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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Dec 28. 2022

사랑해, 앙코르는 계속되지만

반복해야 한다

       - 사랑해벽, 몽마르뜨르 산책. 파리       


물랭루주 근처, 꽃향기 오지게 향그럽다 

어디서 시작되는 걸까, 강아지처럼 킁킁 

무슨 꽃 무슨 나무일까 두리번, 이름이 뭘까 

골목을 돌아 떨리는 발걸음 고흐의 집, 앞이다 

현관 위의 명판이 전한다. 86년부터 88년까지 

시퍼렇게 닫힌 문, 한숨을 쉬며 무심히 지난다

고흐,라고 쓰고 고호로 읽는 이름 

나와 우리의 빈센트 반 고흐 또는 뱅상뱅고ㅎ

난 괜찮다, 그 이름에 이제 암시랑토 않다      

  

앗, 달리다의 흉상과 맞닥뜨린다, 반짝이는 가슴  

알랭 들롱과 ‘Paroles Paroles말’라는 깐소네를 불렀던 그녀

진실로부터 멀어지는 말을 쫓듯 반복되던 빠롤레  

‘말을 해 말을 해’로 들리기도 했다, 사랑한다고 말을 해! 

살바도르 달리 미술관을 지나서 가파른 계단 아래 

아담한 공원, 시끌벅적 사람들이 모여있다  

파란 타일벽 위에 하얗고 짧은 문장들이 가득하다 

사랑한다,는 뜻을 가진 여러 나라의 말이란다

그래서 ‘사랑해벽’이라 부른단다, 후후 재밌네

벽면 위쪽에는 푸른 드레스를 입은 달리다가 그려져 있다      


어쩌나, 아무리 간절히 노래를 불렀어도 

사랑의 벽이자 언어의 벽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면 

거듭 반복되는 사랑의 요구는 오직 메아리로 울린다 

라깡의 말대로 앙코르는 계속되나 벽을 넘을 수 없다 

사랑과 벽 사이에 ‘욕망의 대상 원인 a’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랑해벽’은 사랑-a-벽이고 

사랑-벽이다 a는 해다 

그것이 있어야 살지만 가까이 가면 죽는 태양 

a는 흑점이다, ‘장미로 보이는 해골’이다

찾을 수 없는 것이며 보지 못하는 것. 

유치해 보이던 장소에서 진리를 확인한다, 앙코르~! 

아니라면 라깡은 뭐에 써먹겠는가, 반복해야 한다

사랑, 사랑해, 사랑한다 사랑합니다

두어 군데 한글이 눈에 띈다, 사랑해요~     

  

해는 점점 깊이 숨고 

길 위에 발, 발들은 움직인다 

유흥과 환락이 포함되는 예술과 사랑의 몽마르뜨르 

낭만을 경유하는 방황과 혼돈의 장소에서

장미꽃잎 모양으로 떠주는 아이스크림을 산다

일상을 만들며 자꾸 내가 되어간다  

입술로 소중히 꽃잎을 뗀다 

꽃잎이 간지른다, 사랑한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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