어 참 좋겠다...      


그냥 눈물

불꽃처럼 뜨거운 눈물이 말한다

말이 몸을 뚫어야, 숨 쉴 틈을 내야 하는데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하니 옆구리가 쪼개진다  


불티처럼 날아오르던 해바라기 꽃잎  

그 미친 노랑으로 내게 쑥 들어왔던 화가가 

자신의 언어를 가진 사람인 줄 몰랐다 

그것이 깊고 넓으며 정연할 줄은 더욱 알지 못했다 

그래서 더 기쁘고 더 슬프다 

광기와 천재로 낳은 그림이 아니어서 슬프다

꾸준한 독서와 사색을 담은 그의 편지는 

치밀한 글자로 그린 그림이다 

색채론이고 회화론이며 진행형의 자서전이다

올올이 자아낸 자신의 숨길을 따라 걸은 사람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 눈앞에 펼쳐진다 

어느 까마귀도 이렇게 못생길 수는 없다 

똥덩어리거나 붓찌꺼기 같은 까마귀는 싫어

쩍 갈라져 지진을 일으킬 땅덩어리 속으로 

저 시커먼 하늘 바다로 뛰어들 수 없다 

속도감에 실려 하늘로 뻗어오르는 길

폭풍이나 천둥 번개쯤은 괜찮아 

아니야, 또 한 번의 대홍수일지 몰라 

나는 어느 쪽으로 가야 하나      


꿈틀거리는 형상과 움직임의 매혹으로 

그만의 화법畫法이자 화법話法으로 

시시때때 변하는 강도와 열기로

휘저으며 의미를 일으키던  

잊는가 하면 어느새 나를 접촉하던 

고호 색채 물결     


오베르의 밀밭과 하늘 사이를 울면서 걷는다 

사람 하나가 사람 하나를 

이토록 요동치게 할 수 있는가 

왜 다른 화가들처럼 그만 먹고 싶지 않을까 

왜 그는 다정한 위로로 끝날 수 없는가

평생을 두고 이렇게나 흔들어댈 수 있는걸까     


걷는 것은 일이다. 내 몸으로 나를 끊으며 나를 움직이고 내 뿌리를 흔들어 나를 숨 쉬게 하는 일이다. 내 말이 불가능한 남의 나라를 혼자 걷는 일은 주체로서 자리를 조금 바꾸려는 자의 애씀이다. 여행이라는 방식의 젖 먹기. 의존에서 분리로. 가끔 잘 징징댈 수 있기 위한 자발적 선택과정의 일부. 걷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세상 어디든 갈 수 있다. 고호처럼 별까지도.* 눈물을 잘 닦고 나도 걷는다.      


                                                                                                                                       

*많은 화가들은-감히 그들에 대해 말한다면-죽어 땅에 묻혀도, 작품을 통해 다음 세대, 그 뒤 여러 세대에 말을 거는 거야. 그게 전부인가, 아니면 올 것이 있는가. 아마도 화가의 생애에 죽음이란 최악이 아니라고 생각해. 나로서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언제나 별은 지도 위의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이 나를 꿈꾸게 하듯이 나를 꿈꾸게 한다. 왜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게 가듯이 창공에서 빛나는 저 별에게는 갈 수 없는가,라고 나 스스로 물어보지. 기차를 타고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듯이 우리는 별에 가기 위해 죽음을 선택해야 할지도 몰라. 살아있는 동안 별의 세계에 가지 못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어서 기차를 타지 못한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는 진실이지. 그래서 기선이나 합승마차나 기차가 지상의 교통수단이듯 콜레라나 결석이나 결핵이나 암이 천상의 교통수단일지 모르겠구나. 늙어서 조용히 죽는 것은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고. 1888년 7월 9일경의 편지. (박홍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 아트북스)




<까마귀가 나는 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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