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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Jan 17. 2023

죽음까지 포함한 삶

To Vincent 2 - 글밭을 가꾸고 말의 씨를 뿌립니다

      - <꽃핀 아몬드빈센트 반 고호. 암스테르담 반고호미술관     


별이 빛납니다, 빈센트  

흠결을 지닌 채로 아름다운 사람이여 

이제 곧 한 달 머물렀던 파리를 떠나

당신의 다른 집, 암스테르담으로 가려 해요

그동안 이곳 당신의 집 앞을 몇 번 지났고

몽마르뜨르 풍경과 밤의 카페들을 볼 수 있었답니다 

밤의 술집에 담긴 어둠의 힘에서도 희망을 보고

지옥의 용광로 같은 분위기에서도 삶을 발견해요*

죽음과 불안에서 길어 올린 용기를 볼 수 있으니

나는 이제야 희망과 꿈을 그리기 시작하려나 봐요 

더 크게 자주 노래도 부를 수 있겠지요      


빈센트, 당신은 예수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위대한 예술가였다고 했죠**

당신이 놀라고 매혹당했던 그 예수는 

당신에게 매혹당하지 않았을까요

예수의 말이 지금도 인류를 먹이듯 

당신의 그림은 사람의 영혼을 먹이며 영생하니까요

예수가 그려놓은 근원적 공백 위에

당신의 그림은 더욱 빛날 수 있었으니까요   

당신의 말-편지 역시 사유하는 노동이자 

우애와 신뢰의 상징으로 사라지지 못할테지요 

당신들은 여전히 생각하는 인간을 드높이는 창조의 동력입니다 

불멸의 틈을 보이며 멀리 다른 곳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슬픔과 상처를 받아 안은 채 

생명 가진 것들의 기쁨을 빚어낸 빈센트

나는 당신의 죽음이 ‘자살’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원하는 만큼 충분히 살았기에 

스스로 호흡을 중단한 거라고요 

극한의 고통이 부른 행동화나 질병으로서 자살을 넘어 

들이닥치는 죽음조차 명백한 삶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생을 완성하려는 행위라고 말입니다 

‘위대한 일을 하거나 아니면 죽어야 된다’고 테오에게 썼죠 

당신은 위대한 일도 했고 스스로 죽기도 했으니 

가장 끔찍한 타자인 죽음까지 포함한 온전한 삶이었습니다, 빈센트     


그 몇 달 전에 태어난 테오의 아들에게 

당신의 이름을 주고 나니 홀가분하던가요 

그들의 침대 머리맡에 걸어두라 했던 꽃이 핀

아몬드나무에는 수많은 우주가 폭발하고 있습니다 

더없이 부드러운 옥빛 하늘 속에서요 

이제 막 껍질을 벗고 나오는 

작은 분홍 봉오리에 눈을 뗄 수가 없네요 

스치는 바람 속에 샤륵 펼쳐진 

엷은 꽃잎의 떨림이 날카롭지 않은 게 아니군요

당신이 도운 수많은 사람들이 봉오리처럼 열립니다 

당신의 사랑을 먹고 마신 작은 섬들은 이미

해저에서 깊이 다른 섬들과 연결되고 있습니다 

뜨거운 화해 속에 서로 손을 잡는 시간 

상속되고 계승하는 벅찬 시간입니다      


빈센트! 

나는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지 못했기에 

계획할 수가 없었으므로 꿈을 그리지 못했답니다 

꿈이 없었으므로 평범한 현실의 삶에 동화되어 얻는 

보잘것없으나 생생한 즐거움을 자주 놓쳤습니다

이제 색이 아니라 말로 더듬더듬 그리고자 합니다 

글밭을 가꾸려 내 말의 씨를 뿌립니다 

꿈 없는 생각에 붙들려 움직이지도 못했으나 

이 밤만큼은 클리치 거리의 불빛 속에서 

당신과 밀레의 순수한 ‘낮잠’이고자 합니다 

나의 빈센트, 수많은 이들의 빈센트      


                                                                                                                                          

*나는 카페가 사람들이 자신을 파괴할 수 있고 미칠 수도 있으며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는 장소임을 전달하려 했어. 은은한 분홍과 핏빛, 와인적색을 대비시키고 루이15세풍의 녹색과 베로네즈 녹색을 거친 녹황색과 청록색으로 대비시킴으로써 창백한 유황빛의 지옥의 용광로 같은 분위기로 술집에 담긴 어둠의 힘을 표현하려고 했어. 1888년 9월 9일 편지 (Edited by N. Anna Suh 『Vincent van Gogh;A self-portrait in Art and Letter』 Black Dog & Leventhal Publishers, New York. 220p)     

**이 전대미문의 예술가는 조각도 그림도 책도 만들지 않았으나 소리높여 단언했네. 자기는 살아있는 인간, 불멸의 인간을 만들었다고. 그가 로마의 건축물 붕괴를 예언하며 ‘천지가 무너져도 내 말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 날, 그가 거짓말을 했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그러한 이야기는 예술이 다다른 최고봉이고 예술은 거기에서야말로 창조하는 힘. 순수한 창조의 동력이 된 것일세. 이러한 생각은 우리를 먼, 정말 먼 곳으로 인도하고 예술 그 자체를 초월한 높이로 드높이지. 그리고 생명을 만드는 예술, 불멸의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예술을 바로 보여주네. 1888년 6월 23일 고흐가 에밀 베르나르에게 쓴 편지. (박홍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 아트북스. 510-511ㅉ)  



<꽃핀 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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