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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Jan 13. 2023

모든 뺄셈이 끝난 눈빛

충혈된 육체 : 벌거벗은 몸

  - <오필리아> 존 에버렛 밀레이. 테이트브리튼미술관. 런던

  - <벌거벗은 초상> 루시안 프로이트. 테이트브리튼미술관. 런던

  - <어머니의 초상6> 루시안 프로이트. 테이트브리튼미술관. 런던     


라파엘 전파의 그림들은 이제 나를 흔들지 않는다  

‘1840년 방’에서 오늘 본 것은 덮쳐오는 괴물성 

옷 입은 채로도 충혈된 육체의 비현실감이다

가능성 넘치는 푸름으로 생생하던 화폭들이 

단비를 머금고 정밀하게 살아나는 유물일 뿐

찢긴 베일 뒤에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한다      


오필리아, 특히 그 격렬했던 홀림을 반추한다

그 앞을 떠날 수 없었다, 죽음을 권하는 

피보다 선연한 초록의 환희, 새파랗게 살아 

섬뜩한 아름다움으로 낱낱이 이글거렸었다 

죽음을 포함한 삶을 승인하는 기꺼운 매혹

결코 끝나지 않는 죽음,을 입고 삶으로 넘쳤던   

피의 무게와 두께가 빠지고 이제 살은 빛을 잃었다

모든 리비도를 일시에 불러들인다, 회수되는 에너지

나는 그냥 뜨고 있는 눈.이다      


눈은 그때 보지 못했던 다른 살들을 본다

루시안 프로이트의 숨만 쉬는 살들을 본다

벌거벗은 몸들은 저 생긴 대로 있으며 나를 본다

그릇이자 몸을 범람하는 핏기 빠진 살들을 가만히 본다 

벌거숭이 인간 존재하는 살로서의 인간-고기 

피가 도는, 이미 죽음을 담은 살, 순수한 존재     


설명하려 애쓰지 않는 몸 

불필요한 무게와 의미를 증발시킨 

초상화 인물들의 몸과 눈은 투명하다

어떤 옷도 해명도 없이 살은 존재한다

비로소 어머니는 어머니가 아닐 수 있다 

엘리자베스는 여왕이면서 사람으로 있다

각인된 기표를 배제하고도 그들일 수 있다


모든 뺄셈이 끝난 눈빛은 나비며 깃털이다

가벼운 날갯짓은 보는 마음에 잔물결을 일으키고

잘 알던 길에서 잠시 길을 잃었어도 가슴은 훤하며

고독한 시선은 암시랑토 않다 

벗게 될 겹겹의 베일들을 예감한다

오롯이 내 숨을 쉰다


 

<어머니의 초상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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