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명하는 말로 내게 온
마침 마늘을 심고 있는 아랫집 식구들이 보이기에 얼른 나가 어젯밤 남편이 퇴근길에 사온 케잌을 전했다. 큰아들이 박사논문 통과했다는 연락이 한밤에 (미국에서) 왔는데 부모님을 깨울 수는 없어서 강아지한테 말했다던 얘길 어제 아주머니께 듣고 남편에게 부탁했던 케잌이다. 박사님~~하고 불렀더니 돌아보는 아들의 발그레한 얼굴에 기쁨이 넘친다. 박사님은 그가 진정 원했던 호칭이었나 보다.
“축하해요. 애쓴 보람이 있죠? 이건 선물이에요.”
귓가에 입이 걸린다는 말이 딱 맞는다. 기쁨은 사람을 저리 보들보들하게 만드는구나 싶다. 감사하다는 일가족의 합창에 실린 좋은 기운이 불끈 힘을 준다. 되로 주로 말로 받는다.
오후, 시간에 맞춰 도착한 보일러 기사는 개 두 마리가 어째 모두 짖지를 않느냐고 놀란다.
“우리 개는 영특해서 짖을 사람을 알아봐요.”
“네? 정말요?”
“그럼요, 도와주러 오신 분인 줄 대번에 알고 안짖잖아요.”
“꼬리만 흔들더라구요. 차에서 내리자마자, 낯선 사람인데도. 신기하네요.”
2층으로 올라오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야, 좋다! 이런 동네 이런 집이 있었네, 몰랐어요.” 그리고는 날 보더니 대뜸, “작가시죠?” 한다. “아~뇨~” 그는 고개를 갸웃, “네~? 맞는 것 같은데.”하면서 보일러실로 갔다.
방으로 몇 번 드나들며 작동상태를 점검하던 그가 만화 가득한 책꽂이를 발견하고는 화들짝한다. "만화가시구나~~?" 하더니, “이것 좀 보세요. 신부동 어디 보일러 고치러 갔다가 만화 전공 학생이 즉석에서 그려준 거예요.”, 전화기에 저장한 자신의 캐리커처를 보여준다. 꽤 연습이 된 솜씨였다.
“우와~ 멋진데요. 맘에 들어요?”
“네, 좋아요. 원본은 코팅해서 차에 있습니다. 만화가세요?”
“아뇨. 그저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죠.”
“이상하네......” 책상을 한바퀴 둘러보고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묻는다. “작가 맞으시죠?” 아니라며 웃는 나. 그는 2층 데크로 나와 주변을 휘둘러보더니 전망이 참 좋단다. 이런 데가 있었던가, 거듭 좋다면서 계단을 내려가나 하는데 다시, “작가 맞으시죠?” 돌아보며 말한다. “하하, 그럼 책 하나 쓸까요?” 휘다닥 경쾌하게 계단 다 내려가자마자 또 내 쪽을 휙 올려보더니 “작가 맞아~~”하며 웃는다. 작으나 자신감 있는 어조. “하하, 빨리 써야겠네요. 책 나오면 기사님 한 권 드릴게요.” 그는 힘차게 손 흔들고 갔다.
재밌다. 그런데 클났다.
확신 넘치는 그를 위해서라도 책을 써야겠네.
작가는 영화에서 자주 폼나는 직업으로 팔랑거리는 단어지만
오늘 그가 지칭하거나 호칭하려는 말로서는 어떤 물결이 있다.
내게 주고자 했으나 그의 것이었는지도 모르는 이름
그는 작가가 되고 싶었던가, 무엇을 쓰고 싶었을까.
호명하는 말로 내게 온 것이라면 그건 내가 원하는 건가.
그럼 그가 내게 명령한 거야?