닦달하지 않으면서 지켜보는
순이가 우리 시골집 마당을 한 바퀴 둘러보고 현관에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그가 만든 샐러드를 먹고 치우기까지 끊이지 않다가 2층에도 함께 올라갔다. 다락까지 차와 함께 상승했던 이야기가 2층에 내려와 책꽂이에 기대어 팔 괴고 드러누워 다시 이어질 때는 퍽 차분했다.
언니, 우리 딸래미는 극작가가 되고 싶대.
우와, 극작가~? 걔가 쓴 드라마 볼 날이 오겠네. 우와~ 연극도! 오페라? 뮤지컬?
무슨~ 제 밥벌이야 하겠지.
비극성이 배인 낮고 느린 그의 목소리를 가로챈 나는 흥분했다.
아니 ‘밥벌이야’라니 무슨 소리야, 대극작가가 될지도 모르는데. 아닌들, 정말 원하면 공부하라고, 쉽지 않은 일이지만 도전해 보라고 할 것이지. 밥 얘기는 뭐하러 해? 아니면 그냥, 그래? 해 봐! 하고 말던가! 네가 쓴 대본이 무대에 오르고 엄마가 그걸 보겠구나, 기대되는 걸? 하고 말해줄 것이지. ‘밥벌이야 하겠지’가 뭐야. 밥 못먹겠냐, 뭘 해도 밥은 먹어. 공연히 뻥뻥 허풍 튀길 일도 없지만 초장부터 허기지게 말할 것도 아니지. 푸르딩딩 스무살을 그렇게 히마리없이 시작하면 되겠어? 물론 소박한 출발도 나쁠 건 없지, 종종 근거없는 칭찬이나 과한 기대도 압력이 될 뿐이고 말이야. 그렇지만 아무나 그저 손쉽게 들먹거리는 작가, 영화에 툭하면 나오는 작가도 아니고 극작가란 말이야. 그렇게 생각있는 딸래미에게 말이야, 아니아니, 걔가 글을 좀 잘 써? 내가 한때 걔 국어 가르쳐서 알잖아. 애들마다 근거있는 칭찬을 해줘야 한다고 내가 늘 말하면서도 칭찬거리 찾기 어려워 애먹는 애들도 많았는데 걔만큼 근거 있는 칭찬하기 쉬운 애가 없었어. 오히려 내 칭찬의 언어가 부족했지. 게다가 책은 또 좀 많이 읽냐구~~ 부모 닮아서 산문도 시도 잘 쓰고 그림까지 잘 그리지, 예쁘지. 감수성이 있다는 건 걔한테 어울리는 말이라구. 더욱이나 생각까지 깊잖아. 무엇보다 자유로운 바람의 향기를 알지. 남다른 콧구멍과 손가락을 지닌 앤데, 아니, 그뿐이야? 뽀얗고 보들보들 진짜 분홍빛 도는 볼때기가 얼~~마나 사랑스럽냔 말이야, 여릿여릿한 눈동자에 이미 벌써 저만의 세상을 담고 있는 애한테 밥벌이야 하겠지,라니? 말 같지도 않아, 생각할수록 승질나네.......
순이는 단조를 줄창 연주하는 사람이 아님에도 표류하며 가라앉는 어조였다. 그는 제 현실을 제 손으로 다룰 줄 아는 사람이다. 사로잡히거나 시르죽지도 않으려니와 뻣뻣하고 무지하게 폭발시키지도 않는다. 언필칭 고통이라는 것들을 이물감 없이 제 것으로 꽤 즐겁게 주물럭거릴 줄 알거든. 그러니 슬기로움과 착함이 섞이면 천하무적이구나 싶었어. 그런데...
이크!
내가 순이를 안다고 생각하는구나, 아직 반도 말하지 못했는데.
제 밥을 제 손으로 감당하는 것은 홀로서기의 시작이니
홀로 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어미의 믿음이 밥인 것이다.
밥벌이나 하겠지.는 엄청난 믿음이자 확신이다, 의구심이 아니다.
어미로서 제 밥을 지으려는 딸을 세상에 밀어 보냈다는 선언이었다.
눈 맞추고 등 쓰다듬어 엉덩이 걷어찬 다음
닦달하지 않으면서 멀리서 지켜보는 것은
아무나 못할 일이다.
그는 조용히 힘차게 할 수 있을지 몰라.
이미 시작한 거야, 순이는.
* 몇 년 후 지금, 이 딸은 중앙 일간지 신춘문예 당선, 소설가로 등단하여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