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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Dec 27. 2022

그 감각은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

자기 생의 메아리

   - 몽마르뜨르미술관

   - <숙취> 뚤루즈 로뜨렉. 오르세미술관   

   - <더블베이스를 연주하는 여인> 수잔 발라동. 제네바 쁘띠팔레미술관 

   - <아담과 이브> 수잔 발라동. 파리 퐁피두센터    

      

좁은 길가에 작은 문 열어놓고 기다리는 미술관

들어서자 곧 훤히 드러나는 정원을 마주하며 설렌다

르누아르, 베르나르, 뒤피가 그림을 그리던 곳

수잔 발라동과 위트릴로가 살았던 집 

고단하고도 힘찬 열정으로 생을 태운 사람들

복원해 놓은 수잔의 아틀리에는 남은 온기가 없다

피사로, 모네, 세잔과 고호도 자주 들렀을 텐데 


르누아르의 그림에서 수잔은 그네를 타거나 춤을 춘다 

우산을 쓰거나 머리를 땋고 있는 통통한 소녀 

모딜리아니의 수잔은 역시 기름하다 

샤반의 그림에서는 여신으로 나타나고 

드가의 파스텔화에서는 자주 목욕한다 

로뜨렉의 두통과 몽롱함으로 구겨진 <숙취>

알콜은 휘발되지 않았다, 몸으로 전하는 번민 

퍼지고 되돌아오는 역력한 자기 생의 메아리

모델은 수잔이지만 그려진 것은 그린 자들의 모습

옹골찬 삶의 한 떼,를 그려 본다      


자신을 거침없이 연주하는 수잔의 더블베이스 

두려움을 모르는 발라동의 이브와 

제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아담,의 겁먹은 표정은 

남녀관계의 실질적 요약본 같아 웃음이 난다

고양이조차 제 무늬를 주장하는 수잔의 그림에는

선이며 색마다 망설이지 않는 붓의 길이 있다 

또렷한 의지가 담긴 자화상이 좋아진다, 내가 바뀌고 있다   

  

르누아르의 그네가 매달린 정원을 걷고 

유록색 창틀의 카페에서 차를 마신다 

모딜리아니와 마리 로랑생의 몽마르뜨르

피카소, 브라크 많은 시인, 가수, 작가 들의 장소

치열하고 팽팽한 열정과 광기에 휘말리고 싶다 

벨 에포크! 놀랍고 위대한 시대, 진정 느끼는 인간들

천재의 발광에 눈 찔리고 싶다~

꿈이자 증상으로서 현실을 넘나드는 a들의 발광

벅참, 심리적 소란을 이기지 못하고 일어난다 

출구를 찾다가 계단을 따라 이끌리듯 올라간다      


아하, 여기는 필름들의 공간 

몽마르뜨르를 배경으로 한 옛 영화 자료들

돌아가는 중인 필름, 탐사의 동굴이 이어진다

어둠 속에 은성한 죽은 자들의 축제 

낯익은 포스터와 얼굴들, 출구 없는 박물관 

그리움으로 족한 유령들에게 발목 잡힌다

클났다!

의미의 살이 떨어져 나간 상징들이 움직인다 

내가 담겨있는 몸뚱이도 비틀, 나뉘며 이동한다 

꿀렁대는 자리바꿈, 앗 내 머리는... 어디...

이런, 이게 베이컨의 그림이 아니면 뭐야

아니면 피카소, 그리고 호크니? 하하 재밌다 


영화와 그림은 오래 나를 키운 먹이였다

시각이고 청각이며 모든 감각이었던 나 

엄마의 돌봄을 기다리는 아픈 아이에게는  

목소리도 색채며 냄새였고 후각도 시각이었다 

감각하기는 곧 살아있음의 증언

그러나 이제 

그 감각은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살아본 모든 경험을 활용하여

새로 얻는 감각이어야 하며

이제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나가자!     


예술가들의 길을 누빈다, 줄을 긋는다

그림도 인문학이다 색은 그림의 언어 

그림과 글 모두 그린다, 먹은 감동을 그린다

두고 떠나온 모든 것들을 그려낸다 

힘차게 움직이는 그것들은 지금 

내 안의 폐허를 정리하는 중 

빈터를 다지는 공사가 벌어지는 중

낭랑의 라흐마니노프가 흐르고 

요요마의 바흐 무반주첼로에 젖는다 

갈라진 영혼을 어루만지며 스미는 음률    

  

맘껏 흔들릴 테다. 밟아 부술 테다

잘 뽑히기 위해서는 뿌리를 더 쭉 뻗어야 한다 

새로운 뿌리를 내리고 넓힐 것이다 

다른 장소를 만들 터이다 

용감한 밤 

변화와 새로운 질서는 내꺼다!     


<숙취> 뚤루즈 로뜨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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