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늄 화분은 내꺼다
- <목욕하는 여인들> 폴 세잔. 런던국립미술관
- <제라늄 화분이 있는 정물> 폴 세잔.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뉴욕
여럿이 있어도 알맞게 혼자
가까이 있어도 저만의 공간을 가진다
몸 사이로 지나는 바람을 따라
사실감 없는 몸,의 동세가 움직인다
옷을 입은 것 같은 벌거숭이들, 뛰어가
덥석 손잡고 함께 바다를 열어젖힌다
반가워라 목욕하는 여인들
내가 두 번째 모사했던 세잔의 그림이다
그러므로 이 그림은 내꺼다 하하
새내기 교사는 첫 봉급으로 화구를 장만하고
제라늄 화분과 사과를 모사했다 베꼈다
사과가 가지지 않은 색을 입고도
면으로 잘리고도 진짜인 그의 사과를
평면처럼 잡아낸 그림자 같은 입체를
젊은이는 만만하게 보았던가
이것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맞닥뜨렸을 때
아 내꺼다! 터져 나온 말의 황홀함
애면글면 반복과 수정으로
면과 색을 같은 듯 다르게 분할했지만
세잔 흉내내기는 당연히 실패
한 조각 닮았다 싶은 자랑스러움에
들뜨도록 나를 들이부었던 시간의
풍성한 기쁨을 성공으로 친다면
제라늄 화분은 내꺼다, 물론
세상의 모든 사과는 세잔의 것이다
기억 속의 사과, 이것만이 사과다
몇 개의 면으로 모든 부피감을
내주었음에도 사과는 완벽하다
최소한으로 최대를 드러내는 세잔
인물도 산도 비스킷도 그가 드러낸 최대한은
더 이상이 필요 없는 전체일 때가 많다
배부른 아이, 무한한 평화, 흡족함
뭔지 모를 이끌림에 따라 덥석
베끼기 시작했던 세잔은 나의 일부가 된 거다
내가 말을 찾기 위해 필요로 했던 모든 것
그 길에 내가 불러 내게 다가온 것들은 모두
내 것이다, 세잔도 내꺼다
나는, 우리는 세상을 물려받았으니
이미 유산은 상속되었으니
당신은 상속자인가 노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