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경이 Jan 15. 2023

부모 곁에 있는 어린 내가

영희의 라면

     - <부모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 존 에버렛 밀레이. 테이트브리튼미술관. 런던    

 

지금 눈앞에는 못에 손을 찔린 어린이 예수가 있다

아버지를 도와 나무를 다듬거나

심부름하는 어린 예수 그려본 적이 있었던가 

아이를 걱정하는 아버지 요셉은 대머리

마리아도 영원히 젊은 금발이 아니다 

복숭아빛 예수는 아버지의 일터에서 다친 아이

발등에 떨어지는 손바닥의 핏방울 

엄마는 근심 가득 주름진 얼굴로 아들에게 뽀뽀한다 

아프겠구나, 괜찮니?

어깨를 감싸며 다친 손을 잡아주는 

아빠의 목소리도 들린다 

이런 조심해야지, 곧 나을 거야 

모든 가족의 풍경화를 본다     


처음 보는 그림, 정보 없이 보아서 다행이다

예습이 필요한 때가 있고 복습이 중요한 때도 있다 

아는 만큼 더 볼 수도 있지만 

아는 만큼 확인하고는 끝인 경우가 많다 

본다는 것은 내 말로 나를 읽는 것

남의 말을 들었으나 생각은 내가 하는 일 

시각은 사유를 흔들러 가는 말의 통로다      


못에 찔린 손바닥에서 발등으로 떨어진 핏방울은 

십자가 수난의 예고일 것이며

그래서 인간 예수의 고통은 더 아프게 전해오지만 

삶의 시작이 고통임을 인정하며 짜증도 나지만

아스라한 그리움에 미지근한 온기로 일렁이는 

내 부모와 가족을 느낀다 따스하다

부모 곁에 있는 어린 내가 되어 본다 따뜻하다

내 가족을 먼저 만난 뒤에  

어린 예수와 성가족을 만난다 

성聖을 뗀 다음 다시 그것을 더하여 

두 손으로 받들어 돌려준다 

세상의 모든 가족들에게도 나줘준다

별빛으로 퍼진다      


영희의 가족이, 영희와 두 아이가 떠오른다. 남편이 거듭 사업에 실패하고 빚에 치이던 나날들, 라면 하나 값이 없어서 울었다던 영희. 다달이 빚쟁이들이 가져가고 몇 푼 남는 월급으로 살길이 막막하던 때, 차비가 없어서 열 몇 개 버스정류장을 두 아이와 걸으면서 가슴이 뽀개졌다던 영희. 그 목소리가 다시 나를 적신다. 영희의 기도가 어떠했을지 조금도 가늠할 수 없었다. 라면을 한동안 먹지 못했던 걸 생각하면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그 무게에 말 그대로 압도되어 있었음을 조금 알 뿐.      


영희를 안아준다. 

그의 눈물 속에 성聖이 빛난다.

아이의 손을 잡고 넷이 나란히 걷는다. 


<부모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


작가의 이전글 마담X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