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아주 행복해요
- <피에타> 나무조각Vesperbild, 1390. 리비히하우스Liebieghaus. 프랑크푸르트
- <십자가 발치에서의 탄식> 피델리스 스포러Fidelis Sporer. 리비히하우스. 프랑크푸르트
비는 프랑크푸르트 거리에 참 잘 어울린다
침잠과 사색이 우산 속에 나란히 마인강을 따라 걷는다
조각미술관 리비히하우스로 간다
비에 젖는 잿빛 고택이 자못 장엄하다
비슷비슷 무심하던 성모자상에도 마음이 동한다
못난이, 어리광쟁이, 까불쟁이 아기예수 낯낯이 귀엽다
심통스런 뚱뚱이도 간질간질 미소를 돋운다
앞앞에 마음이 가고 사랑스럽다
작은 나무조각 피에타 앞에 발이 묶인다
예수의 몸은 부스러져 내리는 미라
성모의 굳은 입술 침묵의 탄식은 멈추지 못한다
얼고 터져 사라지는 이승의 모든 관계들
생각 자체를 끊으려는 어미의 얼굴은
이미 흙빛으로 죽어 있다, 아아
알아도 몰랐던 거야, 알았어도 안 게 아니었어
자식을 먼저 보낸 어미의 고통
어찌 알 수 있으랴
오오...
발을 떼자마자 대리석 피에타가 또 부른다
완전히 '뻗은' 예수가 놓인 성모의 무릎은
절망한 채 벌어져 있다 어쩔거나!
조각상이 작음에도 불구하고 조명과 함께
주변 인물들을 타고 흘러내리는 선들이 꼬이고
휘며 급하여 사태의 중함에 휘말리게 한다
무수한 어미들의 절망이 덮쳐온다
이해하기 어려운 신의 죽음
인간을 가능하게 한 신의 죽음을 딛고서야
삶으로서의 죽음에 겨우 닿아보는 중이다
남의 죽음을 통해 내 죽음을 살아본다
타자의 절망을 통해 나를 보고 다시 남을 느낀다
나와 내 삶을 애도하지 못한다면 무엇을
무엇을 누구를 진정 공감할 수 있을까
나는 비로소 나를 애도하는 중인 것이다
내 모든 절망과 비탄의 자리를 부른다
삐뚤빼뚤 못살았으면서도, 나 때문에
그럼에도 얼마나 잘 살았는지, 내 덕분에 남 덕택에
그리하여 또한 어떻게 잘 죽어가고 싶은지
의무 같은 특권 생명, 감사의 빛에 안긴다
수용과 소통, 나를 보듬는다
과히 크지 않으며 품격 있고 우아한 건물
전시실 연결 공간 양쪽 벽의 제단화가 눈을 끈다
높은 데서 웃고 있는 조각 천사들이 무척 예쁘다
빙글빙글 돌며 양면의 아기 천사들을 올려다 본다
느낌 좋은 대리석 바닥, 샌들을 벗고 맨발로 돈다
체온을 나누자마자 온기로 되돌리는 대리석
잘 마른 단단함으로 발바닥을 받쳐주는 돌의 체온
교감, 부드러우나 단호한 지지
“참 아름다운 곳이죠?”
아이고
무안할 뻔한 여행자를 격려하는 향그런 목소리
좋은 말의 초대, 마음이 흐르는 순간
“네, 지금 아주 행복해요.”
뜻밖에 획득해 버린 축복,같은 말 위로 솟는 감사
이해,에 몸을 적시고 공감,에 마음을 담근다
참 아름다운 시간 따스한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