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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Jan 08. 2023

너와 함께만 가능한 일

몸서리치는 땡김, 핏줄

       - <전기의 요정> 라울 뒤피. 파리 시립근대미술관


세상의 또 다른 빛, 전기의 발명을 축하하는 그림

특이한 태양 새로운 빛들, 전기의 탄생에 바치는 고마움 

반타원형의 기다란 방 전체가 빛을 노래하는 62미터

의뢰에 따라 제작되는 기념물로서 예술,에 무심했는데 

거의 항상 인색한 방관자였는데 이것 참! 대단하다     

 

빛이 있어 가능한 세상 모든 색들의 합창

둘러볼수록 밝고 맑다 온통 빛이다 

번개를 거느린 제우스를 비롯, 올림포스 신들과 더불어

온전한 자랑으로 퍼지는 무수한 인물들의 이야기

기쁨의 노랫소리는 커지고 축제의 신명이 더한다 

신바람따라 눈앞이 훤해지며 솟아나는 고마움  

볼수록 착해지는 눈과 마음, 커지는 놀라움과 함께      

자료작업과 준비가 엄청났으리라는 현실감이 다가온다


지켜보는 무수한 사람들의 마음과 눈을 기억하며 창작하기

처음부터 명백히 ‘내 것’이 아닌 그림을 그린다는 것

분명히 주어진 한계 안에서, 동시에 모든 기대 속에서 

‘내 멋대로’ 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어떤 무게, 고민, 사람의 능력 또는 힘... 모르겠네 


“아무 걱정 말고 열심히 그려라. 어느 지점에선가 네가 따라잡을 터이니 다른 사람들이 앞서가도록 내버려 두렴.” 형이 동생에게 쓴 편지의 일부. 무심코 읽어버린 문장에 가슴이 찡하다. 격려하는 화가 형제, 형 라울 뒤피와 동생 장 뒤피였다. 1936년, 형 라울은 만국박람회 때 파리전기회사로부터 제작 요청을 받은 뒤에 "이것은 너와 함께만 가능한 일"이라고 동생에게 편지를 보낸다. 동생은 기뻐하며 전기 관련 소재와 자료를 모으고 다른 이들의 도움으로 그림에 표현할 인물과 사건들을 선정한다. 그런데 형은 동생이 한 일을 공개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았으니 형제사이는 가까웠던 만큼 훨훨 멀어지고 말았다.      


경쟁심, 부러움과 시기

우애와 사랑과 무조건적 수용이라는 평화를 

충동으로 빙빙 돌며 깨는 그것

나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니 

부러움은 자주 탐욕스러운 시선으로 변한다 

주체를 하얗게 질리게 하는 질시는* 

내게 좋은 것을 향해 가는 창조의 길에 

횡단을 요구하는 늪이 된다 


강한 질투가 섞여 흐르는 핏줄의 몸서리치는 땡김

어쩔 수 없는 질김을 느껴 본다  

그들이 마무리하지 못했던 용서,를 입술에 올린다

형제 대신에 소리 내어 본다


                                                                                                                                    

*질시란 통상 질시하는 자에게는 아무 소용도 없으며 그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것을 다른 이가 소유하고 있을 때 부추겨지는 감정입니다. 주체가 질시로 하얗게 질리게 된다면 이는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 앞에 그자체로 완결된 충만함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매달려 있는 분리된 소문자 a가 어떤 타자에게는 그 타자를 만족시키는 소유물, Befriedigung만족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이지요. (자크 라깡 『정신분석의 4가지 근본개념』 맹정현,김수련역. 새물결. 179ㅉ)    


 

<전기의 요정> 라울 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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