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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Dec 24. 2022

생의 우울을 뚫고

미래에 오는 입체는 나의 것

   - <조각가파블로 피카소. 파리 피카소미술관

   - <셀레스틴> 파블로 피카소. 파리 피카소미술관


시차적 관점을 형태적 사유로 불러온 피카소  

인간의 눈이 두 개임을 알고 하나를 이동시킨 사람

이질적인 자리마다 눈은 눈들을 낳으며  

살살 낯선 것들과 자꾸자꾸 친해진다  

경계를 두고 겹치되 해체를 통해 재편된 면들 

제한과 반복의 안정감, 계산된 무게의 규칙성 

불편감과 기이함은 놀라움과 재미로 바뀐다     

 

사물의 이면과 층들의 겹침에 대한 명확한 증거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님에 대한 시각적 증명

또다시 더 다른 배치에 대한 기대감 속에

그 면과 선들은 지금도 이동 중,이라는 생각이 들 때면 

정말 움직이는 평면의 입체성이 확 끼얹히는 듯 

아름다움은 고정된 무엇이 아님을 화들짝 깨닫는다   

전환적 사유와 생산에 참가하도록 흔드는 공감!   


그러므로 결국 그 입체감은 감상자의 몫이다 

해체한 입체를 반복한 입체로서 그것은 

보는 자가 발견하고 느껴야 하는 것 

미래에 오는 것이며 나의 것이다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오직 

칼질로 잘라 붙인 종잇장, 혼돈이나 무질서 

엄중한 질문, 피카소들은 오만하게 묻는다  

당신은 미래에 올 그것에 참여하고 싶은가 


뿌듯함으로 어깨를 쫙 펴고 미술관을 휘둘러 본다

아름다운 철제 장식을 스치며 한 발 한 발 계단을 올라 

셀레스틴과 반겨 눈을 맞추다가 깜짝 

휙 돌아앉은 왼쪽 눈은 지나온 것들을 본다

놓친 사람, 놓친 기회들, 그렇다면 소설이란

볼 수 없는 눈동자에 담긴 것들에 대한 진술일 것이다

피카소의 소설

새로이 재구성되는 입체 이야기      

생의 통증을 내보인 피카소를 내가 참 좋아했구나               

그의 초기 그림들, 아프게 삶을 묻는 그림이 좋았다 

푸르딩딩한 멍과 울혈, 얼음결처럼 투명히 저리게 

겹친 사연을 내보이는 그림들이 좋다      


청색시대를 통해 생의 우울을 뚫고 나갔기에 

그의 놀라운 해체와 합치기가 가능했으리라

왜곡 같은 진실의 이면이자 펼친 평면인 동시에 

변화와 변형이 벌어지는 장소, 과감히 자르고 

멋대로 재구성하는 눈을 세상에 나눠줄 수 있었다 

그와 브라크 은 엄청난 눈동자 하나을 선물한 셈이다 

혹은 수십 개의 눈을      


미술관을 나오는 길, 예기치 않게 

<한국에서의 학살>을 마주하고 뜨끔 

미군의 신천리 양민 학살, 노근리 학살 

상상을 뛰어넘는 6.25의 전사자 수를 상기하면서 

나의 파편을 보고 내 나라 이름을 불렀다 

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게르니카>를 보러 스페인을 가야겠다 

고야의 ‘검은 그림’과 <모래 속에 묻히는 개>도 

이제 정면으로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내가 잘 본 건 뭐였을까      


특별하긴 했지만 보고 싶지는 않았던 피카소베이컨

변형은 고통스럽고 모호함은 오직 두려웠다

지금 나는 유쾌하다 나는 조금 경쾌해졌다

새로운 배치의 유혹에 기꺼이 응한다

수많은 스승들, 남의 덕에 산다     


일찍이 피카소와 입체파들이 보여준 수십 개의 눈으로 누군가 세상을 시작할 때 누군가는 아직도 눈이 둘이거나, 혹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면? 눈을 스스로 버린 거라면. 혹은 빼앗긴 거라면? 궁금하지 않은가. 누구는 재밌어하는 것이 내겐 끔찍하기만 한 까닭이 뭘까. 왜 우리는 어떤 대상이나 부분 대상에게 특히 끌리거나 싫고 짜증이 날까.

보고 싶지 않으며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내 모습, 외부에서 들어와 나를 만든 것들. 이미 친숙한 나의 일부가 되었으나 결코 반갑지 않은 것들과 대면하기, 모른 척하고 싶은 것들을 만나기는 예술을 통할 때 매우 효과적이다. 일상에서보다 방어가 느슨해서일까, a는 빨리 틈을 만들지만 억압과 부인의 도착은 늦다. 따라서 놀라움은 빠르고 성찰은 깊지만 충격과 불쾌는 늦어서 깨달음에 닿기 쉽다,고 말할 수 있다. 


a를 인정하고 자주 만날수록 그것의 영향을 덜 받는다. 함께 즐기며 나와 가장 가까운 나로 살 수 있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없으면 아무 문제나 병리가 없는 내가 되는 게 아니라 더이상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죽을 때까지 가는 영원하며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내 친구! 충고나 조언이라는 말이 우리 삶에서, 특히 친구나 스승으로부터 멀어지는 때일수록 그러하다. 진정한 친구들과 좋은 이웃이 하던 모든 것을 이제 갖가지 보험이 하니까 말이다. 보험은 오직 미소를 지을 뿐. 그러니 어쩔 수 없는 틈을 가진 채로 계속 촘촘·정밀해지는 법과 함께 흥미진진한 것은 역시 생이다. 

      

다시 엄중한 질문, 피카소들은 당차게 묻는다  

당신은 미래에 올 그것에 참여하고 싶은가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인가          


<셀레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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