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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Jan 18. 2023

불안은 가라

몸에 말이 들어가야

      - 파리에서 암스테르담으로      


낯선 도시로 간다. 괜찮아 걱정 없어 

영원한 친구, 선배이자 스승이 계시잖아 

진정한 죽마고우 나의 샴쌍둥이 불안이여 

뭐든지 내가 할테니 너는 쉬려므나 


불안은 낱낱이 끊어 확인하고 살피며 에너지를 요구한다 

한 발을 떼기 위해서 엄청난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니 생의 무게에 눌리면 걷기가 힘든 거다

내려놓을 게 무엇인지 알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점점 무게를 줄일 수 있다 잘 내려놓고 잘 버린다      


영화 <어바웃 타임 About Time>, 암이 발견되자 많은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삶의 질서를 만드는 아버지. 장애가 있는 처삼촌을 모시며 아내와 차를 마시는 날들. 방황하는 딸을 지지하며 ‘못난이’ 아들과 탁구를 친다. 평범하여 소중한 나날을 엮어 간다. 낡은 소파에 앉아 더없이 편안한 미소로 ‘읽고 싶었던 모든 책을 읽었다.’고 말할 때 그것은 내 미래였으므로 기뻤다. 죽어가는 자가 남의 말을, 책들을 읽어 뭘 한단 말인가. 제가 누군지 모르고는 죽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남의 말을 통하지 않고는 나를 알 수 없으며 나를 나이게 하는 말들을 길어올릴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죽을 자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되돌리는 주문을 언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도 마찬가지다. 그 과정에서 돌아갈 수 없는 한계이자 메울 수 없는 생의 공백을 깨달을 때만 진정한 자기선택을 하게 된다. 하나씩 조금씩 완성되어가는 아름다운 시간들, 내가 나로 사는 삶!      


인간은 사건처럼 언어 속에 내던져진 존재다 

이미 만들어진 세계에 갑자기 끼어들어 

남의 말을 빌려 쓸 수밖에 없으니 

내게 들어오는 타자의 말들이 나를 만든다  

타자의 서명들 위에 내 서명 자리를 찾는 길 

내 말을 찾는 길에 진짜 질문은 우회를 거듭하고 

우리는 평생 결핍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종종 의미를 알 수 없는 어떤 말-소리에 

우리가 강한 정동을 일으키는 까닭이다

그것은 자신의 핵을 건드리는 말에 

닿지 않으려는 부인이며 방어다 

억압되어 무의식을 형성하는 표상은 의미가 배제된 

소리(언어)의 형식이기 때문이며 

말을 통해 인간이 만들어지는 까닭이기도 하다 

몸에 말이 들어가야 하며, 말을 먹어야 하는 이유

인간이 말하는 존재인 증거다      


근원적 공백을 울리며 몸·영혼에 직접 연결되는 통로가 청각·소리이자 음악인 이유이기도 하다. 음악은 의미를 잡아챌 새도 없이, 특히 타악기는 곧장 무의식을 뚫는다. 몸 역시 울림통이자 악기이며 존재로서의 박동인 동시에 리듬이 아닌가. 이미지·색은 청각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조금 늦다. 문자언어, 문학은 나중에 온다. ‘사유는 넓은 시간의 조각들을 요구하기 때문’일까.* 시가 산문보다 앞설 것이니 사유를 분절하고 이미지를 대체하기 때문일 터다. 사유를 관통해야 하는 산문일수록 거듭 말하게 하고 다시 쓰게 한다. 언어로 그린다, 반성이다. 우리는 말을 길어올리며 반성하는 존재다. 


나는 벅차고 설렌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얼룩을 지닌 채 

고통을 열정으로 진리의 형상을 빚어낸 수행적 인간  

그리며 반성하는 사람을 만나러 간다    

빈센트 반 고흐가 빚은 불안·고통·열정의 

정수인 아름다움을 향해 간다  

비합리적 충동을 분노와 함께 슬픔으로

인간적 우울로 빚고 그린 사람을 

온 존재를 기울여 경청하고 싶다

우리는 어떤 말을 먹고 무엇을 그릴 것인가

나 이전에 주어진 말을 어떻게 부려 쓸 것인가 

고호미술관, 암스테르담으로 간다

불안은 가라

기차는 길다     


                                                                                                                

*필립 브르노 『천재와 광기』 김웅권옮김. 동문선. 55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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